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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명품 사랑’ 일본도 10년전엔 우리 같았다

전지현 기자 기자  2011.10.31 13: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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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0여년 전, 2개월가량의 뚜벅이 배낭족생활에 지쳐있던 어느 날,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었다. 주린 배와 피곤함에 눈앞의 작품들이 그저그런 하나의 장식품처럼 느껴질 때 한 여인이 다가와 “여행비도 벌 겸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여행비’라는 말에 꽂혀 프랑스 샹드리제 거리에 있는 루이뷔통 매장을 처음 방문했다.

루이뷔통이 명품이라는 것도 모르던 그 시절,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기다리는 시간만 족히 2시간. 지루한 기다림 뒤에 들어선 매장 곳곳에는 같은 목적을 지닌 남루한 행색의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세관 문제로 1인당 1000달러 이상 물건을 살 수 없었던 당시 상황 탓에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던 여인은 여러 배낭족들을 모아 이 같은 아르바이트를 알선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일본인들이 루이뷔통에 미쳐있기 때문에 이 물건들을 일본에 가져다 팔면 꽤 짭짤한 수익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에 부는 명품 열풍을 보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주말, 명동 시내에서 30분가량 행인들을 살펴봤다. 뤼이뷔통, 샤넬 등 같은 무늬 다른 모양의 가방을 하나씩 옆에 끼고 지나치는 여성들이 10명 중 8명꼴. 가히 ‘국민 가방’이다. 10여년 전 일본 대륙에 불었던 루이뷔통 열풍이 한국에 상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같은 상황은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들로부터 명품 브랜드 모시기 경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 그들의 몸값은 지속적으로 상승,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신명나게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국내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해외 명품업체들은 인기가 있기 때문에 파워가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들은 명품업체 하나 입점 시키면 덩달아 상승하는 입점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 현대, 신세계 백화점 ‘빅3’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의 판매수수료가 평균 32%에 달해, 해외 명품 수수료율의 두 배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공정위 발표에서는 해외 명품브랜드의 약 3분의 1 매장 수수료율이 15% 이하였고, 백화점들은 해외명품에 대해선 입점 또는 매장 변경시 인테리어 비용을 전부 또는 45% 이상 부분을 백화점이 부담했지만 국내 유명 브랜드는 업체가 부담하고 있었다. 더욱이 계약기간에 있어서도 백화점들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 대해선 최소 3년(일부 업체는 5년)간 계약했으나 국내 유명브랜드는 대부분 계약기간이 1년에 그쳤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는 롯데, 신라, 파라다이스, 동화 등 국내 면세점에 판매 수수료 10% 포인트 인하 요청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는 구찌가 주요 면세점의 올해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떨어지는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판매로까지 채널을 다변화 하는데 이어 면세점 수수료까지 낮추려는 안간힘이었다는 뒷말이 떠돈다.

루이뷔통은 어떠한가. 신라면세점 입점 관련 론칭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당일은 우리 내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연휴 기간이었다. 당시 루이뷔통 기자간담회는 루이뷔통 홍콩 지사에서 담당했던 탓에 날짜 조율에 있어 국내실정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최고급 브랜드 명품의 경우 50~80평에 이르는 큰 매장면적을 요구하는가 하면 매장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아예 입점을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졌던 것을 두고 ‘슈퍼 갑’이라며 혀를 내두른 것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 이야기다.

하지만 10여년 일본에 불었던 명품열풍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본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자 1년 만에 일본인들의 소비 형태를 바꿔놓았다. 4대 명품브랜드인 루이뷔통, 샤넬, 불가리, 까르띠에 등의 입점을 완료하면서 명실상부 명품 브랜드의 아시아 메카로 명성을 높인 도쿄 긴자의 명품 거리는 현재 유니클로를 비롯한 중저가 브랜드들로 대체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명품브랜드들은 가격할인에 나서는 등 소비자 이탈을 막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대적 인기에 편승해 ‘슈퍼 갑’의 입장을 누리는 명품들이 단순 ‘국민 명품’에서 벗어나 시대가 지나도 품격과 얼이 담긴 작품으로 남을 때 명품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음을 상기하길 바란다.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품으로 남는다면 오늘 산 명품 가방은 엄마가 되어 딸에게, 그리고 그 딸이 그 딸에게까지 대물림 돼도 품격이 담긴 숭고함이 깃든 할머니의 손때 탄 명품가방으로 남을 것이다.

브랜드 명품들이 장인의 정신이 깃든, 심혈을 기울여 예술가의 창작 활동으로 만들어진 예술품으로써 품격의 명품화로 붐을 일으킬 때 진정한 명품이 될 수 있다는 기본자세를 재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