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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홍콩식 위기’ 먹구름…‘임금 공감대 해법’ 절실

[심층진단] 인플레 가속+수출감소 이중고…‘홍콩 케이스’ 답습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1.11.29 0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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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 경제의 내년 전망이 우울하다. 우리 경제는 이미 지난 가을, 한동안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에 시달린 바 있는데, 상당수 전문가들은 성장률이 0이나 마이너스도 아니고, 물가도 7~8%로 아주 가파르게 치솟은 게 아니라는 점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은 일단 사그라드는 듯 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여부 못지 않게 여러 각도에서 우리 경제에 관련한 위기감은 여전히 높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현재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에 일기 시작한 포퓰리즘 논란이 경제에 미칠 영향, 그리고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의 하방 압력 속에서 중국, 홍콩 등 인접 경제 단위들과 어떻게 다른 상황에 처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성장은 하겠지만(스태그플레이션 논란을 잠재운 근거), 적잖이 외풍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세계 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출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형 경제의 약점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의 대표주자인 홍콩은 깊은 수렁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월말 여러 지표를 살펴보면, 홍콩은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상당히 높은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여기에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경제 전문가들을 경악시켰다.

   
홍콩은 오랜 세월 번영을 구가해 왔지만 중국으로 귀속된 이후 적잖은 비율의 인플레와 마이너스 성장세를 동시에 겪었다. 소규모 개방 경제가 작금의 세계 경제 위기에서 얼마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하는 사례로 주목된다. 더욱이 이런 위기에 선뜻 임금 인상을 선택하기도 어렵다는 우려도 나와 해결 과정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때 다이와증권 케빈 레이 이코노미스트의 “CPI 수준이 꽤 무섭다. 홍콩 주민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빠르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보도했다.

물가의 경우에는 일단 상승세가 주춤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달 9월 한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3% 상승했다. 이는 예상치인 4.3%와 일치하고 8월의 5.3%보다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물가 고점은 지났지만, 기대인플레이션과 근원인플레이션을 겹쳐 보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는 우려가 높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미 고공비행을 계속하는 모양새다. 이달 24일 나온 ‘11월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연평균 4.1%로, 전달보다 0.1% 하락했다. 지난 9월 최고점을 찍은 데 이어 소폭 하향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여타 지표들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독 소비자심리지수(CSI)만 오르고 있어, 위기 불감증 경제 모델이 정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위험 징후에 무뎌지는 만성화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즉 앞으로도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강하게 시장을 지배하면, 근원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미 11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기본적으로 인플레가 장기적 기대 심리가 높아져서 앞으로도 인플레가 높아지는 만성화가 일어난다면 중앙은행으로서 좌시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도 이 같은 위험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근원인플레이션을 견인하고, 견인된 근원인플레이션이 근원인플레율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면 그야말로 만성화된 인플레이션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의 ‘근원인플레이션 압력 지속가능성 점검 및 향후 전망’ 보고서가 전망하는 위험성이 대표적이다. 유가 등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돼도 근원인플레율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 장기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앞서 내년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중반, 근원인플레이션율이 3% 후반대를 기록해 근원인플레율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근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역전된다는 것은 농산물과 에너지 등의 가격이 향후 더 오르지 않더라도 그 영향이 계속된다는 소리다.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수출 둔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 은행인 소이에떼제네랄은 중기적으로(2013~2016년) 우리 경제가 견조한 수출 및 내수에 힘입어 4% 초충반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장이 문제다.

2012년에는 미국과 유럽의 경기 악화로 우리의 경기도 영향을 받아, 경제성장률이 3.4%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당초 3.6% 전망). 여기에 내년도 우리 나라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002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도 전망됐다.

바클레이즈나 스위스UBS의 전망 방향도 유사하다. UBS증권은 이미 이에 앞서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고점을 찍었지만 2012년 경제성장률(GDP)은 약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 같은 상황에 중국식 해법 따르기엔 역부족

결국 우리 경제가 적어도 내년, 혹은 앞으로 상당 기간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본 홍콩의 사례와 함께, 중국이 당면한 상황과도 유사해 보인다는 점에서 여러 해법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유례 없이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우 찾아오는 수순은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악순환인 셈이다. 블룸버그가 홍콩 경제와 관련, ‘마이너스 성장+인플레 고점’ 국면에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전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중국이 그간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상당한 임금 인상을 지속해 왔다는 근래 사정을 봐도 이러한 상황에 임금 인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지난해 중국 민간기업의 평균 임금은 전년대비 14.1% 상승했다. 컨설팅업체 헤이(Hay)그룹은 최근 2012년 중국 시장 임금 예측 보고서를 통해 인플레이션 요인을 감안할 때 중국의 내년 임금 상승률이 두 자릿수에 임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아울러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지 주요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빌려 “향후 5년래 중국 근로자 임금이 80%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 임금 상승 추세와 인플레이션의 혼재 상황은 중국 당국이 경제성장에 있어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소비를 늘리는 수단으로 임금 인상 필요를 느끼기 때문으로 읽힌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중국의 수출을 받아줄 곳이 없으니, 내수를 촉진해 문제를 풀며 최악의 시간을 견디자는 계산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 거시경제학회 왕지앤 사무총장이 지난 봄 “중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9%가 넘는 고성장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5~10%의 물가상승률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중국의 물가 상승은 수입가격과 식품 및 임금 상승에 따른 것이어서 10%가 넘는 악성 인플레이션과는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임금 인상이 이미 선반영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발전개혁위원회 장샤오치앙 부주임이 “임금 인상은 소비 증가에 도움이 된다. 현재 중국 인플레이션의 다양한 요인 가운데 임금 인상이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또 중국은 이러한 임금 인상 압력과 인플레이션 국면을 치르면서도, 상당한 통화정책의 추진을 밟아 왔다. 중국은 한동안 광의통화(M2)의 폭증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후 기준금리도 0.25%포인트씩 2번, 0.5%포인트 인상해 1년 만기 대출기준금리가 6.31%로 높이는 등 조절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내년 통화정책을 미세조정 정도로 집행할 여유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중국신문’ 25일 보도 내용 참조).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렇게 중화권에서 보이는 것처럼 선뜻 임금 인상 필요가 있다고 해서 새롭게 이를 반영하기 어렵고, 통화정책 추진도 여의치 않다.

우선 임금을 인상하게 되면 제품 가격에 이것이 전가되는 게 불가피한데, 중국의 수출 경쟁력과 달리 저가 공세가 가능한 상황이 이미 아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는 경우를 선뜻 택하기 어렵다.

아울러 이미 시중의 통화량 증가율이 지난 6월 이후의 반등세를 지속하며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는 등 돈을 더 푸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국은행의 ‘2011년 9월중 통화 및 유동성 동향’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 증가율(평잔, 전년 동월 대비)은 9월 4.2%를 기록해 전월 4.0%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3월 4.3%를 기록한 뒤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관련해 시장은 당국을 믿지 못하는 수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준금리를 유지하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중장기 물가안정에 대한 강력한 정책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내놨다. LG경제연구원의 ‘2012년 경제전망: 국내경제 성장률 3%대로 하락’에서도 △점진적 금리 인상의 필요성 △재정 건전화 기조의 유지 등을 당부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저임금의 속도 조절 필요성 등 임금 인상 압력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우리 당국이 내년쯤 금리 인하로 들어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 등의 발언에도 좀처럼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인상까지 치달으면 인플레이션을 더더욱 통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가계빚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 질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어 임금 인상이 소비 진작으로 바로 반영될지도 불투명하다.

대기업만 좋은 임금인상 대신 고용·복지 연계 정밀시술 필요

따라서 우리 경제의 운용 상황에는 택할 방법이나 그 폭이 넓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높여주더라도 통화정책 등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면 중국처럼 나름대로 시간벌기 전략을 택할 수 있지만, 이런 사정이 여의치 않음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하지만 우리 임금 관련 흐름은 이와 역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따라 부의 불균형과 소비 유발 등 경제 효과 왜곡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의 100인 이상 사업장 76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올해 임금 협상이 타결된 기업의 평균 인상률은 5.4%를 기록했는데, 이 와중에서 주로 덕을 보는 것은 대기업 직원들인 것으로 보인다.

경총에 따르면, 1000명 이상 대형업체들의 임금인상률이 5.5%로 가장 높았다. 100~299명은 5.3%, 300~499명은 5.1%였다. 500~999명 규모 회사에서 인상률은 4.7%에 그쳤다. 대기업의 임금 인상에 물가 압력 등이 가중되지만, 정작 이 부작용은 모두 나눠지는 게 아니고 원래 급여가 상대적으로 적고 상승폭도 대기업에 비할 바가 안 되는 중소기업 구성원들에게 이 고통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는 모순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향후 대-중소기업간 임금 관련 모순을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 국면에서 임금 상승 압력을 분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각종 선거가 가까운 현상황에서는 근원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장기화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임금 인상에 대한 경제외적인 측면에서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터라, 이 같은 각도에서의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근로장려세제(EITC) 등의 확대나 비정규직 대책 등은 현재의 모순을 완화하고 해결할 적당한 카드로 꼽힌다. 하지만 이러한 해법은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재정 건전성만 파괴하는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를 남기고 있다. 
   
각종 분규가 일어나고 있으나, 막상 각종 불합리에 대한 해결책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플레가 임금 인상을 부르지만, 현재 임금 인상의 적절한 처리가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보다 근본적인 EITC 급여구조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과 관련해서 박 전 대표가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거나 ‘2분의 1’로 지원 금액을 늘리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현재 정부안은 5인 미만 시업장에서 주15시간 이상 근무하고 최저임금 120% 이하를 지급받는 비정규직, 저임금 근로자 122만명에 대해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 중 3분의 1을 지원하는 안으로 확대 추진).

민주당의 ‘헌법제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에서 지난 11월17일 내놓은 정책 과제에서 나온 비정규직 문제 해법 역시 상당한 지출을 요하기는 마찬가지다. 119조 특위 유종일 위원장은 “비정규직은 보험과 같은 추가 비용이 들지 않고, 해고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시간당 임금을 정규직보다 더 높이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110%로 해야 한다고 주장). 이는 비정규직 임금을 2017년까지 정규직 대비 80%까지 높이자는 민주당의 기존 방안보다도 더 나아간 것이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 불균형 문제에 관련한 손질이 가능하도록 선심성 예산의 대폭 절감 합의가 필요하고, 아울러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연봉 인상과 그로 인한 불균형 해결을 위한 한시적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연봉제 도입 당시 임금수준 하락 등 근로기준법상의 ‘불이익 변경’이 발생치 않도록 임금인상이 다소 높게 이루어진 점에서 연봉제 실시 기업의 임금이 높은 현상이 있는데, 일시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특별법 마련 등 해법이 없으면 해소가 어렵다. 자칫 무분별한 임금 인상 러시로 인플레이션 국면이 악화된 상황을 맞으면 중장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2012년 수출 악화 극복, 그리고 2013년 균형 재정 달성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고삐 풀린 임금 인상의 제어 대책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