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과거 ‘강성투쟁’의 대명사이던 조선·중공업 업계가 지금은 국내 노사화합의 롤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990년 ‘골리앗 투쟁’과 같은 치열한 노사대립 사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강성노조’를 ‘북한의 핵’과 함께 한국 투자의 2대 위험요소(Risk)에 꼽았을 정도로 노사갈등은 해외투자유치 및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물론 조선·중공업계 노조가 투쟁만 해온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위해 제일선에서 싸우며,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일정부분 상쇄시켜온 공도 있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정치파업’, ‘폭력투쟁’ 등으로 변질되면서 노사 양측의 골은 깊어만 갔고, 이러한 갈등 심화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노조의 생계 위협으로 이어졌다. 특히 설계, 강재, 조립, 도장 등 전 공정에서 대량 노동력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중공업 기업의 노사갈등은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했다.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낀 이후 노사 양측은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모색한다.
과거 기업의 발목을 잡아오던 조선·중공업의 노사관계는 이제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변모해 국내 기업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한때 최악의 노사관계에서 이제 상생협력의 선도업계로 국내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국내 대표적인 주요 조선·중공업체들을 살펴봤다.
◆[현대중공업] 최악의 불량아, 모범생으로 환골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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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현대중공업 생산기술관에서 열린 2010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 |
지난해 ‘노사문화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12일 2010년 임단협 합의안을 가결시키며 16년 연속 무쟁의 기록을 이어갔다.
현대중공업이 처음부터 원만한 노사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설립된 지난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골리앗 파업’, ‘직장폐쇄’ 등 매년 극심한 노사분규로 한때 ‘한국 노동운동의 풍향계’로 불릴 정도였다.
이러한 현대중공업이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사 양측은 지금까지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회사는 우선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정책과 고용 안정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일례로 사원들에게 시중가의 70% 가격으로 총 1만7500여세대 아파트를 분양해 기혼사원의 약 95%가 개인주택을 소유하도록 지원했다. 또 직원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유아교육부터 대학 등록금까지 한해 50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현대예술관 등 총 7개 문화예술회관을 통해 직원 및 가족들에게 각종 문화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사측의 노력에 노조도 변모했다. 지난 1995년 첫 무분규 임단협 타결 이후 2005년 6월 기존의 투쟁적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노사상생의 노동운동을 지향할 것을 선언하고 새로운 이념, 강령을 대내외에 선포한다. 지난 2007년에는 노조창립 20주년과 창사 35주년을 맞아 노사가 함께 성장하는 ‘노사 공동선언’을 선포하고 지난해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선진 노사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노사간의 노력은 기업 실적으로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 21조원을 기록하며 어려운 글로벌 환경에서도 창사 이래 첫 매출 20조원 돌파를 달성했다. 이는 지난 1995년 첫 무분규 당시 매출(약 4조원)과 비교해 500% 이상 성장한 수치다.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도 지난 1997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무분규의 노사상생에 모범기업으로 변모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조선경기가 바닥을 치자 노조는 임금협상을 회사에 위임했고, 회사는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우리사주를 지급하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다.
올해도 개정 노조법의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 도입과 관련해, 타 업체들이 임단협과 별도로 전임자 관련 협상에 들어간 것과 달리 현대미포조선은 전임자 수 감소를 합의하며 14년 연속 무분규 타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중공업] 노사 신뢰의 비결은 ‘투명경영’
지난 2006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뽑힌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노동부가 주관한 ‘노사상생 양보교섭 실천기업’에 선정되며 업계 대표 노사상생기업으로 공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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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올해 여름휴가 복귀후 직원들을 위한 삼성중공업 수박파티 |
특히 삼성중공업은 올해 4월 별도의 임단협 협상 없이 국내 조선업계 중 가장 먼저 임금조정을 종결했다. 지난해 임금동결에 이어 올해 임금 무협상 타결은 회사 내부적으로 ‘협상 등을 통해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노사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우수한 노사상생 모델로 삼성중공업이 인정받은 배경에는 ‘정례화된 경영현황 설명회’, ‘성과에 대한 보상’ 등 투명경영을 기반으로 한 노사 간 상호신뢰가 기업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투명경영의 일환으로 삼성중공업은 분기별로 사내 방송을 통해 경영 여건과 회사 주요 현안 등 경영상황을 모든 직원들과 공유해 왔다. 매출·이익 목표는 물론 위험 요소 등 기업현황을 직원들에게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 2008년과 2009년 어려운 경영여건에서도 매출·이익 목표를 달성하자, 기본급의 365%에 해당하는 특별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직원들에게 양보하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발생시 충분한 보상이 뒤따른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일부에서는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는 삼성그룹의 계열사라 노사 갈등이 치열하지 않을 것이란 오해를 하기도 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03년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의 부결로 파업 직전까지 간 적이 있고, 근로자 대표기구인 노동자협의회는 2008년까지 매년 임단협에서 연평균 5% 수준의 기본급 인상을 주도해왔다. 노조가 없기 때문에 경총에 가입하지 않는다던 삼성그룹에서 삼성중공업이 2006년 경총에 가입한 것만 봐도 노사 힘겨루기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회사 측과 근로자 측 입장이 항상 같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의 노사상생문화에는 서로 양보하고 협력의 모습이 곳곳에 깃들어있다.
◆[STX그룹] 맞춤식 노사문화로 그룹 전 계열사 무분규
지난 2001년 출범한 STX그룹은 올해까지 10년 연속 조선해양, 엔진, 중공업, 메탈 등 전 계열사가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내며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상생경영의 표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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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2010 STX엔파코 임금 및 단체협약 회사 위임 및 노사협력 선언식 |
이러한 노사관계는 출범 당시 매출규모 2600억원을 기록한 STX가 올해 매출 25조원, 수주 33조원, 영업이익 1조원 등을 경영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밑바탕이 되고 있다. 전 계열사가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달성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은 각 계열사들이 서로 다른 형태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노사협력 프로그램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월, 경총이 주관하는 ‘2010년 한국노사협력대상’ 대기업부문 대상을 수상한 STX조선해양의 경우 임단협 조기타결을 통해 안정적인 생산체계 구축과 대외신임도 향상, 신시장 개척 등 성과를 낼수 있었다.
또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STX엔진은 근로자 대표 기구 역할을 수행하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상생협력 노사문화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STX엔진 노사협의회는 매 분기 정기회의와 별도 임시회의 등을 개최해 사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영에 반영하고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서 품질 및 생산성을 높이는 등 상생협력의 노사문화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 불황에 STX엔진(용인) 노조는 ‘회사와 노조의 고통분담’과 ‘노사 한마음 협력체제 구축’을 강조하며 임금 자진동결을 선언한 바 있다.
올해 STX엔파코에서 사명을 변경한 STX메탈도 근로자들 업무 및 개인 고충을 해결하고 직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서비스’ 제도 및 고충상담 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STX메탈은 직급별·업무별·기능별·자격별·기타업무 등 각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 교육업체에 위탁해 사외에서 전 임직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교육으로 협력적 노사문화 확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TX그룹은 이러한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오는 2020년까지 매출 10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글로벌 경쟁력은 바로 ‘노사협력’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2020년까지 매출 35조원의 종합중공업그룹으로 거듭날 것을 발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 목표 수립 배경에는 20년 연속 무분규의 안정된 노사관계가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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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3월 실시한 ‘노사합동 사랑의 헌혈 운동’ |
대우조선해양은 안정된 노사관계를 위해 다양한 노사화합활동과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직원들 육체건강을 위해 ‘건강증진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금연 및 절주 클리닉, 비만 클리닉, 정신건강 클리닉 등을 제공하고 고혈압, 당뇨, 구강, 우울증 등 무료검진과 맞춤별 건강정보 자료를 제공한다.
신체적 건강은 물론 지난 2003년부터 개인적인 고민이나 직장 내 갈등에 대해 심리 상담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임상심리 상담실 ‘마음누리 행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음누리 행복센터’는 임직원과 가정이 화목해야 회사도 잘된다는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이념인 ‘가화만사성’이 깃들어 있다.
이외에도 △노사합동 건강 달리기 대회 △사랑의 헌혈 릴레이 △한마음 결혼식 △불우이웃돕기 등 다양한 노사화합 활동을 전개하며 노사 간 신뢰를 쌓아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안정된 노사관계에 대해 “최고 수준의 복지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직무여건 향상은 물론 직원들 개개인 삶의 질까지 높이려는 경영활동이 주요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만 해도 직영 1만2000여명과 사내외 협력업체 직원 1만6000여명등 3만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인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는 것은 결코 경영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것.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 어미닭과 안팎으로 함께 쪼는 줄탁동기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안정된 노사관계의 배경에는 최고 수준의 복지 여건을 제공한 사측만큼 노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