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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행 앞둔 ‘최고은법’ 시장질서부터 잡아야

박용수 칼럼니스트 기자  2011.12.12 14: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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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10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술인복지법안’이 포괄적인 문화예술인 지원이라는 막연한 개념만 세운 상태에서 내후년 법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공론화를 통해 시행령을 마련키로 했다.
 
소위 ‘최고은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사회보장법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이라는 취지에서 마련됐지만 예술인의 범위와 지원대상, 재원마련 등에서 난관이 예고된다.
 
지난 11월2일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린 문화예술인집단회 ‘밥먹고 예술합시다’에서도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현장의 고충을 터져 나왔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우선, 문화예술인 범위는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법안에 따르면, 예술인은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한정하고 있다. 문화예술인의 활동증명이라는 게 결국 영화제작사, 음반사, 극단 등 문화예술 제작사가 발급받거나,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인정하는 자로 한정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법안 취지나 목적으로 비춰볼 때, 이 같은 예술인 범주는 하나마나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인 이진원씨는 독립음악인으로 제작사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고,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경우도, 이 법안에 따르더라도,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
 
고(故) 최고은씨는 영화사와 창작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영화 제작이 늦어 몇 년간 계약금 500만원 수입으로만 버텨오다 생활고에 시달린 경우였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영화제작이 뒤로 미뤄지면, 시나리오 작가라는 증거를 댈 수 없는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된 계약관행은 쟁점사항이 되지 못했다.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시장에서 균등한 경쟁과 제작유통사와의 합리적 권리관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문화예술 산업은 거대 대기업들이 유통사를 거머쥔 상태에서 제작사와 창작 종사자 등을 먹이사슬로 착취하는 구조가 일상화되어 있어 정부 차원의 개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음원시장도 이렇다 할 기여도도 없는 대기업 유통사들이 판매수익의 40~50%를 가져가고 있다. 어떤 근거로 유통마진을 그 비율대로 챙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제작자와 창작자에 얻어지는 수입도 전체 음원수입의 10%에 불과한 형편이다.
 
영화계는 더 심한 편이다. 영화유통-제작-투자 등을 대기업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열위에 있는 영화계 종사자들은 거대 대기업 앞에서 쩔쩔매는 형국이다. 미국 영화산업은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자유로운 것과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문화예술인 지원에 앞서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만 제대로 짚을 필요가 있다. 음원산업이든 영화산업이든, 시장 지배자 사업자를 독과점 업체로 지정, 업종 진출의 제한과 최소 수수료 가이드라인을 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출판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약조건이 출판사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표준계약서 있기는 하지만 있으나마나라는 얘기도 들린다. 출판업계 종사자들의 처우도 타 문화예술계와 다를 바 없다.
 
작가와 저자는 창작활동 범주에 들어가지만 책 제작 과정에서 출판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의 처우는 형편없다. 또 이들은 출판사의 경영악화에 따라, 이직율도 높은 불안한 신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출판사들의 프리랜서라는 일용직 하청노동자로 출판계에 종사한다. 이들도 문화예술인 범주에 들어가지만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어 아쉬웠다.
 
작가들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등단폐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창작활동에 전업하는 예비 작가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성인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 중 일부는 대필 작가로 연명하거나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윤문작가라는 이름으로 출판계 변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40대 중반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조기 퇴직한 출판편집자들의 고통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은 1인 출판사를 창업하거나 프리랜서로 출판계와 연을 이어간다.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공평한 경쟁과 시장이다. 이 점에서 국내 유통사들은 반성할 부분이 많다. 반면 미국 아마존사가 운영하는 ‘createspace.com’은 칭찬할만한 사례다.
 
‘createspace.com’에서는 음악인과 작가, 영화인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직접 창작해 아마존을 통해 직접 판매한다. 이미 알다시피 유통사는 30%를 가져간다. 창작자와 제작사는 70%를 가지고 서로 나누기 때문에 큰 불만이 없는 것 같다.
 
국내 전자책 시장도 유통사가 매출수수료 30%를 가져가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다른 콘텐츠산업과 달리 국내 전자책 시장은 막 성장단계에 있어 독과점 문제가 덜 불거졌다 뿐이지 안심하기는 이른다. 이미 어떤 출판사의 책을 메인으로 뽑느냐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고 있어 과거의 악습이 재현될 가능성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현재 법안 시행령마련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재원마련도 남아 있다. 기획재정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고 큰 관건이란다. 우리나라는 출판산업 육성을 위해 면세혜택을 주고 있는데, 출판업에도 부가세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 재원으로 출판계 종사자들 등 문화예술인 지원 자금으로 활용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창작자들도 시대흐름에 맞는 도구와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북씨는 독특한 방식의 협업을 진행 중이다. 북씨는 지난달부터 전자출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작가 인세 수입의 50% 중에서 20%를 프리랜서 출판편집자들에게 인세로 나눈다. 이미 1호 작품이 출시되었고, 다행히 많은 작가회원들이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솔직히 셀프출판 작가들은 비문 등 교정교열 문제와 마케팅에 고심이 많다. 판매도 한계가 많았다. 이들의 작품들이 출판편집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상품가치가 더 높아진다. 셀프출판 작가들은 판매에도 큰 도움이 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또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 등 글로벌 마켓도 활용할 가치가 높다. 북씨도 이미 빅북이라는 전자책 유통앱을 출시, 7만명이 다운로드 받아 매일 10만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매월 판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글로벌 마켓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들에게는 큰 매력적인 시장이다. 콘텐츠가 좋다면, 이를 개발해줄 마다할 앱개발사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 창작자들이 시장에서 동료들과 경쟁할 시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정된 저작권법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에 따라 정부가 법안 시행에 앞서 불공정 계약 관행과 대기업들의 불공정 유통수수료 산정부터 바로 잡아준다면, 법안 시행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장담하고 싶다.

박용수 디지털셀프출판 사이트 ‘북씨’ 운영자 / 마이디팟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