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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살고 있는 마을로 떠나다

경남 통영으로의 여행

고연실 기자  2010.10.08 09: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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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아침에 출근을 하면 반갑게 나누는 인사.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얘기들 중에 이 주제는 꼭 들어간다. “나, 악몽을 꿨어”, “어머, 난 돼지꿈 꿨어, 복권 사야겠다!”
간밤에 어떤 꿈을 꿨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 직원들로 사무실은 소란스러운데…
매일, 밤에 어떤 꿈을 꿨는지는 얘기를 하면서 왜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이 꿈(dream)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잠을 자면서 사라져버렸는지, 아니면 이미 다 커버려서 더이상 이룰 꿈도 없기에 꿈이 없어진 건지... 이들의 꿈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그렇다면 나의 꿈은? 다시금 나는 꿈을 찾고 싶었다. 꿈을 찾기 위해, 꿈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한다.

꿈과 함께 살고픈 사람들이 사는 곳 – 동피랑마을

   
마치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벽화 속 정겨운 노부부

통영의 동쪽 언덕, 동피랑 마을. 이 작은 언덕마을의 길은 뱅글뱅글 돌아가는 소라고둥을 닮았다. 한 때 철거위기까지 몰렸던, 이 마을은 많이 유명해졌다. 마을이 없어질 뻔한 위기 때문에 이 마을이 유명해졌을까? 아니다. 벽화1번지로 이 마을을 유명하다.


   
동피랑 마을에서 바라본 통영항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오르다보면 이곳이 어떤 마을인가도 알 수 있다. 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하늘과 맞닿은 동네, 즉 달동네다. 현재, 50여 가구가 사는 동네인데 일제 강점기,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을 하던 외지 하층민들이 기거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이 마을은 원래 통영시의 북대루 복원과 공원화를 위한 철거 예정지로 한 때 사라질 위기도 겪었다. 한 시민단체에서는 갈 곳 없는 이곳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이 마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2006년 11월 마을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공모전을 열게 되었다.

   
 

이후 이 마을은 아기자기한 벽화로 조성되고 이곳만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어 벽화1번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담벼락을 캔버스 삼아 그려진 그림들은 익살맞고, 귀엽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있다. 굴뚝, 기름통, 지붕 위의 골목골목 가득 그려진 그림들은 하나의 감성으로 통한다. 바로 진솔함과 따뜻함이다.

   
 

이러한 감성은 부모님 세대에게는 어릴때 살던 좁은 골목길과 언덕길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모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사람 두 명이 걸어가면 가득 차 버리는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통영 바닷가와의 어울림도 마음에 담고 가면 이보다 좋을 것도 없다.

달동네라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수돗물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마을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던 이들의 삶을, 그런 마을이지만서도 계속 여기에 있고 싶은 이들의 꿈이 어떤지 골목길 사이사이를 걷다 보니 느낄 수 있었다.

다시금 통영의 명동을 꿈꾸는 곳 - 초정 김상옥거리

   
 

초정 김상옥거리, 항남 1번가 길이라고 하는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에도 통영 최고 번화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통영의 명동이라 불렀던 곳이다.

   
초정 김상옥 거리 입구

이 거리의 주인인 초정 김상옥은 일제시대 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나 문단에서 '시서화 삼절'로 불렸다. 교과서에 실린 시조 '봉선화', '백자부', '옥저' 등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림, 서예, 전각, 도자기, 공예까지 두루 재능을 가져 수많은 육필원고와 유품을 남기기기도 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부인 권재순 여사와 초정 김상옥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최초의 시조동인지 '참새'가 발간된 곳도 바로 항남 1번가 길이기에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바닥을 내려다보면 만날 수 있는 초정의 작품

이 '초정길', 항남1번가를 걸어가다보면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 1920~2004) 살았던 곳"이라 새겨져 있는 생가 표석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한때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며 통영의 명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거리지만서도 후에 도심이 옮겨지면서 이 거리도 구 도심으로 남겨져 예전의 명성은 찾지 못하게 된다. 이후에 도심상권 회복을 위한 자구책으로 항남1번가로 명칭을 바꿨다. 명성레코드, 영수당, 오행당, 희락장, 충무도서 등 통영을 오래 지켜온 전통 있는 상점이 현대 상점들 사이사이에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이지만, 이 길도 꿈을 꾼다. 언젠간 예전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을 것이란 꿈과 그리고 초정이 그러했듯 다른 문학가들이 이곳에서 다시금 태동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말이다.

사랑을 꿈꾸는 우체통이 있는 그 곳 - 유치환거리

   
청마거리의 골목

마치 우리동네 골목을 걷듯이 여느 골목처럼 별다를 게 없는 거리. 이곳에서도 꿈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한적한 일요일의 거리. 이 거리에서 유달리 돋보이는 우체통을 만났다.

   
중앙동 우체국
눈에 보이는 빠알간 우체통. 중앙동 우체국은 유치환이 찾아와 사랑하던 여인 이영도(시조시인•당시 미망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또 썼던 곳이라고 한다.

1947년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만난 뒤 그는 196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이영도에게 편지를 써서 붙였다.

20년간 5천통이 넘는 편지를 받은 이영도는 그것을 고스란히 보관해 뒀고 67년 청마 사후 200통의 편지를 추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서한집을 냈다.

우체통을 가만히 만져본다. 유치환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속에는 정인을 향한 애절한 가슴앓이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의 신분과 남편을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우는 미망인의 신분은 그 당시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우체국 앞의 청마 유치환 "행복" 시비

통영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펜을 놓을 때까지 20여 년간 거의 매일 이영도를 향해 썼던 편지는 그 자체가 시였고,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그 자체의 사랑이었다.

   
청마 거리에 조성된 쉼터

통영의 중앙동 우체국은 그렇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었다.

뱃사람들의 소박한식사, 이제는 만인의 식사를 꿈꾸는 - 충무김밥
어느덧 시장기가 동하고,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다. 통영에 왔으니 통영만의 독특한 음식을 먹어봐야 할 것인데, 아무래도 바닷가 동네이다보니 무엇보다도 싱싱한 해산물이 많다. 하지만, 그 지역의 이름을 딴 음식 하나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택한 것은 충무김밥이다.

   
충무김밥

통영에서 만난 충무김밥의 첫인상은 평범 그 자체다. 고슬고슬 하얀 밥에 김을 싼 김밥 한 무더기와 양념한 어묵, 굵게 썬 무김치, 매콤한 오징어무침. 그리고 숟가락, 젓가락 대신 이쑤시개, 이게 전부다.

너무 간단해서 성의조차 없어보이는 충무김밥. 이 간단함 속에 현명함이, 아니 뱃사람, 아낙네들의 고단함까지 배어있다.

   
오징어와 어묵, 무가 잘 버무려진 섞박김치

뱃일 나가는 어부들은 바쁘기도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에 어부들에게 김밥을 파는 아낙네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김밥을 말아도 자꾸 쉬다보니 파는 것보다도 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해낸다.
밥이 쉬지 않도록 밥과 반찬을 분리하는 것. 그 후, 이 반찬과 밥을 분리한 김밥은 여행객과 뱃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그 맛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통영의 충무김밥은 까만 생김과 흰 쌀밥, 빨간 섞박김치 어딜가든 같은 모습이다. 1인분에 4,000원을 내면 손가락만한 김밥이 8개 나온다. 보기엔 양이 적은 것 아닌가 싶지만,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여태까지 휴게소를 비롯한 타지에서 맛본 충무김밥과 김치 양념 맛이 달라서 충무에서 맛본 김밥에 깜짝 놀라는 관광객들도 있다.

첫 인상과 다른 맛에 놀라는 관광객들을 즐기는 듯이 바라보는 충무김밥은 오늘도 꿈을 꾸지 않을까? 휴게소의 충무김밥과 다른 자부심을 갖고 전국민이 자신을 알아줄 그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동피랑 마을에는 이곳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며 터전을 유지하고픈 사람들의 꿈이 살고 있었다. 거리곳곳에도 묻어나는 꿈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소라고둥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느낀 생동감과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바다, 그리고 바다내음의 묻어나는 충무김밥까지.
한 때 간절히 원했던 꿈들이 이곳에서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만 같다. 꿈을 잃어버렸다면, 꿈이 있는 마을을 와 보는 건 어떨까? 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당신이 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피랑 마을 : 통영시 정량동 활어시장 뒷편
-김상옥 거리 : 통영시 항남동 항남1번가 일대 명성레코드~보경유리상회까지 180m
-유치환 거리 : 통영시 중앙동 우체국 앞 일대
-뚱보할매김밥 : 통영시 항남동 055-645-2619


※ 여행 칼럼니스트 고연실은,     

   
 
제주민영방송에서 구성작가로 활동해왔으며 한때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일했다. 현재는 여행이 무작정 좋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비경들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