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5일 '아시아의 금융허브' 싱가포르 현장 취재를 위해 우리나라 '금융 일번지' 여의도에서 출발해 오후 2시10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유사하면서도 명확한 대조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간주 아래 '한국 금융시장의 데칼코마니…싱가포르'라는 대전제를 취재 야마(핵심)로 잡고 의기도 양양하게 비행기에 올라탔다.
오후 4시43분. 둔탁한 이명을 느낌도 잠시, 비행기는 순식간에 사선으로 힘찬 획을 그리며 날아올랐고 한국기자의 긍지를 재차 가슴에 고이 새기기에 충분한 6시간 동안의 길고도 짧은 비행을 마치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한 첫날, 다른 동남아국가와 별 차이가 없다는 감흥뿐이었지만 이튿날 싱가포르 금융시장 전반에 관한 취재를 시작하면서 전일의 때 이른 소회는 '작은 숲조차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미숙한 기자의 외눈박이 시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싱가포르는 말 그대로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역할을 백분 수행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굳건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알려진 대로 말라카 해협의 천혜 자연조건을 극대로 살린 항만의 이점을 극대화해 전 세계 교통과 물류, 금융의 허브로 두각을 나타냄과 동시에 친기업적 사업 환경조성과 외국 자본 규제 완화책 등을 시너지로 내세우며 세계 금융시장의 다크호스가 됐다.
지난해 14.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싱가포르는 올해 역시 최소 5~7%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실제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 14%대 고성장을 이뤘던 싱가포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4%대의 성장률을 이어왔고 특히 금융서비스 성장률은 지난 2005년 이후 2010년까지 6년 동안의 전체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을 웃돌았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싱가포르를 겨냥한 세계 금융시장의 날선 비판도 있다. 지난 6월 미국 재무장관인 가이트너는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금융콘퍼런스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이 느슨한 금융규제로 금융회사를 유혹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이트너 장관의 발언은 금융 파생상품 관련 규정을 완화하려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향해 경고한 것으로, 글로벌 파생시장의 규제정책과는 상관없이 자국 금융정책 우선주의를 택한 자유금융 국가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자국 금융정책 우선주의에 따른 교통적 반대급부로 싱가포르 금융시장의 규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외국 금융투자업계에 대한 리테일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리테일 영업이 막히다보니 싱가포르에 진출한 은행 및 증권사 현지법인들은 독자 채널 및 자동화기기 설치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이유와 맞물려 싱가포르에서 기업 간 거래를 제외한 개인 금융서비스는 미비한 게 사실이다. 편의점에서도 50싱가포르달러(한화 4만4310원가량) 미만의 거래는 신용카드를 내밀더라도 거절당하기가 일쑤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발급을 신청해도 길게는 2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금융투자 상품에 있어서도 무조건 관대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 이익이 되는 상품과 해외에서 이익이 되는 상품을 엄격히 구분하는 규제의 틀을 잡아놓고 국익에 우선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대범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9월말 프랑스 헤지펀드 시딩 전문 운용사인 뉴알파(New Alpha)와 협약으로 관심을 받은 '우리앱솔루트파트너스(WAP)'의 실질적 책임자인 신남 WAP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리스크관리임원(CRO)은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내부에서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권장하고 있으나 해외로 나가는 상품은 나름의 규제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단점은 한국인을 비롯, 이미 까다로워진 선진 자본국민의 금융식성을 맞추기엔 상당히 부족하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외국계 금융투자업계를 대상으로 현지 예수금 일정 비율이상을 국채·현지통화 운용 등 적격자산 보유를 의무화하는 자산유지비율(AMR)을 적용, 현지법인들이 싱가포르 내 중소기업 대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에 꼽을 정도인 이러한 일부 단점을 제외하면 싱가포르 금융시장은 아시아 선진 금융강국으로, 자금력을 보유한 외국계 기업은 물론, 일정 영업능력을 갖춘 중견 금융투자업체에게는 기회의 땅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회의 땅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16일 신남 CFO와 공동인터뷰를 진행한 우리투자증권 박병호 싱가포르 현지법인장은 "일단 올해 기업실적을 보면 괜찮은 편이고 이머징마켓에서의 리더십도 갖고 있다"고 촌평했다.
이어 박 법인장은 "그러나 외국계 증권사나 한국 증권사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언급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가치대비 수준)을 따지는 건 그만큼 국가 경쟁력이 약하다는 반증"이라며 "세계 수준에 맞추려면 이에 걸맞은 투자와 인적 인프라 구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규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무엇보다 공매도 규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공매도 규제는 있을 없는 일이라는 것.
박 법인장은 "공매도는 불공정 게임"이라며 "공매도 금지가 주가 진정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결국은 불공정 거래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어차피 외국계와 기관 등 대형자금은 공매도에도 편법을 이용해 거래를 할 수 있지만 결국 별 다른 대책을 세우기 힘든 개미투자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7일 만난 한국투자증권 남궁성 현지법인장도 한국 증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남궁 법인장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다소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라며 "유로존 및 미국, 중국변수에 따른 한국의 경기 악화 가능성도 투자전략 시나리오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한국 증시는 다른 시장에서 갖지 못한 매력이 많다"며 "한국인의 우수한 개개인의 능력은 현지에서 생활하다보면 금방 표시가 난다"고 덧붙였다.
남궁 법인장은 또 "이러한 점은 한국 연구원들의 리서치 능력이나 한국의 금융상품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충분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렇듯 싱가포르 현지에서 조망한 한국 경제는 각종 경제보고서에서 쏟아지는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경험은 미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싱가포르에서의 4일은 앞으로도 한국증시를 바라보는 본 기자의 얼룩진 프리즘에 보다 선명한 시야를 제공하는 화면조정 기간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자본주의 공산국가', '공산주의의 민주적 최종진화형 국가'라는 인식이 박힐 만큼 싱가포르 정부의 기막힌 행정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결국 이러한 행정정책이 사면이 바다로 막힌 소국의 국익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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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출장을 떠나면서 '금융 선진국 일보 앞에 서 있는 한국의 기자'라는 자긍심을 내려놓지 말자고 거의 생떼 수준의 자기최면을 걸었건만 결국 싱가포르를 떠나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혼(魂)의 자국'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새겨진 소담한 기억마저 아시아 금융선진국에 대한 아련한 동경으로 남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