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해부] 이번 회에는 매일유업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
||
한국전쟁 이후 보릿고개 현상이 나타났다. 농민들은 일년에 한 번 수확으로 몇 푼 벌 수 있었을 뿐 가난의 악순환은 지속됐다. 결국 정부는 국민의 주린 배를 해결하는 것을 정국 안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우유 원유 생산을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1969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진행 중 매일유업(주)의 전신인 한국낙농가공(주)을 설립했다. 그리고 고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에게 1970년 농어촌개발공사의 종합낙농개발사업 합작을 제의한다.
그러나 당시 농어촌개발공사가 김 회장에게 제시한 사업내용은 공익적인 것이었다. 황무지를 푸른 초원으로 바꿔 농가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고, 유가공 공장 건설로 유제품을 생산해 풍요로운 국민 식생활을 이루고자 함이 기본 계획이었다.
김 회장은 기업의 최고 목적이 이윤추구란 기본 틀을 깨고 사업이란 모름지기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익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결국 1971년 김 회장은 민간 대주주 자격으로 종합낙농개발사업을 목표로 설립 된 정부 투자기업인 한국낙농가공(주)를 인수해 민간주도형으로 창업했다.
![]() |
||
| [사진=매일유업 창업주 고 김복용 회장] | ||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 호남지역은 우유소비량이 극히 낮은 지역이었다. 농가에서 젖소 사육을 했지만 생산에 비해 우유소비가 1/3에도 못 미쳤다. 호남 고속도로도 개통전이라 교통상황 역시 열악했다. 신선함이 생명인 유가공 업에는 불모지였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호남지역 농가는 젖소 살 자금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김 회장은 결단을 내린다.
농가들의 낙농에 대한 의욕과 신념을 믿고 파격적인 신용대출을 실시한 것이다. 또한 자금 지원과 함께 원유를 3등급으로 나눠 우유대금을 차등 지급했다. 이를 통해 좋은 품질의 원유를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1973년 봄, 소와 직원들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망망한 태평양 항해 대신 젖소가 항공기를 통해 수송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하늘을 날아온 젖소들이 호남농가로 전해지는 날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환영행사가 펼쳐졌다.
대한통운 차를 타고 의젓하게 들어오는 젖소행렬을 맞는 현수막문구는 ‘도입젖소 대환영’. 어찌 보면 그저 재미난 진풍경이지만 당시에는 낙농에 거는 희망의 표현이자 절실함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또한 광주공장은 신기술로 승부를 걸었다. 무균포장으로 최고 6개월 이상 상온에서 유통 가능한 생산 기술을 도입했다. 신기술의 도입으로 가동 7개월 만에 지역 내 우유소비를 2배 이상으로 올려놓았으며 공장 운영 3개월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나타냈다.
김 회장의 노력에 하늘이 감복한 것일까. 1970년 2만 여두였던 전남지역 젖소 사육두수는 2002년 54만두로 2500% 넘는 증가율을 나타냈으며, 우유생산량 또한 연간 1만2000kg에서 연간 30만2000kg의 경이로운 증가율을 나타냈다.
◆국내 유업계 최초수출・최고수출액
매일유업의 품질 향상에 대한 노력으로 얻어 진 자신감은 수출로 이어졌다. 1981년 매일유업은 국내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조제분유를 수출했다. 당시 중동은 이미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실정이었다.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추지 못한 매일유업은 무역상을 통해 ‘ABS-50’이라는 브랜드로 조제분유를 OEM으로 수출했다.
그러나 무역상의 무리한 요구와 낮은 수익성으로 3년 만에 사우디에서 철수해야 했다. 자사 브랜드가 아니면 적극적인 마케팅활동을 할 수 없어 실질적으로 국제 수출기반을 마련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매일유업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당시 우수한 품질로 시장을 넓혀가던 ‘ABS-50’분유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던 사우디 수입상을 만나 87년 ‘매일맘마’로 사우디 시장을 재 공략한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인근 국가인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요르단, 예맨, 시리아 지역으로 판매를 확대했다. 매일유업 브랜드로 시장진입은 다소 시간이 소요됐지만, 오히려 브랜드를 직접 알리며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수출 초기의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수출국 현지에 맞는 마케팅전략으로 중동 지역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제품들과 경쟁하며 매년 1000만달러 이상의 분유를 수출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점유율 20%로 4위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에 힘입어 올해는 프리미엄 분유를 출시하여 시장 점유율을 23%까지 끌어올리고 3위로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1981년, 조제분유 6만여 캔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 개시한 이래 조제분유, 이유식, 치즈 등 23개 제품을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지난해에는 1500만달러의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중동의 분유제품 및 중국시장의 분유, 요구르트 제품, 미국시장의 카페라떼 제품 등의 강화된 프로모션을 통해 2500만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중동 외에도 지난해 멜라민 파동으로 식품안전에 민감한 중국에 매일유업의 분유, 우유 등의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프리미엄 분유 ‘앱솔루트 명작’을 출시, 중국 고소득층을 사로잡은 데 이어 상류층이 구매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또한 초유 함유 분유 제품이 없었던 중국 시장에서 ‘앱솔루트 궁’은 새로운 분유 시장의 패러다임을 열었다. 여기에 멜라민 파동으로 인한 반사효과로 중국 엄마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수출물량은 2008년 주당 3000캔에서 2009년 주당 7000캔 이상으로 늘면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또한 2008년 9월 중국에 진출한 ‘엔요’의 제품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중국시장의 매출이 상승했다.
이에 힘입어 중국 칭다오(靑島)에 요구르트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다. 65ml 작은 병 안에 건강을 담아 고품질의 요구르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매일유업은 북미 시장에서도 한인 위주의 아시아계에 머물렀던 주 소비층을 히스패닉계로도 확대하는 공격 적인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주력 제품은 두유, 요구르트, 카페라떼 등으로 히스패닉계의 반응이 좋아 작년에만 그 전년대비 20%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열풍으로 한국제품 인지도가 상승한 베트남 시장 을 공략하고자 현지에 법인(매일 베트남 유한회사)을 설립했다. 향후 베트남의 기후 특성과 베트남인의 체질을 고려한 분유제품을 출시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최근 매일유업은 고창군과 고창낙농가와 함께 ‘최고 품질의 유기농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경제적인 가격의 ‘매일 상하목장’ 유기농 제품라인을 출시했다.
또한 6개월 미만 유아들을 위한 이유식을 재생산하고 NON-GMO원료만을 사용해 조제분유를 생산하는 등 제품 안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해 창사 40주년을 맞은 매일유업은 2009년 단일 매출액 8344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오는 2012년에는 계열사를 포함해 매출액 1조6000억, 순이익 10%, 시장 1위 브랜드 8개유지 라는 목표 달성을 통해 국내 식품업체 10위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