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70년생인 이현웅 예비후보는 부부교사인 부모 덕에 졸곧 인천 부평 지역에서 자란 토박이다. 부평동초등학교, 효성중학교에 이어 광성고를 나와 대학만 서울로 진학했다.
체육을 가르쳤던 부친은 전북 고창 출신, 과학교사였던 모친은 경북 문경 출생으로 그 시절에는 보기 드문 '영호남 커플'이었던 셈. 이런 부부 슬하에서 이 예비후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로 자랐다.
아직 어릴 때인 1980년,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정국 변화 와중에 신문을 종류별로 다 사모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자란 이 예비후보는 어릴 적 한때 신문기자를 꿈꾸기도 했다.
1989년 연세대 법대로 진학한 이 예비후보는 전공 공부에 매달리기보다는 학회(법사회학회)나 대외활동(조국통일위원회 준비위원장)에 열을 올리며 사회 활동에 관심을 더 기울이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 4학년 시절이던 1992년 충북 제천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비로소 뒤늦게 고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법서를 잡았다. 1998년 사시 40회에 합격하면서 법대 입학 10년만에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고시에 붙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과 어울려 현실에 가장 필요한 법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노동법학회에 들어가 인천제철 등 민주노총 노조가 조직돼 있는 여러 사업장에서 법률 상담 활동을 했다.
이런 그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박원순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던 일. 그의 강연에 감동받은 그는 오래도록 막연히 사회 참여를 꿈꿨던 데서 비로소 인권 변호사로 방향을 잡는다.
연수원 수료 후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에 가담하고(인천지부 사무처장 역임) 인천지방변호사회에서는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는 등 인권 가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법조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런 결심 때문. 인하대 로스쿨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며 현실과 학문을 연결짓도록 이끌기도 했다.
2011년에 큰 영향을 줬던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진영에서 희망캠프 법률지원단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탈당 선언과 민주 진영 분열 사태 와중에서는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쪽과 선을 그었다. '박원순 키드'에서 독자적으로 정치 지향점을 세우고 '독립선언'을 하고 나선 만큼, 국민의당 활동으로 20대 총선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