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카드뉴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자식을 죽인 부모들이 갖지 못한 것은?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2.05 18:05:20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하루 종일 운다. 쉬지 않고 악을 쓰며 악다구니하지 않으면 팔다리에 매달려 떨어지지도 않는다. 몇 달째 하루에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던 몸은 천근만근인데. 정작 울고 싶은 내 비명은 아무도 안 들리나보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아이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과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소름 끼친다."

이건 작년 8월 제 휴대전화에 끼적인 부끄러운 일기 중 일부입니다. 지난해 3월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6개월쯤 됐을 때입니다.

어느 늦은 밤 둘째 젖병을 물리다가 저도 모르게 아이를 안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습니다. 배가 부른지 곤히 잠든 딸을 한참 보다가 그제야 내가 정말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늦었지만 스스로 병원에 갔던 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끔찍하게 학대하는, 심지어 목숨을 빼앗고 시신까지 훼손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에 전국이 흉흉합니다. 짐승도 제 새끼는 귀하다던데 저런 건 인간 아니라고, 숨 쉬는 공기가 아까운 자들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만합니다.

과학적으로 부모의 자녀사랑은 도의적인 책임보다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뇌와 호르몬의 상관관계 덕분에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절대적인 애정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 애정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호르몬은 '도파민'과 '옥시토신'입니다.

쥐를 통한 실험 결과 출산한 모체가 새끼 쥐와 접촉하면 이를 신호로 뇌의 도파민 수치가 올라간답니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기 때문에 '행복 호르몬'으로도 불립니다. 이는 사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요. 미국에서 2008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기의 웃는 얼굴은 엄마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네요.

옥시토신은 출산 시 자궁수축과 젖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입니다. 흔히 유도분만에도 쓰이는 '엄마 호르몬'이죠. 출산 경험이 없는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니 남의 새끼를 돌보고 젖을 물리는 등 모성애적 행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합니다.

초보 엄마들이 출산 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젖을 물리면서 애착을 형성하기까지 옥시토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놀라운 것은 남성도 아빠가 되면 옥시토신과 비슷한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늘면서 가족에 대한 애착이 진해진다는 겁니다.

즉 자식을 사랑하는 감정은 남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생물학적 부모가 되면 본능적으로 우리 뇌가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최근의 끔찍한 사건들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것이고 이는 후천적인 사회, 문화적 병리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박사에 따르면 아동학대 살인범의 10명 중 8명이 부모 또는 양육자로 나타났습니다. 친엄마가 39.6%로 가장 많았고 친아버지는 23.7%로 뒤를 이었습니다. 오히려 계모(11.3%), 부모의 동거인(4.7%), 양부모(3.8%) 등 남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친부모라해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비교적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이혼이나 재혼으로 가족이 깨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를 비롯한 가족 간 마찰이 잦다고 하죠.

이제 아이들의 안전을 부모의 본능에만 맡겨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본능을 잊어버린 친부모, 또는 자신의 욕망을 학대로 실현하는 못난이들에게서 가여운 희생을 막기 위해 사회와 집단이 힘을 발휘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