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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비정규직 600만시대 트라우마

이종엽 기자 기자  2011.10.31 16: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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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는 기존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서 혁명적 수준의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중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곳이 바로 노동시장이다. 경직된 연공서열 중심에서 유연성이 강조된 연봉제 시스템으로 급속한 전환이 이뤄졌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어느덧 사회에서는 사람의 평가 기준이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소위 신분 계급 분류가 고착화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양산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생산성과 유연성이라는 미명하에 기업에서는 비정규직을 급속히 늘려갔다. 기업의 이윤 추구에서 고정 경상비를 줄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 구조조정이다.

그 빈자리를 파견, 계약직, 파트타임 등 다양한 형태의 이름들로 채워지게 됐다. 물론, 과거 신분 구조상 아주 애매한 중간층 형태인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서얼이라는 중인층 처럼 요즘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무기근로계약직’이라는 아리송한 이름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양산과 급증은 한때 노동부 근로기준국 부서에 비정규직 대책팀이라는 무시무시한(?) 명패를 내건 부서까지 생길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에 대책팀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인 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과거에도 많은 노동 관련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가정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미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은 ‘88만원 세대’, ‘반값 등록금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무게가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이 바로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난 28일 금요일 통계청에서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 근로 부가조사 결과’라는 의미 있는 자료가 발표됐다. 2011년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600만명이며, 그 숫자가 급속히 증가세에 있다는 것이 정부 기관의 공식 발표다.

문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135만원 수준이며, 이들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8.2%로 정규직 가입률 65.1%로 대략 절반 수준이라는 것에 있다.

임금이 낮아 현재 생활조차 힘든 상황에서 미래 안정과 노후를 위해 가입돼 있는 국민연금 가입률이 30%대라는 것은 더욱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존재를 양산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국가의 안정은 튼실한 재정의 확충과 배분에 있다. 대기업과 재벌들이 단기 이익에만 몰두하다 보니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하고 이는 곧 대량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국가는 이들을 위한 각종 보조금을 충당해야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즉, 단기이익실현→ 대량 구조조정→ 정부 보조금 지급이라는 악순환은 훗날 새로운 형태의 경제 위기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충분히 양산하기 위한 재계와 정부는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 중심형 사고방식으로 급선회하면 된다. 또한 ‘잉여 인간’이라고 취급받고 있는 비대해진 공무원 숫자를 줄이고 그 기능을 민간에게 위탁해 보다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정부 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대기업과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지배구조를 강화하면서 눈앞에 이익에만 몰두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는 결국 절대 가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유연성과 생산성이라는 복병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다.

   
 
지난 여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왜 수 많은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이 방화와 폭동을 일이켰는 지 새삼 돌이켜 볼 필요가 없다. 나라를 움직일 희망의 에너지가 없어질 때 성난 민중의 화염병과 거센 움직임이 영국이 아닌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이다.

이종엽 자본시장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