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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한국증시 110년 그 파동의 역사 <10> - 세계 대공황과 한국증시 <하>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 뉴딜 정책 이후 다우 상승 시작

임경오 기자 기자  2005.12.21 16: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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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실업자들이 한 레스토랑 앞에서 식량배급을 받기위해 줄지어 서있다.
[프라임경제] 1929년 10월24일 시작된 대폭락은 1932년 7월까지 이어졌다. 3년이 채 안된 기간에 10분의 1로 떨어지면서 90%에 가까운 돈이 증발한 셈이다. 기업과 은행은 줄줄이 도산하고 거리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실업자수는 1933년께 최고에 이르러 실업자수가 수백만 명에 달했다. 실업자와 빈민들이 식료품을 무료배급 받으려고 서있는 줄은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음식, 일거리, 숙소 등을 찾아서 헤매고 돌아다녔다. "형제여, 한푼만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라는 유행가 후렴이 나돌기도 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직전 2만5568개였던 은행수가 1933년에는 1만4771개로 줄었으며 개인및 회사의 저축액은 대공황 직전엔 당시 화폐가치로 153억달러였으나 1933년엔 23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또 프라임 금리의 경우 대공황 직전엔 5.03%였으나 1933년엔 0.63%까지 내려갔지만 경기 회복은 고사하고 대공황은 갈수록 깊어가기만 했다.

대공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1933년 취임한 새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취임하자마자 그 유명한 뉴딜(New Deal)정책을 펼쳤다. 빈민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복지정책보다 일자리를 만들어서 실업률을 줄이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뉴딜이란 원래 트럼프게임에서 카드를 새로 나누어준다는 뜻으로 1933년에서 1940년까지의 루스벨트 대통령 임기 제1기및 제2기의 경제정책을 총칭한다.

뉴딜 정책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사업등 대규모 토목사업등을 일으켜 실업자들을 구제하는 프로젝트이다.

◆ 미국 증시 뉴딜정책 세계제2차대전 거치면서 완전히 회복
   
 
     대공황 직후 실업률이 무려 25%선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프로젝트에 힘입어 미국증시는 1932년을 바닥으로 1933년부터 상승추세에 들어섰다. 그리고 세계 제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이 발달, 대공황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수천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다시 경기는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해 11월 일명 한국의 뉴딜정책이라고 불렸던 '경제 활성화를 위한 종합투자계획' 발표후 역시 한국증시도 본격상승, 올해에는 신고가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1933년 뉴딜정책에 따라 시행된 테네시강 댐건설사업 모습.
 
아무튼 다우지수가 1932년까지 급락한 후 1933년부터 본격 상승하는 모습이 마치 2002년 나스닥 붕괴 후 현재까지 상승중인 추세와 놀랄 정도로 비슷해 또한번 증시의 반복성이 유사함을 느끼게 해주며 향후 나스닥의 추세와 코스닥의 추세를 짐작케 해준다.

또 한가지는 다우지수는 1932년을 바닥으로 상승했지만 전력업종등이 주거래 종목으로 실제 경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다우존스 유틸리티지수는 1942년이 바닥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시한번 증시의 경기 선행성을 엿보게 해준다.

따라서 최근 국내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시가 신고가를 깨뜨리고 있는 점은 향후 국내 경기도 조만간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암시가 될 수 있다.

◆ 물가조정 다우지수 일정한 등락폭 형성하면서 상승

사실 1750년이후 255년간 미 다우지수는 장기 상승추세를 그리면서 오르고 있지만 여기에는 의미있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물가를 감안한 물가조정 다우지수( Inflation Adjusted DJIA) 주가는 신기하게도 일정한 등락폭을 형성하면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1750년이후 물가를 감안한 다우지수 모습. 다우는 크게 오르더라도 물가를 감안한 주가는 항상 일정한 밴드내에서 등락을 거듭하면서 상승하고 있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최근 다우는 수년동안 1만선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물가를 감안할 경우 사실상 하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다우지수가 어떤 기간에 많이 오른 것같아도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그다지 오른 것이 아니고 급락한 것 같아도 역시 인플레이션 조정 다우지수 밴드내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33년이후 미국증시는 대세상승해 왔지만 물가지수를 감안한 다우지수는 생각보다 높지않다. 이는 주가는 올랐어도 물가 역시 올랐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머니가 생각보다 커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미 다우지수는 1만포인트대에서 횡보를 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조정 다우지수는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실질적으로 주가는 하락하고 있으며 이같은 하락추세가 최대 하단 밴드까지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다우는 상당기간 횡보조정을 하거나 하락가능성이 높다고 할수 있다.

◆ 한미 양국 증시 1000포인트 돌파 모습 너무 똑같아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다우가 1932년 바닥을 찍은 이후 1966년 첫번째로 1000선을 돌파하기까지 34년이 걸린데 비해 한국도 1956년 증권거래소가 처음 개설된 후 코스피가 1989년 1000선을 처음 돌파하기까지 33년이 걸렸다는 점에서 너무도 유사하다.

   
 
       1931년 경성주식현물취인소는 반등을 시작, 미국보다 1년앞서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우가 처음 1000선을 돌파한후 16년만에 다섯번째로 1000선에 안착하면서 그후 다우가 1만선에 도달했고 한국 코스피 역시 처음 1000선을 돌파한후 16년만에 1000선에 안착, 신고가를 경신중이라는 점에서 너무도 유사하다.

따라서 5번째만에 1000선에 안착한 다우가 이후 15년만에 1만선에 도달한점에 비춰볼때 한국 코스피는 어디까지 오를지 자못 관심이 쏠리지 않을수 없다.

미국은 1932년을 바닥으로 미국은 상승했지만 국내 인천미두취인소와 경성주식현물취인소 및 조선취인소의 주가는 1931년을 바닥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미국 다우에 비해 1년 먼저 상승하기 시작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주신 분 = 증권연구가 위문복 (www.ahamedia.co.kr)

* 한국증시 110년사 시리즈 1편에서 9편은 프라임경제 사이트(www.newsprime.co.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