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1.11.04 09:27:55
[프라임경제] 국제경제의 ‘거래비용’이 증폭되고 있나? 그간 경제적 활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온 세계경제의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근래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해 온 미국의 경제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명백해지면서 이 같은 재편은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자유 진영의 수장국으로, 냉전 갈등 체제가 무너진 후 미국은 유일 패권국으로 군림하면서 국제경제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맡아 각 주인공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항을 맡기고(노젓기: Rowing) 주인공이 되어 이를 이끄는 역할을 해 왔다. 이 와중에서 플라자합의 같은 많은 부담을 노를 젓는 쪽에 떠넘기기도 했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국제경제 주체들이 경제 제도를 운영하는 비용인 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번 환율전쟁 논란은 봉합이 됐지만, 세계경제 불안이 장기화되는 조짐이 보이자 1년만에 다시 불거지고 있다.
미국이 다시금 추가 양적 완화 정책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언급한 가운데(현지시간 2일), 이 같은 거래비용의 부담 문제를 둘러싼 충돌과 갈등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보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 강력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중국과 일본의 든든한 재산이 배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유럽, 활용 카드 많지 않지만…
미국은 이미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실시하였음에도 아직 본격적인 회복 동력을 얻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모기지 증권 추가 매입 등, QE3(3차 양적 완화)가 내년쯤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숨겨진 물가 압력은 이런 정책 추진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 CNBC 방송은 1일(현지시간) 연준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맞서야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채권 투자 전문가인 빌 그로스도 지난달 말 내놓은 핌코 월간 투자전망 보고서에서 “연준이 추가적인 부양조치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면서 “실질 성장률을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가 소비 진작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1%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를 제한하고 있는 상황을 양적 완화로 모두 풀기에는 버겁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유럽도 그리스 국민투표 논란으로 출렁이고 있지만, 비단 이 문제뿐만 아니라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로 경제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새로 자리에 오른 드라기 총재가 금리 인하라는 강수를 뒀다(현지시간 3일). 하지만 유로존은 재정을 통합하지 않고 통화만을 통합하였기에 개별 회원국이 환율 조정을 통해 경상수지를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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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양적 완화로 달러 패권이 더 빨리 저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현재 국제경제 질서의 거버넌스에 도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해 미봉책으로 덮고 넘어간 환율 전쟁이 다시금 불붙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결국 미국과 유로존의 행보를 보면, 잇따른 양적 완화 정책으로(달러 약세 현상으로) 신흥국 엔진 동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과 세계경제에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문제로 실속보다는 반감을 키우는 부작용이 더 큰 사정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외환 보유고 등 재산 두둑한 中·日, ‘各自圖生’ 외쳐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강대국(G2)으로 떠오른 중국과, 전통적인 경제 강국인 일본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최근 환율 등 국제경제의 민감한 상황에서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우선 최근 미국 상원이 ‘환율감시 개혁법’의 안건을 통과시키자 정면으로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이 법은 중국 등 신흥국이 환율 조작으로 무역에서 이득을 보는 부분에 패널티를 주려는 것으로 절상 강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풀이됐는데, 오히려 위안화 고시 가격을 낮춤으로써, 아예 위안화를 절하시키는 방법으로 법안 무력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인민은행은 지난 10월11일 1달러당 6.3483위안이던 위안화환율을 다음날(12일) 6.3598위안으로 올려 고시했다. 위안화 가치를 낮춰버렸다. 13일에는 6.3737위안까지 올렸다. 노무라증권은 이에 대해 “일종의 경고사격이다”라고 표현했다.
즉 중국이 플라자 합의와 같은 미국의 국제경제 거버넌스 지도(하달)에 응할 뜻이 없음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그간 환율과 관련한 미국 등의 압력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중국이 이러한 미국 중심 체제 유지를 위해 거래 비용을 부담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 등 당국은 중국 내 통화 정책과 환율 등에 관련, 현기조 유지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절대적’ 수출시장인 미국·유럽의 경기가 하강 국면에서 좀처럼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수출에 불리한 위안화 절상을 택하기 쉽지 않다. ‘연착륙’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국이 택할 카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참여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모양을 연출하고 있다. 유로존은 위기 탈출과 관련,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중국 재정부 관계자발 발언 등을 종합하면 EFSF 참여에 대한 중국 측 의사는 명확하지 않다. 이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중국은 유럽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유럽이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한 발언과 맞물려 중국이 유럽에 ‘기브 앤 테이크’를 요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연착륙과 경착륙의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며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는 데에는 세계 제 1위의 외환보유액(3조2017억달러: 참고로 2위인 일본은 1조2006억달러. 자료는 공히 9월말 기준)의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중국은 그간 경제 성장을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더 좁힐 것으로 보인다. 뱅크오브로열스코틀랜드(RBS)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으로 1990년 미국과 중국은 29:1의 격차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6.2:1로 좁혀졌으며, 그 차이는 2015년에는 4.3:1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국제 공조 파기’ 원성을 사는 독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 일본 당국이 올 들어 세 번째로 10조엔대로 추정되는 대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고, 이에 대해 프랑스 당국자들이 “상호 파괴적인 환율전쟁으로 돌아갈 위험을 안고 있다”(FT)고 비판하는 등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이 같은 시장 개입은 현재의 엔고 국면이 안전 자산 선호 현상에 따른 것이고, 일시적 개입으로 적절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 사실상 명확한 데도 불구하고 이뤄진 것이다.
토러스증권 황나영 연구원은 “경험상 금융시장 환경 변화가 아닌 정부 개입에 따른 엔화 약세를 일시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기 모멘텀은 다른 선진국보다 탄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굳이 의미가 없는 개입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관해, 일종의 제스처라는 풀이도 제기된다. 사실상 ‘엄살’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최근 4~9월 무역수지는 1조6000억엔대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는 배경은 소득수지 흑자폭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소득수지 흑자로 무역수지를 커버하는 등, 이미 자본투자국으로서 무역에서의 부담 요소를 상쇄하고 있으며 엔고 현상과의 오랜 동거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데이비드 필링 아시아판 편집장이 지난달 12일 칼럼에서 언급했듯 서구 일각의 여론이 부를 가로챈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으나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필링 편집장은 “제조공정에서 높은 비용을 차지하는 고정밀 부품들은 (중국과 같은) 저임금 국가가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 같은 고임금 국가에서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결국 일본 당국이 환율 시장 개입 이유로 삼는 “현국면이 일본 경제의 펀더멘탈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장관의 발언은 세계경제가 집단 침체 국면으로 빠지고 추가 양적 완화 가능성으로 달러 가치 약세가 점쳐지는 등의 부담을 모두 엔화와 일본 경제가 지는 것에 대한 ‘부담 분배’의 불만이지 부담 ‘여력 자체’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는 묘하게 비껴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은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결국 이러한 원심력 작용은 꾸준히 약화되고 있는 서구 중심 경제 체제의 구심력 약화와 질서 재편을 한층 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견국 리더십 중재자 역할 설 자리 좁아질 듯
이렇게 유럽과 미국이 각자의 사정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고, 일본과 중국이 ‘각자도생’의 속내를 노골화하려는 국면은 세계경제 주체간 협력과 이를 통한 위기 해결 모색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일 ‘프랑스 G20 정상회의의 한계와 시사점’애서 “한국 등 중견국들의 리더십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특히 G20 회원국간 대립 구도가 심화되고 있어 협력과 공조를 이끌어 낼 중재자로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불균형이 지속되면 환율 전쟁은 재점화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보고서도 “개별 회원국의 불균형을 평가하기 위한 예시적 가이드라인의 도입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글로벌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각 주체간 갈등 완화, 특히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중국과 일본의 입김 강화와 그 부작용을 제어하는 문제를 위해, 글로벌 불균형 지속 요인인 유동성 쏠림 현상 등에 대한 공조 대처 필요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환율 전쟁이 재점화 될 여지가 높은 상황에서, 좁아질 입지로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거래세의 글로벌 차원 도입 등과 지역금융안정망 강화가 이기적 마이웨이 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