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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노조 과천 본사 앞 천막농성장을 가다

[르포] 비닐하우스서 복직투쟁 319일째 추위와도 사투

최봉석 기자 기자  2006.01.07 17: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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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경기도 과천시 코오롱그룹 본사 앞 사거리에 설치된 비닐로 뒤덮인 파란색 천막농성장. (주)코오롱 구미공장 노동자와 해고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농성장 내부 온도는 바깥 날씨만큼 차갑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밀려드는 한기에 사람들은 자꾸 어깨를 움츠린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농성장 주변에는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코오롱 악덕자본은 각성하라’ 등이 적힌 플랜카드와 함께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라’는 노조의 바람이 담긴 글이 적혀있는 리본들이 매달려 있었다.

   
[프라임경제] 코오롱그룹 본사와 천막 농성장의 모습. 본사 직원들과 구미공장 조합원들은 4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대치하고 있다.
농성장 건너편에 위치한 그룹 본사에서는 가끔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농성장을 관찰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하루종일 들려오는 (주)코오롱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민주노총에서 제작한 안내방송.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룹 본사와 천막 농성장. 본사 직원들과 구미공장 조합원들. 이들은 4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남북이 대치하듯 그렇게 대치하고 있다. 이런 대치는 마치 (주)코오롱 구미공장의 현재 모습을 재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난 달 28일부터 천막농성장을 설치했습니다. 오늘이 딱 10일차네요.”

지난 6일 농성장을 방문한 기자에게 한 조합원이 말을 건넨다. “프라임경제에서 왔다”고 말하자, “농성장을 찾아준 첫 기자”라고 누군가 귀띔한다. 코오롱 노사분규는 2004년부터 지속됐지만 관심을 가져주는 언론은 극소수. ‘경제’라는 이름을 단 언론사가 노조측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니 일부 조합원들은 신기해하는 눈치다.

실내 온도가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다. 천막농성장 내부 온도는 그야말로 목욕탕의 ‘냉탕’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건너편 코오롱그룹 본사의 화려한 내부 불빛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따뜻함과 달리, 농성장은 실내에 설치된 작은 전구등에서 나오는 빨간 불빛만이 5평 정도에 불과한 농성장을 보호해주는 ‘온탕’ 역할을 하고 있었다.

농성 조합원들은 농성 10일째인 이날도 다가올 밤부터 걱정했다. 그나마 실내 온도의 따뜻함을 유지해주는 휴대용 난로가 어젯밤처럼 예고없이 툭 꺼져버리면 생지옥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돗자리, 침낭, 이불 등은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줄 수 없는 노릇이다. 벌써부터 환자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오후 4시30분. 모여있던 조합원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입에는 마스크를 끼고 귀마개로 귀를 보호한다. 옷이란 옷은 몽땅 걸쳐입는다. 알면서도 그냥 물어봤다.

“어디 가세요?”. “네? 아, 근무하러 나갑니다.” 그랬다. 노동부 과천청사와 그룹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기 위해 이들은 차가운 날씨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고, 이 같은 일상을 이 사람들은 ‘근무’라고 불렀다.

“근무하러 나갑시다.” 나갈 채비를 일찌감치 마친 사람이 주위사람들을 재촉한다. 한 사람이 갑자기 말을 꺼낸다. “새해에는 전화가 오길 바라면서 (근무를) 나가야지요.” 2006년에는 코오롱 구미공장으로부터 “복직하세요”라는 한 통화의 전화가 오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순간 다른 조합원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다들 ‘설마’하는 분위기. 하지만 알고보니 고향 집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큰일났습니다. 상경투쟁하러 간다는 말도 안하고 과천으로 올라왔는데….” 말을 꺼내놓고도 ‘순간’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지, 농성장 바깥으로 서둘러 나가버린다. 하지만 모두들 이해하는 눈치다. 농성장을 찾은 그 어떤 사람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마음 편하게 복직투쟁하러 간다고 이야기하고 올라온 사람은 없다.

   
[프라임경제] (주)코오롱 노동자들은 이번 상경투쟁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코오롱 기업과의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상경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주)코오롱으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총 78명. 이 가운데 58명은 회사측의 인력구조조정에 반대하며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전현직 간부 및 노조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총 45명. 평균연령도 45세라고 한다.

이들은 현재 10명씩 교대로 돌아가며 매주 과천 농성장을 찾는다. ‘2006년도의 소원’은 ‘꿈에도 통일’이 아니라, 구미공장으로 다시 출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발 ‘복직’시켜달라고 지난 1년동안 국회가 있는 여의도부터 시작해 안다녀본 곳이 없죠. 우리들처럼, 다른 기업에서 억울하게 해고된 사람들의 집회가 있으면 전국 어디든 ‘연대투쟁’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준 곳은 한 곳도 없었지요. 언론도, 노동부도, 검찰도.”

코오롱노조는 결국 지난 달 13일 (주)코오롱의 노조에 대한 인권유린과 탄압 의혹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

회사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코오롱으로부터 해고된 사람들은 ‘노조활동을 했다는’ 죄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툭하면’ 투쟁을 전개하는 그런 과격한 노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코오롱 노조는 여태껏 ‘어용노조’에 가까웠다는게 조합원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그런데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를 외쳤던 지난 9대 노동조합은 ‘민주노조’로 낙인찍혀 사측의 미움을 받았고, 결국 당시 장철광 노조 위원장은 노조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직을 사퇴했으며 노조는 자연스럽게 와해됐다. 노조가 와해되면서 해고자들을 지원해줄 곳도 사라졌다.

결국 노조원들과 해고자들은 노숙자인마냥 거리로 나서야했다. 서울과 구미를 그렇게 오가길 여러차례. 언제부터인가 상경투쟁이라는 낯선 행동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진지’를 구축했다. 상경투쟁시 과천에 들리면 꼭 집회를 개최했던 반가운 장소다. 

농성장 식구들은 최근 더 늘어났다. 지난해 조합원들의 자발적 선거과정을 통해 선출된 노조 위원장에 대해 (주)코오롱이 노조 선관위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해 당선무효 선언을 내린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뒤 어느날 갑자기 무단결근이라는 이유로 해고된 조합원을 포함해 총 4명이 농성장에 합류한 것이다. 이들 역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사람들과 함께 올해 안에는 반드시 복직해야 한다는 각오다. 각오가 남다르니 일상은 더욱 치열하다. 무조건 7시에 기상해야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밤샘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라임경제] 코오롱 노조원들의 천막농성은 10일째지만 복직투쟁은 이제 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319일째다.
천막농성은 10일째지만, 2005년 2월 말께 해고됐기 때문에 복직투쟁은 이제 다음 달이면 1년째를 맞이하게 된다. 기자가 찾은 날은 319일째.

양쪽의 갈등은 (주)코오롱이 지난 2004년 12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구미, 김천, 경산공장을 중심으로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노조가 이를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회사는 당시 경영악화에 대해 ‘회사의 책임도 존재하지만, 생산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이를 강행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없고, 노조와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노조와의 차분한 대화와 토론은 결국 없었다.

하지만 현재 노사간의 대립은 인력 구조조정 문제를 떠나, “더 이상의 인력구조조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당선된 10대 노조 위원장을 사측이 인정하지 않고, 또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사측이 비밀리에 진행한 프로젝트 및 문건이 공개되는 한바탕 난리를 겪고, 그리고 사측의 묵묵부답 등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천막농성장은 매일 오후 7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농성장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코오롱이 선거결과를 뒤집기 위해 노조 선관위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의혹을 보도한 MBC 카메라 출동팀의 보도내용을 대형 영상 스크린을 통해 알려내고 있다.

한 조합원은 “텐트 농성장 주변으로 걸어가는 상당수 과천시민들이 영상물을 볼 때마다 코오롱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또 “‘부족한 것은 없느냐, 추운 날씨에 건강만은 챙겨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힘이 난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도 “요즘 들어 과천, 의왕, 안양 지역 노동단체 조합원들의 연대 방문 및 향후 투쟁일정에 관한 공유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이 어렵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자세로 노사가 함께 손을 잡고 나가도 모자랄 판에 노조원만 골라서 해고하고, 노동조합 몰래 노조원들의 등급을 나누는 비밀 문건을 작성하고, 사측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실을 폭로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명분없는 소모전을 일삼고 있는 (주)코오롱이라는 거대 기업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코오롱 노동자들의 삶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이야기를 듣고 농성장을 나가려는 기자를 잡고 한 조합원은 1차 상경 투쟁을 마치고 구미로 복귀한 황모 조합원의 사례를 들려줬다. 황씨는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상황에서 해고됐다. 특별히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아니라고 했다. 다섯명의 자녀 가운데 두 명은 자폐증 환자라고 한다.

(주)코오롱은 대기업이라는 이름 속에서 한 개인을 빈곤계층으로 전락시켰고, 가정을 파괴했고, 개인의 삶을 추락시켜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