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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신간] 산다화

아사다 지로 지음, 권남희 옮김, 문학동네 刊

프라임경제 기자  2005.12.13 09: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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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철도원’, ‘장미도둑’ 등으로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아사다 지로의 ‘산다화’.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소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소설집이다.

한 상 가득 차린 성찬이 아닌, 조금씩 덜어먹으며 맛을 음미하는 세련된 별미처럼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여덟 편의 이야기들이 일상 속의 작은 환상을 선사해준다.

일상 속 작은 기적

오랫동안 길러온 고양이의 죽음에 괴로워하던 30대의 커리어우먼이 우연히 들른 애완동물 가게에서 만난 인간의 불행을 먹고 사는 전설의 동물 ‘시에’, 젊은 시절 연극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누었던 옛 연인이 몇 십 년 만의 재회의 순간에 처음으로 전해주는 사랑의 표현 ‘올림포스의 성녀’, 외동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경마장을 찾는 대학교수와 그로 인한 새로운 ‘인연’의 시작.

그가 그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마음 어딘가에 상처를 입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채 맞부딪히는 현실에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이 겪는 비현실 같은 현실, 거짓말 같은 진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어느새 우리의 삶에 겹쳐진다.

표제작 ‘산다화’는 그러한 ‘일상 속의 기적’을 담담한 감동으로 전해주는 수작이다. 부동산 사업의 실패로 빚을 떠안아 보험금에 가족의 장래를 맡기고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가 우연히 신혼 시절 아내와 다니던 목욕탕을 들르게 된다.

이십 년 전과 변함없이 자신들 부부를 기억하고 있는 주인과 정원에 만발한 산다화가, 비록 가난할지언정 마음만은 풍족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손짓한다.

쫓기고 쫓겨서 더 이상 움직일 곳도 없을 때 비로소 마음속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작은 불빛.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주위의 아군들.

그 때문에 힘든 현실 자체는 바뀌지 않더라도 사람은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와 위트가 공존하는 아사다 지로의 세계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 곳곳에는 또한 번뜩이는 재치와 날카로운 시각, 기묘한 반전과 아이러니 등이 특유의 담담한 문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만의 도시적이고도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제각기 상처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우연으로 잊고 살았던 삶의 조각을 깨닫고 새로운 시작의 선을 긋는다.

그것은 수많은 문제와 고민에 둘러싸인 우리가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기적들이다.

잠깐만이라도 그 행운의 환상에, 아사다 지로가 선사하는 거짓말에 속아보는 것은 예상 외의 치유력을 발휘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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