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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멘트노조, 회사측과 ‘전면전’

노조측 포항공장서 대규모 연대집회 “경제정의 실현”

최봉석 기자 기자  2006.01.07 14: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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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시멘트노조가 드디어 파업 143일째인 7일 오후 1시30분, 한국시멘트 포항공장에서 ‘한국시멘트노조 파업투쟁 승리 전국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임금 및 단체협상을 비롯해 경영진 비리, 산재은폐, 노조위원장 해고 등의 문제로 지난해 8월부터 총파업에 돌입한 지 정확히 5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시멘트측은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자 같은해 9월, 포항공장이 있는 경북지노위와 광주본사가 있는 전남지노위에 직장폐쇄를 신고하는 등 노조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해왔다.

노조는 이날 결의대회를 통해 “그동안 회사가 법정관리를 받다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불법탈법 행위 및 왜곡되어진 회사지배구조 속에서 노조가 추구하고자 하는 경제정의 및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사측과 ‘전면전’을 선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부터 한국시멘트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 한국노총 회관 6층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하며 ‘한국노총이 사태해결에 앞장서줄 것’을 요구해왔다.

지난 76년에 설립돼 30년째 시멘트를 생산하며 국내 슬래그 시멘트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시멘트는 지난 95년 부도 이후 법정관리를 받아왔지만, 지난 2003년 5월 1900억원의 ‘공적자금’과 ‘직원들의 출자’로 가까스로 법정관리를 벗어난 상태다.

한국시멘트 포항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하고, 발생했던 것일까.

△노조, “노조탄압 극심”= 노조 한 관계자는 “부도난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임금을 동결하고 구조조정도 감수하며 퇴직금을 담보로 말단사원부터 1000만원부터 1500만원까지 은행 대출을 받아 회사 출자금으로 납입하고 현재에도 이에 대한 이자를 변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95년 모기업인 덕산그룹의 부도로 인해 지급보증에 나섰던 한국시멘트는 연쇄부도를 맞이하고 법정관리를 받았는데, 이에 조합원들이 퇴직금을 담보로 ‘회사 살리기’에 직접 나섰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대기발령, 부당전보, 부당강등, 인권유린 등의 갖는 부당노동행위”라며, “노조가 단지 봉급 몇 푼을 더 받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사측이 노동조합이라는 용어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등 ‘노조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조는 ‘결국’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시멘트 공적자금 비리사건에 대해 검찰이 2004년 10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한국시멘트 전 대표인 이아무개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공사업체 및 하청업체로부터의 각종 리베이트와 공금횡령, 회사 양도성예금증서(CD)를 이용해 10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 N산업이 회사의 주식을 인수했는데 N산업이 같은해 7월 무렵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곧바로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노조를 탄압한 배경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N산업이 이씨로부터 취득한 주식은 회사 공적자금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취득한 주식으로, 사실상의 회사 자산이기 때문에 불법 주식인 만큼 국가에서 전부 몰수할 것을 사측에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영진은 노조를 눈엣 가시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노사간의 정상적인 대화는 공장 안에서 존재할 수 없었다. 현재 해고자 상태인 이희원 노조 위원장은 “지난 한해 동안 12회에 걸친 임단협 및 10여회의 실무교섭을 진행했으나 사측의 교섭 해태와 불성실한 교섭행위로 인해 부득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총파업에 돌입하자 한국시멘트측이 보여준 반응은 노조의 예상과 똑같았다. 노사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율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노조측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업무방해, 주거침입, 명예훼손, 손해배상 등 12개에 이르는 각종 고소 및 고발을 남발하면서 노조를 괴롭혔다.

한국노총이 지난해 11월 한국시멘트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사측이 회사를 살리겠다고 노력한 노조원들에 대해 인사권 남용과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며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이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노사갈등 ‘주된’ 이유는?= 현재 노사간의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대목은 다름 아닌 ‘해고자 복직 문제’다.

노조는 그동안 6~8%대의 임금인상과 함께 해고자 원직 복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사측은 임금인상은 고려해볼 수 있지만, 해고자 복직 문제는 ‘경영과 인사권에 대한 간섭’이라며 대화자체를 거부해왔다. 반대로 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고자 복직 문제만 해결된다면, 임금협상은 양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수해왔다.

현재 해고된 사람들은 법정관리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종환씨와 이희원 노조 위원장이다. 간부 폭행사건으로 해고된 노조 위원장의 경우,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부당한 판정으로 판결이 난 상태다.

그러나 해고된 두 사람이 만일 복직할 경우 ‘노조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는 사측의 우려 때문에, 복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고 노조측은 주장하고 있다. 고우봉 노조 사무국장은 “회사측이 힘있는 노조 위원장도 해고시키는데, 평조합원들을 해고시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위원장이 복귀하는 것이 그 어떤 협상안보다 1순위”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도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한국시멘트 대주주인 N산업 최모 회장을 만나 “해고자 복직 문제가 쟁점이 돼 있는 만큼 사태해결을 위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회사쪽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영권 확보 비상= 노조는 이날 집회에서 ‘노조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경제정의’라고 강조했다. 한국시멘트가 법정관리를 받다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불법탈법 행위를 짚고 넘어간 것이다.

노조는 이 때문에 한국시멘트 노사분규는 단순한 임단협 문제가 아니라, “범죄자본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노조가 ‘사회정의’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시멘트의 불법 주식거래에 대해 ‘몰수’가 구형돼 노조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가 집회 이틀 전인 지난 5일 한국시멘트 주식을 불법으로 매입해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N산업 최모 대표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고 불법으로 매입한 주식 64만여주(한국시멘트 주식의 28.73%)에 대해서도 몰수를 구형하는 등 대주주의 경영권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한 것.

지난 2001년 제정된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반사회적 중대범죄를 통해 얻은 수익에 대해 국가가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구형 이유에 대해 “불법적인 주식이라는 점을 알고 매입했으며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아 죄질이 나쁘고 경제정의 차원에서도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당연한 판결이라며 내심 반기는 기색이다. 그러나 노조측 한 관계자는 “법은 법대로이고 투쟁은 투쟁대로 전개할 것”이라며 한국시멘트라는 거대자본과의 싸움에서 노조의 힘만으로 투쟁을 승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회사는 시큰둥= 노조 장기 파업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시멘트 전체 직원 120여 명 가운데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60여 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인원은 40여 명. 사측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직원들과 관리직을 이용해 시멘트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노조가 총파업을 전개하면 생산현장을 마비시키면서 수익창출에 타격을 가해야 하는데, 한국시멘트 노조의 경우 이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며 여전히 이익을 내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노조의 장기 파업에도 불구하고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전폭적인 지지 등 상급단체의 연대가 여태껏 부족했던 점도 ‘노조는 힘을 잃고’ ‘회사는 기세등등’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고우봉 노조 사무국장은 “파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점이 투쟁의 실패 이유인 점을 인정한다”면서 “이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파업은 길어지고 있지만 ‘국민불편’을 초래하는 대기업 대공장 노조투쟁과 달리, ‘국민불편’을 전혀 주지 않고 있는 한국시멘트 노조 파업.

지역정서와 언론의 외면, 정부의 무과심으로 ‘올바른 노사관계’와 ‘경제정의’를 외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오늘도 거대자본의 논리 속에서 짓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