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화순 출신 염재(念齋) 송태회(宋泰會·1872-1941)의 삶과 예술을 조망해 보는 전시회가 10월 11~16일까지 그의 고향 화순읍 농협 하나로 마트 문화센터에서에서 열린다.
한말 교육자이자 서화가로 근대 ‘호남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로 불리는 염재 송태회는 호남 화단만이 아닌 우리나라 근대회화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출생지(화순)와 활동했던 지역(고창)이 다른 때문인지 당시 화단의 비주류인 양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나 심도 있는 조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고 염재의 삶과 예술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하는 역작이 최근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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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회는 화순군 남면 사평(조선시대 전라도 동복현 외남면 사평리)에서 송긍면(1839-1922)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1847-1916)으로부터 서화의 이론과 실기를 교육받았다.
머리가 명석해 16세 때 과거에서 매천 황현과 함께 진사시에 급제했다. 시와 문장에 능해 시작(詩作) 경연대회서 장원을 함으로써 일찍부터 남다른 천재성을 발휘했다.
송태회는 학문에 통달하고 사리가 밝아 여러 사람들의 사표가 됐다. 22세에는 성균관 경학과 유생으로 뽑혀 유학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의 부정부패와 외세의 침략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출사(出仕)의 뜻을 뒤로하고 붓과 벼루를 벗 삼아 마음을 달래며 시·서·화에 몰두하며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뒤 고향으로 내려와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으며 1920년에 고창으로 이거, 고창고보에서 후진양성을 통해 오랜 세월 민족정신을 가르치는 사도의 역할을 하면서 교육에 헌신했다.
또한 그는 불교와 인연도 깊어 스님들과도 각별히 지내면서 호남에 소재한 여러 사찰에 편액 등 많은 글씨를 남겼다.
그의 행적과 학문,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염재문집’ 7권 3책(미간행 필사본)이 남아있다. 또한 그의 글씨는 다양한 금석문과 순천 송광사의 도성당(道成堂), 영광루(靈光樓), 향수원(香樹院), 순천 선암사의 장경각(藏經閣), 장성 백양사의 청운당(靑雲堂), 구례 천은사 설선당(說禪堂), 수홍루(垂虹樓) 편액, 고흥 보현사와 운남산 수도암 등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