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초코파이 이름이 왜 '아홉'이에요?"
"무슨 얘기니?"
"여기 아홉이라고 써 있잖아요."
"하하하, 그건 아홉이 아니라 한자로 '情(정)'이라 읽는단다."
"아하, 그렇구나."
# 며칠전 초코가루를 입술에 묻혀가며 과자를 먹던 초등생 딸(9)이 '불쑥' 내던진 질문이다. 딸 아이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을 때마다 '왜 아홉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리온 초코파이(사진참조) 과자봉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시각에 따라 情(정)을 '아홉'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한자를 잘 모르는 초등생들은 영락없이 아홉으로도 읽히도록 글씨가 참 묘하다. 마음심(忄) 부수가 '아'로 읽히고, 갈겨쓴 '청(靑)' 자가 '홉'으로 읽힌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홉'으로 읽어 망신을 당했다는 비슷한 에피소드도 꽤 올라온다.
'情'자는 '심방(忄)'변에 '푸를청(靑)'이 합해진 글자로, 情(정)으로 읽힌다. '마음속의 따뜻한 감정'이라는 뜻의 타고난 사람마음을 의미한다.
심장이 왼쪽에 있듯이, 심방(忄)변은 다른 글자와 어울려 한 글자를 이룰 때는 항상 왼쪽에 붙고, 심방변으로 불린다.
반면 부수가 글자 밑으로 가면 '심방'변이 아닌 '마음심(心)' 변으로 쓰인다. '뜻의(意)'나 '생각상(想)' 자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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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온제과의 최대 히트상품인 초코파이와 삼육 효두유. | ||
이참에 다른 제품도 착시효과가 있는지 궁금해 뒤져봤더니, 비슷한 효과를 내는 상품군이 또 있었다.
삼육두유에서 나온 신제품 '효' 두유(사진)도 상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효'자를 흘려쓴 글자는 얼핏 보면 '豆(콩두)' 자로도 보인다.
주관적이긴 하나, 두유의 원료인 콩을 형상화 한 꽤 어울리는 상품명으로 손색이 없다. 노년층을 위해 기존 두유에 견과류와 검은콩, 마, 홍삼농축액 성분이 함유돼 있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작명은 어떻게 지었을까. 시시콜콜한 것 같아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서 오리온 본사에 전화해 봤다.
오리온 홍보실 관계자는 "간혹 '아홉'으로 읽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마케팅을 위해 일부러 '아홉'처럼 보이기 위해 갈겨쓴 서체는 아니다"고 부인하며 "정(情)자는 해서도 초서도 아닌 별도의 서체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오리온 초코파이는 단일 상품으로 국내에서만 한해 10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2800억원어치가 팔린다고 한다. 과자의 역사를 새로 쓰는 셈이다. 1974년에 첫 출시됐으므로 올해로 39살이다.
제조사인 오리온제과 측은 롯데와 해태가 같은 이름으로 초코파이를 내놓자 2000년 들어 차별화하기 위해 '情' 시리즈를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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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초코파이가 출시될 때는 45g이었다가, 1990년대 들어 35g으로 양을 줄였다. 그랬다가 1998년 IMF 고통분담 차원에서 38g으로 늘렸다가 이후에 슬그머니 또다시 35g으로 양을 되돌려 놨다.
참고로 롯데 초코파이는 개당 34g으로 오리온 초코파이보다 1g 더 가볍다. 한해 1억개가 팔린다고 하니, 1g 차이는 1억g이다.
사먹는 사람한테는 눈꼽 만큼도 안되는 양이지만, 제조사 입장에서 1억g은 1t트럭 100대분이다. 말이 나온김에 과자 용량에 변화를 줘서 결과적으로 과자 값을 올리는 눈속임은 사라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