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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주릉 밟는 겨울 열차산행

[이인우의 주말여행] 눈꽃, 바람, 유장한 흰 능선 따라 겨울속으로

이인우 기자 기자  2005.12.10 0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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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열차에 배낭 싣고 겨울산으로 떠납니다.

새하얀 설화가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산. 온종일 삭풍이 휘몰아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입니다. 거기에 새벽녘 내린 서리가 덧씌워져 설화인지 상고대인지 분별이 어렵습니다.

   
 
  초겨울 소백산에 오르면 거센바람 속에서도 흩날리지 않는 눈꽃과 만나게 된다.
 
겨울 소백산 능선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내뿜는 숨결이 금세 성애가 돼 시야를 가립니다. 겨울로 치닫는 한 계절의 시작, 12월 소백산에서 치르는 작은 의식입니다.

아침 6시50분 청량리에서 경북 영주 가는 기차에 오릅니다. 제천을 지나 50분 남짓 급한 경사의 레일과 터널을 달리면 작은 역에 도착하게 돕니다. 이제 전국 어딜 가도 찾기 어려운, 얼마 남지 않은 간이역. 죽령역에서 내려야 할 참입니다. 연착을 하지 않는다면 11시쯤 열차는 죽령역에 닿습니다.

죽령 간이역 내려 산행 시작

이 시간쯤 죽령역에 내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작은 역사 건너편 비탈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는 촌가에 사는 듯한 노인 한 명이 작은 보따리를 들고 여유 있게 철로를 횡단합니다.

그나마 얼마 후 철수하게 될 역무원이 여행객이 내미는 차표를 받는 둥 마는 둥 노인의 뒷모습만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하루 몇 번 이 역에 잠깐 서는 열차는 이미 꼬리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역에서 해발 689m의 죽령까지는 30분쯤 걸어 올라야 합니다. 긴 죽령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 큰 고개가 죽령이었습니다.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엔 추풍령과 문경새재, 그리고 그 가운데 으뜸인 죽령이 있습니다. 지금은 온기가 빠진 죽령휴게소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됩니다.

죽령에서 소백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제2연화봉을 거쳐야 합니다. 평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눈이 출발부터 가득합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아이젠을 발에 묶어야 할지 머리를 굴립니다. 어떤 이들은 언제쯤 소백의 거센 바람을 피할 겉옷을 꺼내 입어야 좋을지 생각하며 걷습니다.

그만큼 소백산의 눈은 푸지고 바람은 거셉니다. 오죽하면 얼마 전까지 히말라야 등정을 앞둔 원정대가 바람맞기 훈련캠프를 차리곤 했을까요. 그러나 오르는 길은 바람 한점 없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서는 것에 맞춰 옆에 쌓인 눈의 깊이만 더할 뿐입니다.

히말라야 원정대 바람맞이 캠프 자리

경북 영주 땅인 죽령에서 제2연화봉과 제1연화봉, 소백 주릉을 거쳐 주봉인 비로봉을 밟은 뒤 국망봉까지 치닫다가 희방사로 내려서면 소백산 종주가 마무리됩니다. 그렇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 출발이 늦습니다.

   
 
  겨울 소백산은 강릉 선자령 등과 함께 겨울 북서풍이 거센 대표적인 바람맞이 코스로 꼽힌다.
 
이럴 경우 비로봉에 올랐다가 단양 어의곡리로 내려서면 그만입니다. 해가 길어진 12월,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 어의곡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본래 죽령에서부터 비로봉까지 오르는 길은 산행 경험을 어느 정도 가진 사람들에게 권장되는 코스입니다. 더 쉬운 길은 단양 천동리에서 오르면 됩니다.

이 길은 코스도 짧고 경사가 완만해 초보자도 쉽게 겨울 소백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가파르게 올랐던 연화봉에서 얼마쯤 내려서면 그 천동리에서 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소백산의 유장한 능선과 너른 평원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소백의 봉우리와 능선에는 겨우내 세찬 북서풍이 불어 닥칩니다. 바람은 저 혼자 불지 않고 쌓인 눈가루를 몰고 다니며 가뜩이나 얼어붙은 얼굴을 때립니다. 모두들 허리를 잔뜩 굽히고 잰 발걸음 재촉합니다.

주릉길은 국립공원답게 나무판자를 이어붙인데다 난간까지 만들어 잘 정비해 놓았습니다. 이쯤에서 모른 체 하고 등산로를 벗어나 완만한 사면을 걷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거센 바람에 맞서 걷는 기분을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요.

탐방로 정비 말끔 산행 부담 덜어

능선 중간쯤 지어놓은 대피소는 잠시라도 추위를 덜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입니다. 여기서 비로봉까지는 잠깐이면 오를 수 있습니다.

짙푸른 하늘과 그야말로 백설의 찬란한 광휘가 아득하게 펼쳐집니다. 오르는 동안 잠깐 숨이 찼다고, 산정의 바람이 살을 에도록 시리다고 불평했던 사람들도 탄성을 지릅니다. 그쯤의 수고로움을 넘치도록 감싸 안아주는 겨울 소백산의 눈부신 풍경입니다.

   
 
제2연화봉에서 소백 주릉으로 내려서는 길. 고지대의 평원을 이루는 능선이 장쾌하다.
 
비로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소백산의 명물인 주목단지를 거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산의 명품 나무인 주목은 눈에 덮여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주목단지 쯤에서 그토록 거셌던 바람은 장난이라도 쳤던 것처럼 뚝 그치고 기색조차 없습니다.

그저 겨우내 쌓였다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했던 눈길만 아득하게 내리 꽂힙니다. 오르는 길엔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아이젠을 주섬주섬 꺼내 스패츠로 감싼 등산화 위에 차야할 시점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천동리에서 단양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해 나간 뒤 제천을 거쳐야 합니다. 서울가는 버스는 일찍 끊어지니까 아예 단양서 하루 쉬었다 오는 편이 좋습니다. 굳이 열차 여행 생략하면 일정이 훨씬 여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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