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주(第酒)를 담글 때에는 종이로 입을 봉하는데, 이는 침 한 방울이 튀면 술 전체에 부정이 타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관을 반영했다고 보이는 판결이 근래에(금년 7월) 지방법원에서 나왔는데, 판결 취지에 따르면 후손이 독립운동을 했다 해도, 선조의 친일 행각을 덮는 효과는 없다고도 한다.
청주지방법원 행정부는 7월14일 “조부가 친일행각을 했지만 그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벌인만큼 국가에 재산을 귀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후손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부) 홍승목이 작위를 반납하거나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아들 홍범식(군수로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자결) 및 손자 홍명희(1919년 충북 괴산에서 만세운동 가담. 소설가. 이후 북한 부수상) 등 그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홍승목은 이들 행위의 중간인 1918년 2월 부동산을 일제로부터 하사받았으며 재판부는 그러므로 “홍승목이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라고 해석했다.
중간에 사(邪)가 끼면 아무리 물을 타도 일을 바로 잡기 어려움이 이와 같다.
하물며 그 큰 독립운동의 은공으로도 일가붙이의 허물을 모두 면책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정책 판단을 하는 관료들이 평소 세운 공로로 자신이나 소속 관청이 만든 어느 정도의 허물을 가릴 수 있다고 보는 건 애초에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앞의 일에 미진한 구석이 있다면, 뒤에 잘해서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점수'가 있을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니, 그 판단은 후세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18일,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에 대해 ‘징벌적 매각 명령 없이’, 그리고 ‘10%를 넘는 지분에 대해’, ‘6개월 내 매각’이라는 후한 조건으로의 매각 명령이 내려졌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금융위가 내린 데 대해 홀가분한 반응도 보이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대책반장다운 면모로 일을 마무리한 결과라 하거나, ‘결자해지’라고도 하는 소리도 들린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03년 옛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감독정책1국장 재직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실무를 담당했고 이번에 금융위 수장으로 이번 일을 직면한 것을 감안한 소리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적당한 평가는 아니다. 특히나 비금융주력자 판단 문제를 도외시하고 18일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문제다.
일본에서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등 논란이 불거지고 있고, 이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는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될 수 있고 금융당국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면 기존 외환은행 한도초과 보유주식 매각을 10% 초과가 아닌 4% 초과로 명령해야 한다. 그러나 이 논란에 대해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김석동 위원장은 “몰랐다”고 일축했다.
모른 게 문제가 아니고 모르고 일을 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모든 게 덮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계에서는 2007년 경제개혁연대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론스타 산업자본 심사 관련자료 공개 청구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24일로 결정됐는데 금융위가 서둘러 18일 이런 결정을 강행한 것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 당국이 대법원 판결 이전에 론스타에 면죄부를 주려고 이런 일정 배분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앞전에 비금융주력자 문제에서 혹시나 완벽치 못하게 일을 했을 수 있었다 해도 이를 중간에 어느 정도 상쇄할 기회는 없지 않았던 것인데(대법원의 판단을 받아 본 다음에 매각 명령과 관련한 판단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위는 스스로 그 기회를 저버렸다.
더욱이, 금융위는 이전에 대주주 자격 박탈과 관련해서는 법원 눈치보기(내지는 눈치를 보는 듯 하면서 책임을 넘기는 일명 변양호 신드롬으로 의심되는 행각)를 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이후에는 법원 결정을 기다려보겠다며 쟁점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당국자들이, 이번에는 중요한 사항인 자료 공개 청구소송 결과를 무시해 스스로의 행보에 일관성 결여를 보인 셈이다.
이번 매각 명령으로 모든 게 해결되고 홀가분하게 문제에서 놓여난 것도 아니다. 직무유기 등으로 문제를 삼아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어, 결국 이번 18일 매각 명령으로, 금융위는 체면도 실리도 모두 잃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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