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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원순 시장 취임…온-오프라인 온도차

이보배 기자 기자  2011.11.16 17: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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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6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초로 시도한 인터넷 생중계 ‘온라인 취임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취임식이 생중계되기 전부터 시작된 박 시장을 향한 축전은 방송 당시는 물론 취임식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파격적이고, 신선했으며, 감동적이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디 copypa○○○은 “박원순 시장님 취임식부터 너무 멋지다. 이런 우리 모두의 기대가 시장님과 시민의 협력으로 꼭 멋있는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이렇게 감동적이어도 되나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아이디 훈은 “박원순 시장의 취임식을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사람하나 바뀌었을 뿐인데…”라고 소감을 밝혔고, 또 다른 네티즌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도깨비시장, 후암시장 다 가봤지만 이런 시장 처음이야”라며 위트 있는 글을 남겼다.

온라인 세상이 이렇게 들끓고 있는 가운에 오프라인 세상은 약간의 온도차를 보였다.

이날 박 시장은 취임식을 마친 뒤 시민들과 ‘오프라인 스킨십’을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향했다. 박 시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수용방식을 놓고 반발하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과 마천 뉴타운 반대 조합원 등 대부분 뉴타운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16일 온라인 취임식을 마친 뒤 '오프라인 스킨십'을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 시장에 대한 응원과 축전으로 들끓는 온라인 세상과 달리 오프라인에서 만난 시민들 대부분은 재개발, 뉴타운 사업 등에 대한 하소연으로 박 시장을 맞아 다소 안타까웠다.

덕수궁 돌담길부터 대한문 앞까지 재개발·뉴타운과 관련된 하소연을 하기 위해 모인 시민은 1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박 시장이 집무실에서 나와 시청 울타리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한 할머니의 통곡이 시작됐다. ‘사당동 지역주택조합원’ 피켓을 들고 있던 이 할머니는 “사당동 171번지에서 40~50년 동안 살았지만 쫓겨나게 생겼다”면서 “아침 8시30분부터 박 시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울먹였다.

처음으로 만난 시민의 격한 눈물에 당황한 박 시장은 “이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주겠다”면서 “그만 우시라”고 위로를 건넨 뒤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누구야? 연예인이라도 왔어? 에이 박원순이네”라며 실망스러움을 표현했고, 여고생 두 명은 바로 앞에 박 시장을 두고도 “박원순 시장이 누구야?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한 번도 못 봤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몰려든 인파 속에 박 시장은 다소 힘겹게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가던 길을 멈춘 시민들과 박 시장의 팬클럽 회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서울’ 등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와 바람개비를 흔들며 환영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자리에 모인 시민 대부분이 재개발·뉴타운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축하인사 보다는 “재개발 문제 좀 해결 해달라”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결국 대한문 앞 ‘시민과의 번개팅’은 ‘재개발·뉴타운 성토의 장’이 되고 말았다. 

대한문으로 나서기 전 취임식에서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뉴타운 사업은 가장 큰 고민거리”라며 “3년간 대머리가 되더라도 열심히 고민해 이 문제를 풀겠다”고 강조했던 박 시장의 취임사가 무색하게도 시민들은 하나같이 재개발·뉴타운 사업을 주제로 박 시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부 시민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피켓의 내용이 잘 보일 수 있게 모든 카메라의 시선이 쏠려 있는 박 시장 옆에 자리를 잡으려 안간힘 썼다.

재개발·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마련을 위해 충분한 약속을 약속했던 박 시장으로 시장이 바뀌면서 누구보다 기대고 싶었을 시민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공식 취임식을 마친 당일, 축하인사는 뒤로한 채 하소연만 난무했던 ‘오프라인 스킨십’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재개발·뉴타운 사업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마이크를 잡아든 박 시장은 “선거 전부터 시장이 되면 방에만 머물지 않고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 말씀을 듣고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많은 분들이 문제를 안고 나와 계신데 취임사에서 말했듯 뉴타운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복잡해서 쉽지 않겠지만 여러분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방법과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프라인 스킨십’ 말미에 때 아닌 ‘빨갱이’ 소동이 벌어졌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박 시장을 향해 “아버지가 빨갱이라면서, 맞아요?”라고 소리친 것.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물론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해당 남성을 질타하며 말렸지만 그는 한동안 멈추지 않고 “박원순 빨갱이” “빨갱이 시장”이라는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사랑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등 훈훈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 박 시장의 ‘오프라인 스킨십’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보이며 대한문을 떠나는 박 시장의 어깨가 가벼워 보이지 만은 않았다.

취임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박 시장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시작부터 너무 큰 짐을 지워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