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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현의 회사정리 거자필반] "이 나이에 4시간 연속 운전대 잡으라고?"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7.22 14: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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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사람은 모이면 언제고 헤어지게 마련이고(會者定離) 헤어진 사람은 또다시 만나게 마련입니다(去者必反). 하지만 반갑게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바로 근로고용관계인데요. 회사가 정리(會社整理)해고를 잘못한 경우 노동자가 꿋꿋하게 돌아온 거자필반 사례를 모아보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극복한 사례도 함께 다룹니다. 관련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A시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입니다. 60이 가까운 나이까지 운전을 하다 보니 회사에선 최고참이지요. 사실 가벼운 장애가 있어서(6) 몸을 오래 쓰는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은 저에게 운전대를 잡는 건 가장 좋은 직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신호나 속도를 맞추어 제 시간에 한 바퀴 도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차도 많이 늘어나고 조금씩 버거울 때도 없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거의 반평생을 A시 풍경을 바라보며 쳇바퀴 돌 듯 살아왔습니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요. 맡은 버스 노선은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집값은 올라도 벌이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좀 더 밖으로 밀려나 살게 되었지요. 전에는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저렴한 동네나 산동네가 있었는데 이제는 도시 서쪽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여기까지는 살 만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왜 이 불똥이 나에게 튀는 건가?' 한탄하게 된 건 도시 동쪽에 들어선 신도시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인구가 줄어든 원도심에 배치됐던 노선 중에 몇 가지를 정리해 버렸습니다. '11번 노선'을 몰던 저도 갑자기 담당 노선이 사라졌습니다 

회사 공무부에서는 그 대신 새로 개발되는 동쪽 마을, 그리고 그 외곽지역까지 누벼야 하는 '44번 버스'를 제가 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44번이라니요? 이 노선은 왕복시간이 250분이에요. 이 나이에 제가 4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겁니까? 버스 안 몰아보신 분은 모르시겠지만, 버스 교대는 사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에요. 11번 노선이야 그나마 왕복 100분 남짓이라 버틸 만했다고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같이 11번 운전하던 김씨, 이씨도 더 조건이 좋은 22, 33번을 받았단 말입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저보다 '사번'도 느려요. 몸도 불편한 제가 이렇게 총대를 맬 이유가 없단 말이지요. 이렇게 몇 차례 하다 보니 저는 목이 뻣뻣하고 허리가 아파 병원까지 다녀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노선을 바꿔달라고 해도 묵묵부답인 회사, 어찌해야 좋을까요?(중앙2015부해1353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 

이 사안은 전직명령에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고 노동자의 생활상 불이익이 상당하며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절차가 없었다는 점에서 부당한 전직명령으로 구제 판정이 내려진 경우입니다. 

장애가 원래 있던 사람인 만큼 목과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는 진술이 특히 안타까움을 산 경우인데요. 

불합리하게 좋지 않은 자리로 쫓겨나는 일명 '좌천'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일하던 자리가 없어지는 등 불가피한 경우 전직 처리를 해도 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입니다. 대법원에서는 전직이나 전보 처분은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업무상 필요한 범위라며 상당한 재량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대법원에서는 업무상 필요성, 전직 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기도 했습니다(대법원 2015.10.29. 선고 201446969 판결). 

사건 속 버스 운전사의 경우 저런 유리한 판정이 나온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죽음의 44번 노선 외에도 여러 노선이 운영되고 있었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왜 그가 꼭 그 노선을 받아야만 했는가에 대해 다퉈 볼 여지가 생긴 셈이지요. 

더욱이 김씨, 이씨 등 같이 11번 운전을 하던 기사들은 다른 (좀 더 나은 조건의) 노선을 맡았다고 했지요. 또 원래 사건을 다룬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번(입사 서열)과 장애 등을 고려할 때 그가 비인기노선을 맡아야 할 합리성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불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논의를 충분히 진행한 다음 결정하기보다 불이익한 처분을 받는 사람 하나가 날벼락을 맞는 식으로 급히(전격적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선 배치에 대한 사전 협의를 충실히 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사안은 이렇게 결론지어졌지만, 씁쓸함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럼 결국 '짬밥' 순서로 나쁜 노선을 받으면 끝인 걸까요? 전국 어느 버스 운전사들에게나 이런 근무지 주변의 개발 문제 등으로 인한 불이익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지요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충남 천안시의 경우 원도심과 새 개발지(불당동 인근)는 버스 노선 대비 인구 비율이 약 32배 차이가 나는 등 교통 여건이 비정상적으로 배치돼 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국에서 합리적으로 배치조정을 통합적으로 해야 할 텐데요. 편리한 대로 개별 노선을 연장하는 식으로 땜질 손질을 하는 경우, A시의 44번 같은 이상한 노선이 어느 곳에선가 또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단 점을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