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95년에 있었던 일이다. 필자가 경영하던 유공옥시케미칼 울산 공장의 생산능력을 30% 증가시키는 시설확장 프로젝트가 벌어졌다. 6월 말 예정되어 있던 정기 보수 기간을 연장하여 확장공사를 하기로 하고, 이에 맞추어 설계를 끝내고 확장공사에 필요한 각종 장비, 자재를 주문 도착시켰다. 공사의 시공(施工)은 자체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룹의 SK건설㈜에 맡기기로 했다. SK건설의 플란트 건설 전문가 팀이 면밀히 공사 물량을 검토하더니 시공기간 7/15~10/13 90 일간 650억 원의 공사비를 견적했다.
유공옥시케미칼의 이 공장이 생산 판매하던 상품은 우레탄 원료로 사용되는 산화프로필렌(PO)이었는데,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공급자가 제한된 상품이어서, 제품 생산만 하면 전량 판매가 가능하였으므로, 확장공사를 위해 소요되는 90일간의 기간이 너무 아까운 형편이었다.
궁리 끝에 이 공사를 대형 SUPEX 추구 대상으로 삼자는 의견이 발의(發議) 되었다. 그룹의 SUPEX 추구 역사 상 초유의 발주회사와 수주회사 양사가 공동 참여하는 확장공사 SUPEX 추구였다. 원래 이런 공사를 주고받는 일은 아무리 그룹 사 간이라고 해도 제로섬(Zero Sum) 게임이 되므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는 한 푼이라도 깎자, 더 달라 하는 다툼이 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종현 회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두 회사의 사장이 함께 이러한 의도를 설명하니, “아니 수펙스 추구가 거기까지 갔어?” 회장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말 회장의 기쁨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쁨조 실무팀이 모여 킥오프(Kick-off) 미팅을 가졌다. 입체적 로케이션(Location) 파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상황들이 구명(究明)되었다.
1. PO 공장은 가동 수익률이 높은 공장 (조기 준공시 1일당 3억원의 기회이익 실현)
2. 공사기간 90일은 가능한 최단 기간을 추정한 것임. 다만 공사기간 말미에 추석연휴(9/22~26)가 있어 일시 공사 중단을 감안하였음.
3. 주요 기기 도착 스케줄 때문에 공사 개시일은 앞당길 수 없음.
4. 공사 작업의 내용은 탑조류의 조립 건설이 20%이며 80%는 특수 용접에 의한 배관 작업임
입체적 로케이션 파악을 여기까지 하고 나면 우선 어떤 공동 목표가 눈 앞에 드러나는가?
그렇다. ‘공기 단축을 여하히 추구할 것인가’가 양사 공동의 이윤극대화와 연결되는 KF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정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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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였으니, 이를 방해하는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따져보니 여러 가지가 발견되었지만 그 중 중요한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배관 등의 용접이 불량하여 다시 용접하게 되는 재용접(再熔接)이었다. 최고의 용접사를 높은 노임으로 고용하여도 용접 후 엑스레이(X-Ray) 검사를 해보면 약 5%의 재용접율이 발생하는 것이 경험적 통계치였다. 이놈을 절대치 0%로 만들 수는 없는가?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고구마 줄기를 캐는 일에 해당할 것이었다.
또 하나는 공사 진행과정 중에 선후 공정이 톱니처럼 제대로 맞아 들어가지 못해 생기는 시간적, 물질적 손실이 있는데, 이를 일본 말 표현을 그대로 써서 현장에서는 ‘데마찌’라고 부른다. 통상의 현장에서는 이 ‘데마찌’를 감안해 경험칙(經驗則)으로 약 15% 여유 시간을 스케쥴 상 산입(算入)해 두는 것이 통례였다. 이놈을 절대치 0%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해서 장애요인 도출을 하다 발견한 고구마 줄기 둘을 Sub-KFS로 정하게 되었다.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장애요인 도출 시에는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왜’를 세 번쯤 반복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 경험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용접 불량률’, ‘데마찌’는 왜 생기는가? 이를 절대치 ‘0’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접근하면 해결책이 보인다. ‘장애요인 제거 방안과 그 실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리된 자료를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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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찌는 더위에 쇠 파이프는 달아오르고, 호신장구(護身裝具)는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불량률 ‘0’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에 가깝다. 작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정리정돈을 해 놓는 것까지는 노력으로 가능하였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작업 여건에 짜증나는 것은 어쩌겠는가?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이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온 공장 요원과 SK건설 요원들이 달려들어 SUPEX 추구를 하게 되자, 공사기간 중이라 상대적으로 다소 손이 한가하던 여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뭉쳤다. ‘우리도 무언가 공헌해야 할 것 아닌가? 온 구성원이 다 뛰는데…’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일용직 용접원, 작업원들에 대한 냉커피, 수박화채 서비스. 어깨에 ‘더운데 수고하셔서 감사합니다’ 띠를 만들어 두르고 아가씨들이 예쁜 얼굴에 기미 끼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현장을 누볐다. 재용접률이 통상의 5%로부터 하락하여 0.3%를 기록한 전무후무의 프로젝트의 전설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목표하였던 공기 단축은 SUPEX 목표 일수인 60일을 훨씬 하회하는 49일에 완공되어 초과 달성되었다. 조기 완공에 대한 보너스를 SK건설에 지불하려고 하자 SK건설 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비록 단가 높은 용접사를 투입하는 등 부분적으로 비용 증가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공기단축으로 인해 이미 충분한 공사비 절감이 이루어져서 보너스까지 받을 염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뿐 아니라 이 공동 SUPEX 추구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굳이 첨언하지 않아도, 양사 사장을 배석시킨 자리에서 최종현 회장에 대한 이 사업의 SUPEX 추구 보고가 자랑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은, 독자 여러분이 다 상상하여 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 회에는 ‘MPR/S 조직운영법’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