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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 선거구' 도전 안대희 '엉뚱한 지역구의 모험' 홍준표 닮은꼴

국민검사 후광 없이 중학생 시절처럼 도전 나선 지역구 선택 의미 눈길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2.03 14: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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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검사로서의 빛나는 성과와 그에 대한 갈채는 정치적 자산일까, 그렇다면 막상 그 후광은 어느 정도까지가 유통기한일까?

국민검사라는 애칭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인기 법조인 안대희 전 대법관. 그가 전 대법관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나선다.

최고위원직에 올랐고 마포갑 지역에서는 예비후로서 출마 의지를 본격 천명했다. 이런 와중에 그의 등장을 명성에 기댄 고공 낙하산으로 폄훼하는 시선까지 등장한다.

한편 그의 출마를 법조인들의 정치적 입신양명 욕망 케이스로 보는 입장에서는 그를 홍준표 경남도지사 출마 사례와 비교하기도 한다. 검찰과 경찰 고위층을 수사한 문제로 안기부로 파견나간 뒤 끝내 수사 담당 수서로 복귀하지 못하고 떠난 홍 지사는 결국 정치에 입문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모래시계 검사'라는 타이틀로 선거에 돌풍을 일으켰던 점을 기억하고 '국민검사' 당시의 안 최고위원이 가졌던 명성과의 데자뷰 현상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테면 1996년 15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등원한 홍 지사를 기억하고 첫 출마인 안 최고위원의 길과 견주는 시각이다.

그러나 안 최고위원의 이번 선거 국면은 1996년 당시보다는 오히려 2001년의 홍 지사와 흡사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미지 탈색 후 정치권과 인연, 노씨 집안 텃밭 험지출마 택해

홍 지사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 진영에서 극히 꺼리는 의원이었다. 이후 반값 아파트 구상 등 정책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저격수 역할에 충실했던 것.

그가 선거법 문제로 낙마하자 당시 신문에서 'DJ 저격수 가다'라는 제목을 달아 만평을 낼 정도였다. 모래시계 이미지에 충실한, 한편 그 한계 범주 내에서 머물렀던 때가 바로 홍 지사의 '리즈 시절'인 셈이다. 당선 원동력인 동시에 정치적 한계로 기존 이미지가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 최고위원의 경우도 이와 흡사하다고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시간차 문제가 거론된다. 우선 홍 지사의 경우 검찰 복귀 실패 이후 법복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 이후 정치 입문까지의 기간이 짧고, 개인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보복 위협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득이하게 금배지가 필요했던 경우다.

하지만 안 최고위원의 경우는 다르다. 검찰에서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뒤 부산고검장으로 이동했고, 국민검사라는 긍정적 요소가 어느 정도 빛을 잃은 다음 대법관직을 역임했다.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아도 일반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정의의 구현자라는 후광 효과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기록에 남은 슈퍼스타 정도가 된 셈이다.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지만, 대선 승리 후 오히려 거리를 두고 지냈던 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시일을 끈 끝에 다시 돌아왔다. 이는 결국 정치와 법조계 어느 쪽에도 마음의 빚이 없는 진공상태에 그가 있었던 기간이 그만큼 길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지역구 출마 선언과 차기 대선주자감 논의 등 여론이 보이는 관심은 과거 안철수 신드롬처럼 외부 영역의 깨끗한 이미지 전문직 종사자가 얻을 수 있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1996년 첫 출마 프리미엄을 누리던 때의 홍 지사보다, 금배지를 잃은 후 침잠해있다가 전혀 엉뚱한 곳인 동대문을로 갔던 홍 지사의 시기를 기억하고 대입하는 게 적당하다는 진단은 그래서 나온다.

홍 지사는 2001년 재보선에서 동대문을에서 출마했었다. 자신이 살던 송파갑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던 이가 연고가 없는 동대문을에 간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야당의 당세가 강한 곳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역량이 있는 이라도 섣불리 당선을 자신하기 어려웠던 것.

여기서 어려운 지형을 극복하고 당선되면서 홍 지사는 모래시계라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운 이력에서 드디어 자유로운 객관적 정치 실체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여기서 내리 당선돼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홍 지사가 현재의 정치적 위상을 일굴 수 있었다는 풀이도 그래서 뒤따른다.  

◆다정다감한 가장 이미지는 여전히 홍준표-안대희 공통분모?

그런 점에서 보면 노승환-노웅래 부자의 텃밭인 마포갑은 험지라고 할 수 있다. 5선을 지낸 아버지(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에 이어 MBC 기자로 일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아들(17대, 19대 두 차례 당선된 노웅래 의원)이 가진 탄탄한 기반을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여기서 다닌 외에 안 최고위원의 지역 연고가 약하다는 점을 견주면 그가 험지를 택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다만 안 최고위원으로서도 모교인 숭문중 소재지를 고른 이유가 있다. 숭문중 시절, 그는 낯선 서울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뭔가를 이뤄내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부산에서 열심히 놀았던 그는 숭문중에 온 뒤 열심히 공부해 명문 경기고 진학에 성공했고, 그런 기억이 여기서 정치적 운명을 시험하자는 결정을 하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최고위원이 마포 지역의 발전을 위해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면서 향후 그가 정무적 감각을 어느 정도 발휘하고 어필하는가에 판세가 달라질 여지는 높다. 마포갑은 18대에서는 MB맨 강승규 전 의원을 뽑아주는 이변으로 노씨 부자 장기집권 패턴에 일정 부분 금이 간 바 있다.

마포구 전체를 놓고 대선 정국을 분석해 봐도 박근혜 대통령 지지세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세가 약 10%선으로 나타났던 터라, 야당세가 강한 곳이긴 하나 이슈와 인물론에 상당히 변수 바람을 타는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안 최고위원이 이미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상당히 엄격한 검증을 받아 도덕성 논란이 일 소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 또 당의 쇄신이나 최고위원직 수락 등 국면에서 보인 모습을 보면 정무적 감각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상당히 불식시킨 것 역시 자산이다.

무엇보다 대형 사건과 거악 척결에 앞장서던 특수통 검사 이력과 기획 능력이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릴 능력이 지역구 발전에서나 집권 후반부 국회에서 필요하다는 대목을 부각시킨다면 표심 확보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한편, 안 최고위원이 가족에게까지 무차별 검증 위험이 미칠 것을 우려해 총리후보직에서 내려온 점은 홍 지사와 유사하다. 자녀와 노래를 같이 듣고 부인으로부터는 새가슴이라는 평을 듣는 안 최고위원의 온화한 개인적 모습은 홍 지사가 늦은 시간 귀가를 하지 않는 애처가로 이름났던 점과 닮았다.

다른 듯 비슷한 두 스타검사 출신 정치인의 행보를 견주고 어느 시점의 어떤 모습이 특히 비슷한지 비교하는 것은 그래서 더 흥미를 자아낸다. 연고 기반 없이도 엉뚱한 지역구에서조차 표를 끌어내는 매력을 갖춘 성공한 정치인으로 이들 두 사람이 나란히 정치사에 기록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