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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5]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

이은대 작가 기자  2016.06.23 17: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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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글쓰기 최고의 가치는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마음에 있다고 본다. 이 '바라본다'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며, 대부분의 근심과 걱정, 절망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리고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바닥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됐을 때 나의 마음은 온통 번잡한 생각과 후회들로 가득했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친걸까. 그토록 열심히 살았건만 왜 하필이면 나일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이토록 모진 시간이 주어진 것일까.

부정적인 생각과 후회들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위기와 마주할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쓰나미의 한 가운데 실려 마구 떠내려가고 있을 때에는 도무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조차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생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절망적인 생각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전과, 파산, 알코올 중독 등 최악의 시련들을 가까스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후에 다가오는 온갖 상처와 나쁜 생각들을 이겨내는 데에도 분명 글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 열 시간이 넘는 막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 몸이 부서질 듯 쑤시고 아팠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열이 지끈지끈 날 정도였다.

그럴 때일수록 더 글쓰기에 몰입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백지 위에 글자로 투영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값진 시간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던 번잡하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보이게 되자 내가 처한 상황이나 현실이 무거운 삶의 과제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로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풀어야 할 의무감이 생기지만 '사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돈이 없다는 사실, 힘겨운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등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일상들조차 그저 '사실'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가슴을 옥죄던 근심과 걱정이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쓰면 쓸수록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감사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아직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꿈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제보다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이제는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더 이상 절망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희망적이거나 대책없는 낙관으로 피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린 아들이 컵을 뒤집어 물을 잔뜩 쏟았다고 가정해보자. 거실은 물바다가 됐고, 일거리는 늘어났다. 이런 경우에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것은 나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의미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감정폭발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염되고, 성장과정에서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 물을 쏟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만 하면 걸레도 바닥을 닦으면 그 뿐이다. 물론 아이도 함께 거들면서 앞으로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도와주면 더욱 좋겠다.

이은대 작가(내가 글을 쓰는 이유, 최고다 내 인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