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사단법인 나주사랑시민회가 금안권역 종합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문충공 신숙주선생 생가기념사업추진회,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전남역사교사모임, 참교육학부모회 등과 함께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초청해 ‘신숙주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강연회를 25일 오후 2시 동신대학교 첨단강의동에서 개최한다.
나주사랑시민회에 따르면 나주 출신으로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역사인물이 신숙주 선생이다. 금안동(노안 기말리)에서 태어나 그는 세종임금에게 발탁된 집현전 8학사 중 한사람으로 훈민정음의 창제와 발전.보급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동국정운(東國正韻)’ ‘사성통고 (四聲通攷)’ 등 운서 편찬에 주도적으로 활약했다. 이후에도 국가의 기본질서를 적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교정.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세조실록’.‘예종실록’.‘동국통감’.‘국조보감(國朝寶鑑)’·‘영모록(永募錄)’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또한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0’를 지어 일본과의 교류에 도움을 주고, 오랫동안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명과의 외교관계를 맡는 등 외교정책의 입안·책임자로서도 활약했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를 잘 썼다고 한다. 저서로는 문집인 ‘보한재집’과 ‘북정록(北征錄)’·‘사성통고’ 등이 있고, 글씨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찬문과 ‘화명사예겸시고(和明使倪謙詩稿)’ 등이 전한다.
1452년(문종 2년) 수양대군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갈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면서 그와 깊은 유대를 맺어 세조의 즉위과정에 참여했고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이처럼 신숙주는 조선초기의 문물을 정비하는데 크게 공헌한 학자이자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단종을 따르려다 목숨을 바친 절의의 상징이자 자신의 절친한 친구 성삼문이 절의의 상징으로 청사에 이름을 남긴 것과 달리 변절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동안 신숙주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몇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연 단종에 대한 절의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단종이라는 한 개인을 위한 우직한 충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열 여섯에 불과했던 단종이 다스리는 조선이 과연 김종서와 황보인의 나라가 아니라 단종의 나라였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세조가 왕재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면 신숙주의 선택은 변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
이번 강연회에서는 신숙주 선생의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