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환골탈태(換骨奪胎).’ 이 사자성어를 빼놓고 코리안리를 설명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심지어 이 말 자체가 코리안리를 위해 생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불과 10여년전만해도 코리안리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었다. 당시 코리안리 실적은 영업손실 3818억원, 당기손실 2800억원에 달했다. 그랬던 코리안리가 이제는 내로라하는 세계 유수 재보험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실제 ‘재보험시장의 허브’ 싱가포르에서의 코리안리 위상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과거 코리안리는 재보험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원수보험사의 위험을 분산해 다시 보험에 가입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리스크 관리’가 되질 안았다.
1963년 정부 소유의 공사형태로 설립된 코리안리는 1978년 민영화됐지만 20년 넘게 공기업 특유의 안일함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발단이 됐다. 1998년 외환위기 때의 일이다.
당시 손쉬운 회사채 보증업무에만 주력했던 코리안리는 기업들이 줄도산 하자 휘청대기 시작했다. 1998년 외환위기 시절, 코리안리는 영업손실 3818억원‧당기손실 2800억원을 기록하며 파산직전까지 내몰렸다. 1년 안에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미운오리’서 ‘백조’되기까지
하지만 1998년 7월 지금의 박종원 사장이 취임하면서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먼저, 박 사장은 체질개선을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단칼에 290여명이던 인원을 200명으로 대폭 줄였다. 대리는 15%, 과장급 이상 간부는 50%까지 내쳤다.
또한, 부실의 핵인 보증보험 회사채 미구상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내다팔았다. 이때 생긴 1351억원은 새로운 돈줄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쓰였다. 당시 해외부문 매출은 전체의 3%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영업을 위한 필수조건인 기업 신용등급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찾아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코리안리는 보험계약 규모가 비교적 작은 아시아시장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2002년,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아시아 재보험시장 진출 3년 만에 ‘부동의 1위 기업’인 토아리를 2위로 밀쳐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탄력을 받은 코리안리는 내친김에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용등급이 문제였다. 우수한 보험계약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A’ 신용등급이 필요했지만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00년과 2002년 연거푸 ‘BBB’ 등급을 줬다.
아시아 재보험시장 1위를 꿰찼는데도 낮은 신용등급을 받자 코리안리로선 야속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최대 보험회사 전문신용평가 기관인 미국 에이엠베스트(A.M.Best)의 경우 코리안리가 아시아시장을 쟁취한 2002년, 회사등급을 ‘A-’로 매긴 터였다.
이에 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단판을 짓겠단 요량으로 2006년 직접 미국 뉴욕 S&P 본사로 쳐들어갔다. 자산이나 담보력은 작지만 리스크관리 역량만큼은 뛰어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결국 박 사장 일행은 ‘A-’ 등급을 받고서야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코리안리 해외실적은 급성장세를 보였다. 2007년 코리안리 해외 수재보험료는 6723억원으로, 전년 물량의 절반가량(42.2%)을 더 벌어들였다. 이후 △2008년 8923억원 △2009년 8208억원 △2010년 8265억원으로 평균 매출 8000억원대 이어갔다.
이에 따라 세계 재보험시장에서의 코리안리 입지도 점점 굳어져 갔다. S&P 조사에 따르면 2010년 보유보험료 기준, 1998년 32위에 그쳤던 코리안리는 2008년 13위에 오른데 이어 2011년 현재 세계 11위로 10위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싱가포르 입지 ‘괄목성장’
코리안리의 위상은 아시아 보험시장의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단연 돋보였다. 1975년 2월 주재사무소로 출범한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와 호주를 타깃으로 재보험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활동 중인 보험사는 2010년 손해보험시장 기준 총 50여곳으로 △재보험사 23개사 △캡티브사 64개사 △해외사무소 4개사 △로이즈 신디케이트 19개사까지 포함하면 무려 160여개사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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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 이영배 지점장. |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돌입한 코리안리는 10년도 채 안 돼 싱가포르에 진출한 재보험사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로 거듭났다. 2009년 기준, 코리안리는 세계 재보험사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시장점유율 4.4%를 유지, 싱가포르 진출사 가운데 아홉 번째로 많은 수주를 따냈다.
코리안리에 따르면 싱가포르 지점은 2010년 싱가포르금융청(MAS) 결산실적 기준, 매출 6,610만 싱가포르달러(한화 592억원)를 올리며 5년 새 3배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당기 순이익도 493만 싱가포르달러(한화 44억원)로 매년 안정된 수익을 시현하고 있다.
코리안리 싱가포르 이영배 지점장은 “코리안리 지점은 타 재보험사에 비해 적은 인력을 갖고 있으나 우리 지점 모토 중 하나가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3일 이내에 신속한 응대를 통해 거래 파트너들이 불필요하게 기다리거나 추측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서비스정신이 매출증대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영배 지점장과의 일문일답.
-재보험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재보험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재보험, 말 그대로 보험을 다시 든다는 의미다. 가장 큰 취지는 위험분산이다. 즉, 어느 모든 보험사들도 자기들이 인수한 보험위험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때문에 적정한 코스트(비용)로 다른 회사에 전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게 회사 경영에도 안정을 가져다 준다. 그런 보험회사의 위험을 전문적으로 인수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게 재보험회사다.
-회사 규모에 비해 상당수 독자들이 코리안리라는 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코리안리는 한국회사로는 유일한 재보험회사다. 아시아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다. 규모면에서도 최근 10년 새 상당한 성장을 해 지금은 코리안리라는 네임 자체가 하나의 가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일본의 토아리를 따돌린 지 오래다.
▲15년 전에는 토아리가 규모면에서 우리보다 컸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박종원 사장님이 오면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적극 해외시장 개척에 힘썼다. 2001년 9‧11테러 때도 시장이 하드화(보험료가 올라간다는 뜻)되면서 다른 회사들은 위축된 반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고객들 요구를 수용했다. 이 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코리안리가 싱가포르에 진출한 시기는.
▲1975년 사무소 형태로 진출했다가 3년 뒤 지점으로 전환했다. 싱가포르 시장에서는 우리가 뮌헨재보험사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재보험사다. 30~40년 가까이 지나오면서 이곳 시장에도 많은 부침이 있었다. 실적이 안 좋아 지점을 폐쇄하거나 M&A를 통해 처분한 경우도 여럿이다. 하지만 우리는 35년 이상 계속 생존해왔고 또 재무적으로도 무리 없이 재보험사로서 지급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의 코리안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오랜 기간 검증돼 온 것이다.
-진출 당시 한국기업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
▲일본회사와 비교해 봤을 때 후진국은 아니더라도 개발도상국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참 많이 달라졌다. 우리 코리안리를 포함해 한국기업이 갖고 있는 입지나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 배경 중 하나는 지금의 일본기업과 비교했을 때도 손색없는 질과 서비스다. 자동차 같은 경우에도 싱가포르서 가장 큰 택시회사인 컴포트(Comfort)사가 보유 차량 2,000여대를 도요타에서 현대차로 바꿨다.
-외국 원보험사를 상대로 계약을 따내기 힘들었을 텐데.
▲1975년 싱가포르에 진출한 이후 지점 선배들이 발품을 팔아 개척해놓은 거래를 잘 물려받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다. 여기에 회사 재무상태도 개선돼 신용등급도 현재 A등급으로 재보험 거래 파트너로서 사실상 클라이언트들에게 최고의 요건을 두루 갖췄다. 특히 과거 검증된 거래 경험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신설회사의 경우 파트너십 검증이 안됐기 때문에 출제사들이 거래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 35년에 가까운 역사를 통해 이미 검증이 됐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주로 인수하는 종목은.
▲우리 지점의 주 종목은 계약형태로는 특약재보험으로 화재, 해상, 특종 등 전통적인 종목의 손해보험을 위주로 하고 있다.
-올해 유독 사건사고가 많아 손해가 크지 않나.
▲2011년은 아마 재보험 역사상 자연재해 손실로는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실제 올 1~3월 1.4분기 재보험사의 자연재해 손실액이 이미 2010년 연간 손실액을 뛰어 넘었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지점 역시 이제 이로 인해 현재까지 재보험 관련 손실이 적지 않다. 다만 우리지점 같은 경우 사업율과 손해율이 다른 곳보다 양호한 편이다. 타 재보험사는 올 상반기 합산비율이 200%를 넘어선 반면, 우리 지점은 130%대이다. 그 이유는 수익성을 중시한 선별적인 위험선택과 함께 인수위험을 전액 보유하지 않고 재재보험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현대해상에 이어 삼성화재도 싱가포르 재보험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 보험사들이 싱가포르에 진출한다고 해서 꼭 우리 회사 매출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현대해상의 경우 재보험 중개사로 진출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로서는 환영이다. 우리도 어차피 중개사를 통해 거래하는 게 많은 까닭이다. 또 삼성화재의 경우 재보험사로 진출하긴 했지만 재보험사도 재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또 하나의 클라이언트사가 될 수도 있다.
-삼성화재의 경우 초기 600억원을 투입해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기세다.
▲600억원 정도의 초기 자본은 재보험시장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고 본다. 또한 아무리 큰 재보험사도 모든 계약을 100% 차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작은 계약은 모르지만 대부분 위험분산을 위해 복수의 재보험자를 필요로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어차피 한 두 회사가 독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지점이 ‘이것’만큼은 다른 경쟁사보다 낫다는 게 있다면.
▲첫 번째는 다른 회사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재보험 인수정책이 다른 회사에 비해 일관성 있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의 경우 시장 실적에 따라 한 동안 인수하던 종목을 갑자기 거부한다던지 또는 하루 아침에 출재사들이 수용하기 힘든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일관성 있는 조건과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회사보다 저렴하거나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계약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고지를 해서 출재사가 다른 재보험사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격인상이라던가 조건에 변화가 있을 때에도 충분한 설명과 근거를 제시를 해 그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