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치열한 고객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통신업자들이 고객들의 가입해지 요청을 무마하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번 잡은 고객은 죽기살기로 잡아두겠다’고 작정한 듯 악착같다. ‘고객유치’와 ‘해지방어’라는 쌍방향 경쟁 탓에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가입해지 관련 위약금정책 기준이 오락가락해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L통신사 측은 본지 기자의 지적을 받고서야 자신들의 해지위약금 기준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실토했다. 어이없는 해약금기준 실태를 취재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600만명을 돌파, 시장은 포화상태다. 시장 규모가 커지기보다는 한정된 수요 안에서 빼앗고 뺏기는, 신규 모집한 가입자라 해도 다른 통신사에서 옮겨온 고객이 태반인 상황이 됐다.
지난해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3사는 약 414만명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가운데 실제 늘어난 가입자는 85만명에 불과해 총 신규가입고객의 4/5만큼 타 통신사로 빠져나갔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기존 가입자 유출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면서 초고속인터넷 통신사들은 신규 가입 마케팅만큼이나 해지 방어책에 관심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고객센터 내 해지 전담부서를 따로 마련,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위약금 정책과 해지 방어 인센티브까지 각종 정책이 운영되고 있다.
◆위약금 기준이 모호하다
상품 해지를 막는 첫 번째 제도는 위약금이다.
보통 초고속인터넷 상품이나 TV를 포함한 세트 상품을 약정기간을 정해 사용 계약을 하는데 사용자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기간 내 해지할 때 위약금이 발생한다.
‘약정기간에 가까워졌으니 위약금 얼마 안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큰일 날 소리. 현재 3사의 위약금은 할인받은 만큼 반환하는 구조로 동일한 방식이다. 따라서 3년 약정 계약을 한 경우 25개월 썼을 때보다 29개월을 사용했을 때, 즉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약금이 커진다.
하지만 위약금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
본지에 제보한 김 모 씨 역시 L사와 3년 약정 체결 후 몇 개월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지 요청을 했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L사 측은 수십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약정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과도하다고 항변하자 고객센터로부터 “원래 쓰면 쓸수록 위약금이 늘어난다. 그것도 몰랐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와 관련, “계약기간을 못 지키더라도 사용기간이 짧은 것보단 오래된 것이 낫지 않느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대해 K사 관계자는 “남은 약정기간에 관계없이 고객이 우선 계약을 어긴 상황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할인해준 만큼 돌려받는 것”이라며 현 위약금 계산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위약금 계산식은 (무약정 월이용료 x 이용월수) x (약정기간 할인율 - 이용기간 할인율) 이다. 이용기간 할인율은 1년 미만은 무약정, 2년 미만은 1년 계약, 3년 미만은 2년 계약기간 할인율을 적용한다. 여기에 1년 미만 사용했을 경우 사은품 반환 금액이 추가 청구되며 위약금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게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계산방식은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약금이 커진다는 그들의 원칙에 반하는 허점을 갖고 있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만 1년(12개월)이 되었을 때가 11개월 사용했을 때보다 해지 시 내는 금액이 적고, 만 2년(24개월) 되었을 때가 23개월 때 보다 내는 금액이 적다.
L사 관계자도 “현 계산방식에 이런 문제점이 있는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소비자들은 “오래 사용할 필요 없이 그럼 1년만 쓰고 해지하는 것이 이득이냐”며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객들의 해지를 막기 위한 위약금 정책이 오히려 짧게 쓰고 옮겨 다니는 메뚜기 고객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해지 방어책 중 위약금이 ‘채찍’ 역할이었다면 통신사들은 ‘당근’ 역할을 하는 각종 혜택도 준비하고 있다.
콜센터에 해지하겠다고 전화하면 해지 전문 상담원들이 고객의 불만을 해소하고 해지를 막기 위해 요금 할인 및 각종 사은품을 제시한다. 타 통신사로 옮기는 것을 막을 만큼 매력적인 조건이어야 하기에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신규 가입 마케팅과 견줄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본지 기자 역시 해지를 가장한 취재 결과 사용하던 통신사로부터 40%의 요금할인 제안을 받았다. 이 같은 혜택 제공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이미 인터넷 상에는 통신사들의 과열경쟁을 악용해 요금할인을 받기 위한 해지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신규 가입 시 현금 사은품을 받아 놓고도 해지를 가장해 현금이나 상품 등의 사은품을 탄 경험이 자랑스럽게 블로그에 게재돼 있기도 한다.
이처럼 해지 방어 경쟁은 통신사는 물론,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선한 소비자 양쪽 모두에 피해를 주고 있다.
◆ SK→KT→LG 꼬리 무는 소송
SK브로드밴드는 이미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한 만성 적자 구조로 유통망을 줄이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노조의 거센 저항을 받는 상태다.
업계 간 진흙탕 싸움도 도를 넘어 SK브로드밴드가 올해 초 KT의 지나친 경품에 대해 신고하겠다고 나선데 이어 KT 역시 지난달 LG텔레콤의 지나친 경품 행위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했다.
앞서 지난해 9월 SK브로드밴드와 LG파워콤은 지나친 경품 제공으로 방통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피해는 계약기간을 엄수하는 소비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한 소비자는 “해지하겠다고 했더니 요금 40%를 할인해 준다더라. 그럼 이 사실을 모르고 제돈 다 치르는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처럼 지나친 마케팅 경쟁은 통신사들의 ‘제 살 깎아먹기’일 뿐더러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개선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말은 해당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 교수는 올해 초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높은 대외 의존도로 외형만 IT강국인 현실을 꼬집은 적이 있다.
안 교수는 당시 “한국이 세계 1위의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와 운영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가 모두 외국산이다. IT강국의 명성을 언제 반납해야 할 지 모른다”며 업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하기보다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힘을 쏟는, 기본에 충실한 통신사들로의 변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