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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가시 울타리의 증언

박광선 기자 기자  2010.08.13 16: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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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흑산도 출신의 섬소년이 어른이 되어 미군이 물려준 엠원소총을 둘러메고 교도소 감시대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어스름 밤 8시, 구슬픈 트럼펫 소리가 교도소 내에 울려퍼지면, 저자는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주인공 몽고메리 클린프트가 트럼펫으로〈적막의 블루스〉를 불어젖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비애와 탄식에 젖는다.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망루에 올라간 청년은 몇 개월 후 노인 형상이 되어버렸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등대와 망루는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
   

《가시울타리의 증언》은 30년간 영등포교도소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교도관 황용희(1957년생)가 쓴 감옥 이야기이다. 격동의 80년대 현대사를 교도소에서 체험한 그의 글 속에는 12·12 군사반란 관련자, 이부영, 김근태, 이근안, 전경환, 6월항쟁 등에 얽힌 비화들이 등장한다. 특히 6월항쟁을 촉발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이부영(전 국회의원으로 민통련 사무처장 일을 보다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고척호텔에 구금돼 있었음)이 어떻게 함세웅 신부에게 관련 문서를 전달하는지 그 과정이 소상히 담겨 있다.《가시울타리의 증언》에서 최초의 관련 문서를 전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안유 계장이 소개되는데, “안유의 공분公憤과 양심이 없었던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문에서 전하고 있다.

본문에는 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탈주하려던 지강헌, 소금물로 철창을 삭히는 사나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발휘하다 사람을 죽인 청년, 바늘을 삼키는 꼴통(?), 베트남전에서 금괴를 밀수한 사나이, 교도소 내에서 온갖 기발한 술이 만들어지는 진풍경, 사형수 청년의 슬픈 영혼을 달래주고자 강물에 법선法船을 띄우는 모습 등, 죄와 벌의 과정 속에 벌어지는 온갖 인간 군상의 모습을 엄숙하게, 때론 익살스럽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부영은 <추천사>에서 “이 수기를 읽은 독자들은 저자의 독서량과 만만치 않은 문장력을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가시울타리의 증언》은 ‘가시울타리 속 민중사-민중실록’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서고금 감옥의 역사를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은 어느새 4천 년 전 고조선의 ‘팔조법금’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망이․망소이, 묘청, 홍경래, 정여립, 전봉준 등 혁명을 꿈꾸다 ‘피의 보복’을 당하는 처형 현장을 목도한다. 또한 조선의 가혹한 형벌제도를 개탄하며 일제압박하에 형무소에서 의롭게 죽어간 독립투사들의 모습도 투시한다. 감옥 안에서 삶과 죽음의 본질을 꿰뚫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문호들의 얘기는 계속된다. “캄캄한 중세 암흑기에도 감옥에는 불이 켜져 있어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쓰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썼다. 전제군주 차르 체제하의 러시아에서도 시인과 소설가에게 펜과 종이만은 빼앗지 않아 체르니셰프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옴스크 감옥에서 《죽음의 집의 기록》을 썼다. 그뿐이던가. 인도의 네루는 영국에 대항하여 싸우다 감옥에 잡혀들어와 《세계사 편력》을 써 딸에게 보냈으며, 안토니오 그람시는 사회주의 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역작 《옥중수고》와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까》라는 잊지 못할 글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쯤에서 독자는 저자의 해박함과 깊은 통찰력에 입을 다물 것이다. 감옥 안에서 ‘펜의 힘’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 그의 항변은 계속된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우리말 우리 성까지 빼앗아갔지만, 감옥에서 펜과 종이를 거두지 않아 한용운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조선독립의 서》를,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홍명희는 《임꺽정》을 썼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최남선은 마포형무소에서 ‘자열서’를 쓰며 친일을 변명했다. 그래서 김남주는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의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의 노예로, 중세 농노로, 일제치하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옥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시절 교도소에서 종이와 펜을 금기했던 당시 절박한 상황을 세계의 유수한 문학과 철학을 들먹이며 설득력 있게 얘기하고 있다.
그는 파두 가수 베빈다의 <다시 20세가 된다면>이란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상실된 꿈을 얘기하고 있다. “나는 스무 살이 된다면 참으로 글을 쓰고 싶다. 엉터리 글, 못난 글, 반역의 글이 아닌 진실한 글, 바른 글, 감동이 깃든 글, 삶의 깊이가 배어 있는 글을 간절히 쓰고 싶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브라질영화 <바람의 전설>에서 너무나 외로워 ‘바람’을 연인으로 선택했다는 13세 소녀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감옥이란 새장에 스스로 갇혀 ‘등대’를 꿈꾸며 탄생한《가시울타리의 증언》은 그의 잃어버린 꿈의 재생이자 회귀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현대사의 아픔이며 전진하는 내일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은 감옥에 얽힌 역사와 빛나는 문학, 철학이 총망라되어 있는, 5년에 걸친 자료수집과 유려한 문체가 빚어낸 뛰어난 감옥보고서이다.

80년 5월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미군이 물려준 엠원소총을 둘러메고 교도소 감시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저자는 80년 12월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초기, 혹독한 추위 속에서 ‘제1기 재소자 특별순화교육 입교식’이 거행되는 현장 속에 서 있는다.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가해졌던 ‘삼청교육대’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훈련이 교도소에서도 감행되었고, 단체기합과 흡사한 피티체조, 무거운 통나무를 7-8명씩 달라붙어 실시하는 봉체조 현장을 소개하며 국가폭력과 공포 분위기를 전한다. “삼청교육대 훈련을 받고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만도 339명에 이른다”고 지적하며, 당시 교도소 교육현장에는 강창성(박정권 시절 보안사령관, 2006년 작고), 전과 3범의 깡패두목 등 온갖 무리의 인간들이 뒤섞여 있었다. 순화교육을 거부하는 공주사대생들이 교도관에게 항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왜 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오히려 전두환이 물러나야 한다.” 그러자 교도관이 “이곳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너희들 역시 죄를 지었다. 계엄포고령을 위반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 같은 대화 속에서 당시 삼엄했던 5공시절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영등포교도소 1동은 주로 정치범들이 다녀간 곳인데,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된 통일운동가 백기완, 민청학련 사건의 김지하 시인, 서울대의 백영서(현 연세대 교수),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양성우 시인, 함세웅 신부, 박형규 목사, 김동완 목사 등 쟁쟁한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갔음을 밝힌다. 김지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인쇄공장에 출역하며 한 달에 300원(국가에서 재소자에게 주는 작업 상여금)가량 돈을 벌었는데 그 시절을 회상하며〈지옥〉이란 시를 완성한다. 저자는 특별사에 근무하면서 어느 날 큼직한 보따리를 든 8명의 학생들을 맞이한다. 8명의 학생 중 서강대 수학과에 다니던 최경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청산유수로 말을 잘했던 최경완은 매우 박식하고 좌중을 사로잡는 말로 교도소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는 것. 저자는 이들 8명의 학생들과 교감하며 운동 시간에 축구심판을 봐주기도 하고, 최경완의 부탁으로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물감, 팔레트, 붓, 화선지 등을 필요한 학생에게 공급하기도 한다. 유종선 학생 생일날에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노래가 울려펴지며 러시아 민요 <스텐카 라진>, 김지하 시에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노래가 이어진다. 저자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며 학생들을 대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문한다. “한 젊은이는 자신을 태워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갇힘’을 선택했고 다른 젊은이는 월급 받아 조금씩 저축하며 가족 부양하는 마음으로 ‘자유’를 선택했다. 과연 누가 옳은가.” 1981년 봄. 다른 정치범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이신범(서울대, 전 국회의원), 우원식(연세대, 전 국회의원), 이상현(고려대) 등 20명가량이 수감된다. 그리고 1981년 9월 인사이동이 있어 새로운 보직을 받아 그곳을 떠나야 할 때 최경완은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저자에게 선물한다.
1987년 당시 이부영은 민통련 사무처장 일을 보다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고척호텔에 구금돼 있었다. 1987년 1월 20일, 박종철을 고문하던 고문경관 조한경과 강진규이 그의 옆방에 수감되어 있었고 동아일보기자 출신인 이부영은 뭔가 중대한 할 일이 생겼다. 상부에서 박종철 고문의 모든 책임을 이 두 사람에게 덮어씌우려는 기세이자 이부영은 전직 기자정신을 발휘, 이들을 설득하기에 나선다. 이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안유 계장이었음을 《가시울타리의 증언》에서 최초로 밝힌다. 고문경찰관들과 정권 측의 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에서 안유는 자연스럽게 고문자 전원의 신상을 파악하게 되고 이 엄청난 사실을 이부영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다. “안유의 공분公憤과 양심이 없었던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라 본문에서 전하고 있다. 저자는 단언한다. “이부영을 비롯 안유, 한재동, 전병용, 김정남, 함세웅. 이 여섯 사람 손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으며 이는 결국 6월항쟁을 일으키는 촉매제로 작용하여 급기야 군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작은 교도소 안에서 벌어진 숨 막히는 진실 밝히기 취재전쟁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근태 의장이 86년 5월 31일 서울구치소에서 갑작스럽게 고척호텔로 이송되어왔다. 저자는 44일 동안 고척호텔에 김의장이 머물렀던 당시를 회상한다. 김근태 의장이 130여 장의 미농지에 빽빽이 글을 쓰고 더러 그림을 그린 문서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 남자’에게 고문당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던 것. 또한 고문의 정황을 입증하기 위하여 삽화를 그려넣었는데 욕조, 매트리스(침대), 타일바닥, 칠성판 등 고문도구들을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88년 12월 24일부터 수배를 받아왔던 고문의 달인 ‘그 남자’가 김근태 전 민청련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2000년 10월 19일 고척호텔에 들어와 저자와 대면하게 된다. 본문에서 이근안과 저자의 대화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동안 간첩은 얼마나 잡았나요?” “아마 수십 명은 될 겁니다. 어떨 때는 잠복근무하느라 두어 달 집에 못갈 때도 있었는데 엿장수로 변장하고 빨갱이 집주변을 감시했었지요.” 그 남자를 보면 일제 강점기 맹활약하던 식민지 형사들이 떠오른다는 저자는 “고문은 문명사회의 수치이며 가장 악랄한 범죄행위”라고 규정짓는다.

“19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군사반란은 우리에게 ‘군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며 저자는 본문을 통해 당시 12·12 군사반란을 정확히 진단한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최세창을 비롯 ‘똥별’들이 고척호텔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쿠데타의 주역들을 언급하면서 양심적인 군인으로서 소임을 다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과 특전사령관 정병주, 김오랑 소령 등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반란군 편에 선 부하들이 직속상관인 자신을 포위하고 공격해오는데도 피하지 않고 저항하다 김오랑 소령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정병주 장군은 총상을 입은 채 붙잡혔던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1973년 9월 11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쿠데타군이 아옌데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모네다 궁에 전폭기 폭격을 가하며 탱크를 몰고 진격했던 사건을 상기한다. 아옌데 대통령은 “항복하라”는 군의 최후통첩을 거부하고 쿠데타군들이 대통령관저를 무력으로 진압한 최후의 순간까지 손에 총을 쥐고 항복하지 않았던 것인데, 쿠데타군과 교전하다 사망한 유일한 국가원수 아옌데에게 저자는 존경을 표한다.

1989년 6월 21일 새마을운동본부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금 70억 원을 횡령하는 등의 비리로 1988년 3월 3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전경환이 고척호텔로 이송되어온다. 그런데 7년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1991년 6월 25일 가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 고척호텔을 나서게 된다. 본문에는 전경환이 고척호텔에 머물 당시, 원예에 출역하여 치안본부장과 서울시장을 지낸 바 있는 엄보석(염보현)과 한국해운 사장이던 안성직(범양상선 한성연)을 만나며 여기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재밌게 담아내고 있다. 전경환이 출소한 지 4년 6개월이 지난 1995년 12월 3일 전두환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결단에 의한 내란죄로 기소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되는데, 저자는 이들 형제의 교도소 나들이를 ‘형제입소’라며 다음과 같이 비웃는다. “전씨 형제는 교정현장에서 쉽게 겪을 수 없는 특별한 형제입소다. 물론 같은 시기에 수감되지 않아 엄밀한 의미로 보면 형제입소의 범주에 들지 않겠지만 한집안에서 4년 터울로 둘씩이나 ‘별’을 배출했으니 그 집안은 ‘가문의 영광’이나 ‘가문의 위기’ 가운데 하나를 맞은 것은 틀림없다.”

지은이: 황용희
출판사:멘토프레스
판형:신국변형판
쪽수: 294쪽/ 분야:수필
발행일 : 2010년 8월 10일
가격: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