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11월11일 장 마감을 10여분 앞둔 동시호가 시간대에 갑자기 코스피지수가 48포인트 급락했다. 2조3000억원에 달하는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도이치증권을 통해 쏟아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시가총액 28조원이 증발했다. 결국 이날 2000선에 접근하던 코스피지수는 장 막판 1910선대로 곤두박질하며 전날보다 53.12포인트 폭락한 1914.73으로 마감됐다. 객장에서 상황을 살피던 투자자들과 증권가 사람들은 넋을 잃고 하릴없이 떨어지는 시황판의 지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증시 역사상 손에 꼽을 참사를 일으킨 주범은 바로 도이치. 도이치뱅크는 KOSPI200지수 풋옵션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도이치증권 창구에서 KOSPI200 구성 종목 중 199개 종목을 단번에 내던졌고 지수를 급락세로 이끌어 우리 증시를 공황에 빠뜨렸다.
◆옵션만기 대참사 초래한 도이치 "반성은 없다"
당시 국내 기관 및 개인투자자는 씻기 힘든 금전적 손실을 입었으나 풋옵션을 미리 챙긴 도이치 측은 450여억 원에 이르는 거금을 거머쥘 수 있었다. 800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국내 한 자산운용사는 파산을 면치 못했고 19명의 개인투자자도 57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 하나대투증권, KB국민은행, 와이즈에셋자산운용 등 국내 금융사들은 한국도이치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이들은 부당이익 전액을 내뱉어야 했다.
금융위원회는 사태의 책임을 물어 지난 2월 도이치증권 일부영업에 대해 6개월간 정지 처분을 내렸고 검찰은 도이치 관계자 4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나 도이치증권의 이후 행보를 바라보면 투자자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배당에만 열을 올릴 뿐 반성 차원의 사회공헌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도이치증권은 최근 2년간 593억6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기부금을 단 1원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271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2010회계연도에는 246억여원을 자사 법인인 '도이치홀딩스'에 현금 배당했다. 당기순이익 중 무려 90.91%에 달하는 금액을 '주주 배불리기'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태재발 가능성 여전…시장교란 방지책 절실
당시의 뼈아픈 교훈에도 시장교란 행위와 관련한 문제는 여전하다. 물론 일부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도이치 사태와 같은 사범에 대한 재발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거래소를 위시한 증권유관기관들이 올 초 마련한 사후 위탁금 부과방식 개선과 위험관리 가이드라인 및 상시 감시시스템, 장 종료 10분간 단일가 책정 매매 및 프로그램 매매 사전보고 제도 등의 파생시장 관리대책은 시장을 확실히 잡지 못한 채 증시 주변을 떠돌고 있다.
이로 인해 올 초 주식워런트증권(ELW) 사건이 시장을 또 한 번 뒤흔들었고 외국인들이 대량 수급에 가슴을 졸이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현물'일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한 현행 파생상품 관련 시장 정보 규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세부 정의와 일련 행위에 대한 과징금 강화까지 요구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금융위원회는 현물인 주식 외에도 기타 지표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사법당국과 협의 과정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또 전문가들은 도이치 쇼크 이후 동시호가 10분 사이에 선물옵션 결제가격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도 도마 위에 올렸다. 동시호가 때 수급 불균형 문제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평균가를 정해 결제가격으로 사용하자는 등의 개선책도 제시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시장 교란을 포함한 경제사범은 투자자들의 금전적 손해가 큰 만큼 관련 법규를 개정해 강력히 처벌해야 하지만 범죄 구성 요건이 까다로워 마땅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분야는 워낙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쪽이라 사법당국도 경제 및 금융관련 사범을 따로 전담하는 기구를 창설하는 등 탄력적 자세를 보여야 보다 명확한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