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감사원이 투자자들에게 지급돼야 할 선물 현금위탁증거금 이자 400억원을 증권사들이 유용했다고 발표하자 증권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앞서 모 증권사 대표이사가 동생 명의로 40억원대 주식을 불법거래했다는 보도로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는 결국 한국금융투자협회를 통해 11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에 나섰다. 증권업계와 한국거래소의 용어 정의가 다른데서 불거진 오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심쩍은 구석은 여전하다.
위탁증거금은 투자자 예탁금의 일종으로 증권사가 고객의 매매주문을 받을 때 고객에게 담보로 납부하게 하는 일종의 보증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선물거래 수탁 시 거래대금의 15%(코스피200기준) 이상을 위탁증거금으로 맡겨야한다. 예를 들어 1억원을 투자할 경우 1500만원은 위탁증거금으로 묶인다는 얘기다. 위탁증거금은 현금 뿐 아니라 대용증권, 외화 등을 혼합해 예치할 수 있다.
◆거래소·증권업계 “몰이해가 부른 오해”
이번 논란은 현금으로 맡겨진 위탁증거금 즉, ‘현금위탁증거금’의 정의 차이에서 빚어졌다. 한국거래소 규정은 위탁증거금의 1/3 이상을 반드시 현금으로 내도록 하고 이를 ‘현금예탁필요액’으로 못 박았다. 즉 1억원 투자 시 1500만원의 위탁증거금 중 500만원은 반드시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감사원의 지적은 이 같은 정의에서 출발한다. 만약 1억원을 투자한 고객이 1500만원 위탁증거금 가운데 700만원을 현금으로 냈을 경우 500만원을 제외한 200만원에 대해 이자가 발생하면 이는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거래소는 현재 위탁증거금 중 일부 이자 수익을 증권사에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가 이를 투자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게 문제였다. 한국거래소 측은 “증권사에서 맡긴 선물옵션 고객들의 위탁증거금에 대해 현금예탁필요액을 제외한 10%에 해당되는 이자를 수시입출식예금(MMDA) 수준 이율로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권사는 투자자가 맡긴 예탁금에 대해 ‘이용료’ 성격의 이자를 지급 한다. 이자가 지급되는 예탁금은 크게 세 가지로 위탁자 예수금, 집합투자증권투자자예수금, 장내파생상품거래예수금 등이다. 감사원과 증권업계의 논리가 부딪치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르면 장내파생상품거래예수금에 속하는 현금위탁증거금은 이자지급 대상이 아니다.
금투협 최용구 파생상품종합지원실장은 “보통 선물계좌 예탁금은 투자로 운용하지 않고 증권사가 현금으로 쌓아놓은 돈”이라며 “위탁금은 결제이행에 대한 보증금 성격인데 그것에 대한 이자를 왜 지급해야 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논란만 있고 규정은 없다
업계는 이번 논란은 감사원이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의 애매한 용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상황에서 벌어진 소동이라는 입장이다. 최 실장은 11일 금투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투협과 거래소 관련규정 내에 동일한 현금위탁증거금이란 용어를 다르게 정의·적용해 혼란을 초래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관련규정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감사원이 엄청난 불법을 자행한 것처럼 일부 감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업계 규정상으로는 불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증권사는 고객에게 받은 ‘위탁증거금’을 증권사 자율 판단에 따라 거래증거금 명목으로 현금이나 대용증권으로 예치한다. 거래소는 이 중 현금에 대한 이자를 해당 증권사에 지급한다.
하지만 증권사가 거래소로부터 받은 이자수익 가운데 몇%를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다. 거래소에서 증권사로 이자가 지급되는 것은 맞지만 증권사가 이를 얼마나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지는 알아서 판단할 몫이라는 얘기다.
감사 대상인 60여개 증권사 가운데 1~2곳을 제외한 거의 모든 증권사가 문제의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협회 규정에는 이자 지급 의무도 없을뿐더러 주더라도 그 비율은 증권사 자율인 때문이다.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논란을 예상하고도 수수방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편 현물거래에서도 고객에게 지급되는 이자는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말 기준 7조3709억원의 예탁금을 보유한 5대 증권사가 같은 기간에 고객에게 지급한 이용료는 688억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