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빈곤했던 과거, 우리에게 우유는 영양보급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더랬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분유 또는 우유를 먹지 않는 민족이었으나 6·25전쟁 이후 미국이 우리나라를 단백질 부족 국가로 지정해 분유를 무상공급해주기 시작했다.
이 여파는 곧 학교급식에서도 나타났다. 필자에게도 초등학생 시절, 당번이 가져오는 흰 우유 200mL 마시기는 으레 자연스러운 일과였다. 우유 맛에 싫증을 느낀 하루는 초콜릿 가루를 섞고 홀짝홀짝 아껴 마시기도 했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학우들과 우유를 마시며 우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고, 어머니가 따라주신 우유 한 잔 외에도 스스로 찾아 마실 정도로 우유는 물처럼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오늘날에는 반강제적이다시피 했던 우유배급이 선택사항으로 바뀌었으며 더 이상 흰 우유만을 고수하지 않고 초코·딸기·바나나우유 등 맛까지 다양해졌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3년 38.2㎏에서 지난해 32.5㎏까지 떨어졌다. 우유 소비량이 하락세를 이어가는 데는 저출산 문제로 우유 주 소비층인 아이들이 줄어든 영향도 있을 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유 외에도 충분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섭취하며 결핍된 비타민과 무기질은 알약으로 채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꼭 우유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유가공업체들은 원유 공급과잉과 우유 소비 감소 추세로 재고가 쌓여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국내 대표격인 서울우유도 피할 수 없었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2014년 333억원보다 84.5% 줄었고 당기순이익 역시 184억원 적자를 기록, 첫 반기순손실이란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매일유업도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5.2% 하락해 13억원 정도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우유 소비량이 줄어든 데는 무엇보다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우유 가격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13년 도입한 '원유가격연동제'가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이는 수요가 아닌 생산비를 고려해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산정시스템이다. 원유 공급이 많아져도 가격이 쉽게 내려갈 수 없는 굴레에 갇힌 것.
원유가격연동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우유산업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우유산업이 장기간 생산계획을 필요로 하고 기상여건, 낙농 주변 여건 등 생산적인 측면과 수급관리 취약점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가격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에 원유 수취 가격은 지난 2010년 1ℓ당 855.36원에서 상승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10월 기준 1092.71원까지 올랐다. 낙농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연합(EU), 호주, 뉴질랜드가 1ℓ당 350~500원 정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국내 분유가 이처럼 가격경쟁에서 뒤처지다 보니 수입산 분유만 호황기를 맞았다. 지난해 해외에서 들여온 탈지 분유수입량은 2만1260톤으로, 구제역 사건 이듬해인 2011년 3만3502톤 이후 최대치다.
원유가격연동제 이전에는 낙농가와 우유업체 간 원유가격 협상 시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 낙농가의 원유 납품가는 1998년 이래 7년간 동결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비용 증가로 인한 목장 경영 악화와 구제역 파동 등 폐업하는 낙농가들이 대거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위태로운 것은 낙농가뿐만 아니다. 실제 지난해 2월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50년 전통을 자랑했던 '영남우유'가 재고 부담과 판매난에 시달린 끝에 폐업 수순을 밟은 것.
국산 분유재고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분유 재고는 2만343톤. 돈으로 환산 시 2440억원에 달하는 양이다. 위기에 처한 우유업체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거나 커피, 치즈 등 유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국민이 우유업체를 외면한 것인지, 우유업체가 국민을 외면하고 있는지 모를 상황이다.
낙농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는 원유 가격 결정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이로 인해 낙농가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차후는 정부가 지원해야 할 국가차원의 문제다.
또 실상 원유가격연동제에 가려졌지만, 30%를 웃도는 유통마진율도 비합리적인 가격을 형성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낙농가와 우유업계 모두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양보만이 상생을 이끌 수 있다.
우리가 마주보며 미소 짓기 위해서는 어그러진 시장 원리를 바로잡는 것부터 우선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