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유무역항의 대명사로 여겨져온 홍콩이 이번에는 환율 문제로 눈길을 끌고 있다. 홍콩이 겪는 인플레이션이 환율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견인(demand-full)성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으로 읽힌다.
홍콩이 인플레이션 딜레마에 빠졌으며 이는 환율을 미국 달러에 고정해 놓은 달러 페그제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즈(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홍콩은 1983년부터 달러 페그제를 도입, 미화 1달러 당 7.80홍콩달러 환율에 묶어두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양적 팽창을 집행하면서,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홍콩이 달러 페그제를 유지할 경우 견뎌야 하는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가 돼 버렸다.
HSBC의 스튜어트 걸리버 최고경영자(CEO)가 “홍콩 정부가 지난 28년간 유지해왔던 홍콩 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를 바스켓통화로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이미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을 넘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홍콩 정부는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현재의 환율 제도를 유지하는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것으로(예컨대, 노먼 찬 홍콩금융청장의 8월8일 발언) 보인다. 하지만 향후 페그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변동환율제를 선택하느냐를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페그제 부메랑 맞는 홍콩…시사점은?
페그제 도입시 장점은 수입품 가격이 변동해도 자국 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환율 변동의 불확실성이 작아 무역이나 외국인 투자도 활발해진다.
하지만 연동 대상이 되는 외국 화폐의 가치가 급변동하는 경우, 통화의 가치가 자국의 경제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런 경우 국제 투기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기축 역할을 수행하고 홍콩이 자유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해 온 상황에서는 페그제의 장점이 부각되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히 달러의 무게감이 하락한 현재의 경제 사정은 오히려 부메랑처럼 작용하고 있으며 그 표출이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풀이다.
우리와는 환율 관련 상황이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홍콩이 겪는 인플레이션과 그 배경은 우리에게도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홍콩은 수출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 구조와 흡사하다. 도시 규모가 작고 ‘모든 것이 오픈돼 있는’ 소규모 개방형 경제 시스템이라는 공통점에 금융 중심지(내지 이를 추구한다는) 점도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대목이다.
홍콩 당국이 선뜻 페그제를 폐지해 약세를 보이는 달러와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홍콩달러와 홍콩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이 같은 소규모 개방 구조인 상황에 급격한 변화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환율의 급격한 변동(원화 고평가 제동 형태로 나타남)을 극히 꺼리는 것과도 흡사한 부분이다. 또 국제 경제 흐름에 민감하게 흔들리면서 외국 경제 상황의 눈치를 보는 상황도 홍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경제권 밀착 갈림길에 선 홍콩과 한국
특히 홍콩이 이번에 페그제로 인해 고생하는 일은 위안화 경제권으로 더욱 밀착하느냐의 거시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홍콩의 경제적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이 고성장을 나타내면서 위안화와의 연계가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러면 홍콩 내 위안화 사용이 확대될 것이며, 이는 바스켓 통화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압력으로 부각된다. 여기에 페그제 단점이 부각되면서 달러와의 페그 상황을 끊고 바스켓제로 이행, 중화 경제권 편입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위안화 국제화 추진이라는 물결에서 점차 중국 경제의 영향을 더욱 짙게 받는 쪽으로 움직일 여지가 높아 여러모로, 이 같은 홍콩의 고뇌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딱 들어맞는 환율 제도는 있을 수 없는 만큼, 홍콩이 페그제를 폐지하고 다른 어떤 대안들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며, 이 와중에서 보일 곤란함은 우리에게 선제적 학습 효과를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