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파생상품시장에서 첨단 기법과 실전경험으로 무장한 외국인 ‘스캘퍼’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고빈도(초단타) 매매’를 말하는 스캘핑은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1초에만 수차례, 하루에 많게는 2만건 이상의 주문을 쏟아내는 매매방식이다. 외국인들은 세계 자본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며 익힌 고빈도 매매 기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상대적으로 국내 기관과 개인은 이들의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당국 역시 국내 파생상품시장에서 초단타 매매가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이들이 외국인이고 이들에게 수익률이 집중되고 있어 멋모르고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일 2만건 이상 ‘고빈도 매매계좌’ 외국인 98%
자본시장연구원이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만기된 상품을 분석한 결과 고빈도 매매자의 주문 비중은 옵션시장이 55∼90%, 선물시장이 60∼64%를 차지했다. 절반 이상의 주문이 고빈도 매매자에게 집중됐다는 얘기다.
특히 고빈도 매매자 상당수는 외국인이었다. 지난해 12월 만기된 KOSPI200 옵션상품 전체 상장 기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1000건 이상의 주문을 넣은 계좌는 2만2584개로 이 가운데 외국인 계좌는 76.2%에 달했다. 개인은 10.2%, 보험사와 증권사는 각각 7.0%, 6.1%에 불과했다. 하루 2만건 이상의 초단타 매매자 비중도 외국인이 75.6%로 1위를 차지한 반면 국내 기관은 1% 미만이었다.
선물시장에서는 하루 주문 1000건 이상 계좌 중 개인 비중이 44.3%, 2016개로 외국인 30.5%, 1390개보다 많았다. 그러나 주문 빈도가 많아질수록 외국인 비중이 컸다. 하루 2만건 이상의 주문을 넣은 계좌는 52개로 이 중 외국인 소유가 51개, 98.0%에 달했다. 나머지 1개는 증권사 계좌였다.
고빈도 매매는 시장 가격의 등락에 순간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매크로 변수에 의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국내 기관의 경우 전형적인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인 고빈도 매매로는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 소극적이다. 개인은 주로 전문투자자에 한해 고빈도 매매 전략을 쓴다.
반면 외국인들은 해외 시장의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를 기초로 한 전산 프로그램 기술이 발달해 국내 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인형 자본시장실장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이를 수익 기회로 삼은 고빈도 매매가 늘어날 수 있다”며 “규제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고빈도 매매 증가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고빈도 매매 규제 움직임
국내에서는 고빈도 매매 자체가 걸음마 단계지만 이미 부작용을 체험한 해외에서는 관련 규제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유동성 공급과 적정가격 산출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시스템 과부하에 의한 전산장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5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불과 수분 동안 수백 포인트 급락한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건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고빈도 매매 규제에 나섰다. 위원회는 브로커·딜러에게 위험관리 시스템을 준수하도록 하고 사업 활동을 문서화하라고 요구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최근 ‘금융상품투자지침(MiFID)’ 개정안을 통해 자동매매업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알고리즘 디자인과 목적, 기능을 감독기관에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도 높은 주문 제출율과 취소율에 대해 따로 수수로를 도입해야 하는지 검토하자는 권고안을 냈다.
금융당국은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 규제안을 내놓는 것은 이르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베제할 수 없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