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e사상계] 영하 8도의 날씨, 천막과 현수막을 나부끼게 하는 거센 바람, 그리고 낡은 전기히터.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는 끊임없는 원성과 외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비정규직 법안 연내 통과’플랭카드가 걸려있는 천막농성장 뒤, 악조건에서 강추위와 싸우며‘장애인 차별금지 법안 통과’를 외치고 있는 두 사람.
천막농성장 안으로 들어가자 뇌성마비장애인 김태현(39, 1급)씨와 (사)한국뇌성마비 장애인연합 간사 박창준(35, 1급)씨가 조그만 히터에서 나오는 열기로 몸을 녹이며 그들의 고된 삶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 고단했던 뇌성마비 장애인들만의 삶
10월 26일경 시작해 농성한지 3개월여.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련된 논의가 중단됐다며 그들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가오는 임시국회에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에서 제시한 시정명령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입증책임전환 제도 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그들의 과제다.
2000년부터 운동을 하게 됐다는 김씨에게 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의 얼굴에서는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알지 않느냐”는 “말하는 것이 오히려 식상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전전해왔던 박창준 씨. 주차관리, 데이터베이스 작업 등 안 해본 것 없다고 한 그의 그간의 고충이 짐작이 갔다. 김 씨 또한 마찬가지다. 무리하게 융자를 받아 카페를 운영하다 실패를 맛본 그는 배달업, 공공근로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공공근로는 이들에게 정규직을 보장하지 않는다. 8~9시간 근무에 일당으로 받는 돈은 고작 2만8000원이다. 이런 그들에게 농성장 옆의 비정규직보호 운동에 ‘가슴으로 응원’하는 것은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정책문제만 제시, 제구실 못해
김태현 씨는 “장애인 단체 활동 하면서 개인적 의학적 문제 접근에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한다”고 했다. 장애인을 사회로 이끄는 교두보로 알려진 ‘장애인 고용촉진 공단’은 그들에게 정책적인 “문제만을 제시한다”고 불평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시설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많이 낙후한 상태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장애인을 돈으로 봐요. 장애가 있으면 ‘애물단지’라고 인식하고 수용시설에 모아두려고만 해요.”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장애인의 인식에 대해 사회적으로 진일보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제가 미국을 좋아하진 않지만 미국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세금을 내게 하는 국가에요. 세금을 내게 하기 위해 직업을 갖게 하고 교육을 하죠.”
그들은 “기회비용을 따져 봤을 때 미국의 교육프로그램에 드는 비용과 우리나라에서 수용시설에 드는 비용이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장애인 수용시설 착취 현실 말도 못해
이들은 “장애인 수용시설은 보통 지역유지가 운영한다”며 “지역경찰이나 공무원과 결탁하죠. 결국 복지회관은 돈벌이 수단인 셈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성람재단’, 대구 ‘청암재단‘은 그야말로 복지재벌이라는 것. 이 재단들은 ‘보조금 횡령’과 ‘장애인 인권유린’의 대표적 단체로 알려져왔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시정기구 일원화를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여성부의 여성차별금지법을 모두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소외계층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다.‘장애인’ 차별금지법이란 명칭은 사라졌다.
◆ 왜 꼭 ‘장애인차별금지법’이어야 하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차별금지법이란 이름으로 대체되어 기능을 함에도 장애인을 위주로 하는 독립적 위원회, 관련법이 필요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장애만 하더라도 청각, 시각, 발달장애 등으로 다양하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법을 단순히 차별금지법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의 장애인 인권 현실은 어둡다고 거듭 호소했다.
“인권위가 공개한 시안에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시정권한이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하는 두 사람은
“법적장치로 강화시켜 꼭 통과되길 바란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