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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닥 마흔이면 은퇴…길고 가늘게 가고 싶지만”

프로그램 전문인력의 가상 ‘취업 하소연’…“언 발 오줌누기식 고용정책”

임혜현 기자 기자  2011.12.12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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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경제성장률은 불안하고 실물경제로의 위기 전이는 이미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학력 과잉의 시대를 더 얼어붙게 하고 있다. 일찍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청년층이 고용손실에 가장 취약하다고 했다. 청년층 고용촉진정책은 MB정부 이전 외환우기 때부터 화두였으나, 제대로 된 정책은 없다는 비판만 무성하다.

다음은 청년층 고용촉진정책과 소득분배분균형, 실업 안전망 등 문제를 종합적으로 겪고 있는 한국 노동시장 현주소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가상 사례다. 본문 속 홍씨는 기사를 위해 임의로 설장한 가상인물이지만, 실제 프로그래머와의 인터뷰 결과와 업계 반응 등을 조사해 혼합했다. 경력단절 여성 문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2010년 8월 인하대에 생활과학석사논문으로 제출된 ‘고학력 여성의 경력단절 및 자녀양육 경험에 관한 연구(엄경애)’를 참조했다.

   
 
“치킨집 하는 백 과장, 찜질방에서 빙수 파는 오 선임, 해장국 팔고 있는 김 차장, 공예가구 만드는 김 부장, 즉시 돌아오라. (…) 모바일, 소셜 혁명에 그대의 피가 필요하다. (…) 업계를 떠난 고급 개발자들을 돌아오게 하소서”(홍익세상 노상범 대표가 블로그에 올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귀환하라’. 이 글은 천안함 장병 무사귀환을 기원, 화제를 모았던 글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육개장 사발면에 물을 붓고,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거지같은 소스를 짜놓은 부하 직원의 잘못을 수정하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스산해진 저는 내년이면 37살인 용띠 프로그래머입니다.

‘육개장’을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에는 석사 장교라고 해서 단기간 복무하고 바로 제대하는 장교 복무자들이 있었습니다. 저것도 군인이냐는 비아냥의 대상이 됐었지요. 지금도 육개장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이들이 남긴 전설적인 성과(?)가 ‘참 어지간했나 보다’, 싶습니다.

저는 육개장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6개월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요새도 쓰나 보더라고요. 1976년생 95학번, 휴학 조금과 군복무를 마치고 졸업장을 받아들고 대학문을 나선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어엿한 중견 프로그래머지만, 강산이 한 번 바뀌도록 어중이떠중이 취급, 6개월 프로그래머라는 꼬리표를 달고 설움을 받은 기억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IT 인력 양성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생각은 아마 어느 정부나 하나 봅니다(MB 정부는 정권 초인 2008년 7월 ‘New IT산업 발전전략에 따른 IT인력 양성방안’을 내놨고, 전문기술연수사업 등도 추진 중이다). 저는 원래 전산·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미 어려운 형편에 대학도 무리하게 다닌 터라 오래 놀 형편이 못 됐고, 짧은 연수 끝에 프로그래머가 됐습니다.

“6개월 개발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쓸모가 없다”는 소리에 6개월 배운 사람인 것 모르고 뽑으셨냐고 애써 버텼지만, 알면서 뽑았으면 그에 맞는 업무를 배정해 주면 된다는 항변이 스스로 말이 안 되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기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보인다, 그것도 일찍부터

단기 과정에서 그나마 마칠 수 있는 분야는 한정적입니다. 고급 부문은 손을 대지 못하다시피 하고 Java, Web, DB 등 그나마 좀 수월한 부분으로 빠지게 된 겁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C++이나 C#’을 안 쓰는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은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걸 나중에 고생고생하며 익힌 덕에 “6개월 개발자는 소모품이다”, “프로그래머는 35~40이면 은퇴”라는 소리가 오가는 세상에서 여태 버티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개념도, 자존심도 없는 (특히 초급) 개발자들의 개발새발 코드를 잡아줘야 하는 고참이 되었는데, 대량 생산 6개월 프로그래머들(물론 저도 그 중의 일부이긴 합니다만)이 과연 프로그래밍에 대한 애착이나 자존심이 있는지는 여전히 헷갈리는 문제입니다. 아무데나 ‘else if’절을 추가해서 구동만 되게 해 버리는 ‘코드 재활용’ 예찬론자부터 시작해서, 환경변수나 라이브러리도 안 쓰고 문자열로 해결을 보는 방법으로 쭈욱 밀고 나가는 ‘단무지형’ 등등 그 동안 오랫동안 단기교육=대량생산 품질미검증 인력들로 욕먹는 상황을 줄곧 겪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가 후려치기와 촉박한 시일 몰아붙이기로 ‘6개월’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건지, ‘6개월’이 이러고 물을 흐린 덕에 어차피 이런 것 단가가 싼 게 좋은 것이라는 기막힌 상황이 온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단가 문제에 야근은 밥 먹듯, 대기업 친구 월급과 비교하면 힘 빠져

뭐, 납품가 후려치기는 IT 인력 포화과잉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야근 문제는 꼭 우리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클라이언트가 절대 갑인 상황에서 일이 꼬이면 그저 “우리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라는 ‘쇼’라도 보여줘야 하거든요. 개발자가 무능했든, 설계가 문제였든, 혹은 PM/PL의 문제이든 무능했든 간에 중소기업 입장(이라기에도 낯간지러운 우리 업체)에서는 고객사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야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워낙 넓지 않은 업계에 일단 취업은 시켜야겠고, 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풀어 놨으니 아수라장 같은 환경이 된 건 사실이고, ‘경력’이란 것도 제값을 받기 힘듭니다. 일수만 채우면 똑같은 1년차, 2년차…이다 보니 구분이 잘 안 가고요. 자기 업그레이드한다는 건 힘든 일이구요.

매번 야근에 철야를 밥 먹듯 하면서도 좋은 회사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단가가 틀리니까요. 하기는, 이제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사오정 소리’ 들을 날이 얼마 안 남고 보니, 어차피 너나 나나 나중에 치킨집 사장이다 싶기는 합니다. 이러면 놀부 심보인 거죠? 압니다, 이런 말 하면 찌질한 거. 그래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네요(2003년부터 2010년까지 소득 양극화보다는 소득 불평등도가 상대적으로 심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 11월17일 한국경제연구원  설윤 연구위원은 ‘최근 양극화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실업수당은 너무 작아…경단녀 와이프가 나 대신 나서는 상황은 아찔

그나마 이런 자리라도 가늘고 길게 이어갔으면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갑자기 끈 떨어진 연 신세 되면 저희처럼 빈자리 찾기 어려운 업계 사정에 오래 버티기 힘드니까요. 급여 자체가 박해서 실업 수당을 계산해도 이걸 비빌 언덕으로 장기전 들어가 버티기는 어렵습니다(우리나라의 실업수당은 평상시 급여의 30.4% 수준으로 집계됐고, 이는 OECD 회원국의 소득보전율 중간값인 58.6%의 절반에 불과하다.).

와이프는 잠시 쉬고 있습니다. 어디 홀벌이로 살림이 쉽나 싶지만 어린 아기를 맡길 곳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엄경애, ‘고학력 여성의 경력단절 및 자녀양육 경험에 관한 연구’ PP. 22-23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은 만2세 이하 영유아가 있는 2주기에 주로 발생한다). 애만 좀 더 크면 돌아가겠다고 와이프는 말합니다. 나중에 애 키우려면 한두 푼이 들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문제는 자기는 자기 혼자 처지는 게 아닌가 싶다며 신문도 보고, 하는데 과연 들어가는 게 쉽겠냐는 것입니다(엄경애, 전게논문 P.94에 따르면 여성들은 경력단절 이후 복귀를 희망하고 당국의 지원 역시 늘었지만 효과에 대한 기대치는 냉담하다). 배운 왕년의 업무가 있는데, 아마도 자리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아마 마트 계산원이나 해야 할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돌이켜 본다는 말에 무슨 도덕적인 반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냥 돌아보자면 테크트리(Tech Tree: 일련의 조직화된 흐름. 특히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유닛의 업그레이드 절차를 뜻하는 말로 통용된다)를 잘못 탔지만 6개월 프로그래머치고는 그런대로 행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자부도 있고요. 다만 ‘88만원세대 취준생’들은 저희 IMF 세대보다는 좀 더 나은 테크트리를 탔으면, 뭐 그런 생각도 해 보고 있습니다.

한줄 요약: 내년은 흑룡띠라는데, 청년 취준생 여러분 모두 내년 한 해 상승하는 기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