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는 그녀의 고운 손. 환갑을 넘긴 세기의 가객 조용필의 노래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던 눈물 젖은 편지. 역시 1951년 생 임창제의 노래다.
여기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하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애간장 녹이는 연애편지의 단골이었다. 모두가 펜으로 종이에 꼭꼭 눌러써 빨간 우체통에 넣거나 뒷집 아이에게 사탕 사주며 담배 가게 아가씨에게 전달시켰던 편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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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우체통의 변화는 지난 1999년 김영사에서 출판했던 MIT 윌리엄 미첼 교수의 ‘비트의 도시’에서 가장 먼저 예견되었던 소재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공간의 발전으로 대형 도서관의 열람실과 서고는 작아지고 전자책(e-book)을 위한 외장하드 공간과 네트워크 시설 공간이 커지는 등 도시와 건물들의 구조와 개념도 완전히 바뀌게 될 것까지, 이 책의 예견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잉크 냄새 풍기며 하루에도 수천, 수만 권이 쏟아져 나오는 종이책(이하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책은 죽지 않는다! 이것이 ‘책의 우주’가 선언하는 대명제다.
이 책은 이태리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손에 꼽히는 애서가, 최근 출판된 ‘젊은 소설가의 고백’까지 한국에서도 무지하게 책이 많이 나오는 움베르토 에코. 프랑스의 대단한 시나리오 작가, 지성인, 역시 지독한 애서가라고 출판사가 소개한 장클로드 카리에르.
이 두 사람의 책의 운명에 대한 대화를 (필자는 누군지 모르는) 장필리프 드 토낙이 사회를 보고, 정리를 했다. 책의 부제가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지만 모든 것은 좀 심하고 ‘많은 것’에 대한 이 두 거장의 ‘사유’가 녹아 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필름, 마그네틱 테잎, 플로피디스켓 등 선풍적이었던 기록 수단들이 기술발전으로 사멸,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외장하드로 대체되고 있지만 이 또한 전원이 빠지면 무용지물이 아니냐며 컴퓨터의 득세에도 결국 종이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 그럴 수 밖에 없는 인류 문명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며 시작되는 이들의 대화는 사뭇 지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책은 바퀴나 수저 같은 완전발명품, 이들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는 새로운 발명품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TV의 출현으로 라디오는 영영 사라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꿋꿋하며, ‘나꼼수’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예상치 못할 진화를 거듭하지 않겠느냐는 공감이 얼핏 드는 대목이다.
그런데 책과 동반된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논하는 이들 거장들의 ‘책 이외의 많은 것들’은 충분히 읽을 가치를 인정한다 치더라도 ‘책이 영원할 것이다’는 주장은 사뭇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들이 대화를 나눴던 2009년에는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또는 인터넷 이후의 그 무엇을 기반으로 진보하는 인류의 문명, 특히 기록과 저장, 보존의 방식은 도대체 감도 잡기 어려울 만큼 안개 속이다. 2011년 11월 현재 스마트 폰이 미래의 동굴 초입에서 일으키는 거대한 돌풍만 봐도 그렇다. 아직 우리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렇다 보니 세계적인 출판으로 상당한 것(?)을 얻었을 에코로서는 책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싶겠지만 그게 어쩐지 불타는 왕궁에서 ‘전하!’를 외치는 환관과 무수리들의 허망한 외침 정도로 밖에 안 읽히는 것을 어쩌랴.
이들이 지금쯤 자신의 핸드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꿨다면 아마도 ‘책의 우주’에 대해 몇 년 후 개정판을 내야 할 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아주 더 먼 미래에는 책이 필수불가결한 어떤 이유로 생존은 하겠지만 컴퓨터를 끝내 이겨 나가는 완전발명품의 지위는 잃게 될 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또 한가지, 이 또한 ‘책 이외의 많은 것들’과는 별개로 이들이 유럽의 지성인들이다 보니 모든 것이 유럽 기준이다. 쿠텐베르크의 성서 이후 1500년 까지 출판되었던 유럽의 고서(인큐네뷸러)에 환호하는 이들이 751년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목판본이라 뺀다 해도 쿠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선다는, 더구나 아직도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끌려가 붙잡혀 있는, 유네스코 공식 지정 세계기록유산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불편한 진실 때문에 모르는 척 했든지. 이 책에 두 거장의 ‘사유’가 녹아 들었다는 대신 ‘지식’은 뺀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의 우주’는 책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단편적 시각의 서평을 쓴 필자와 달리 이들이 책을 빙자해 훑고 다니는 문명인, 지성으로서의 대화를 높이 살 책이다. ‘화씨 451’은 종이가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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