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고집스런 ‘무차입 경영’… 종합금융그룹 탄생

[50대기업 대해부] 태광그룹 ① 태동과 성장

박지영 기자 기자  2010.07.13 14:25:3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대해부] 이번 회에선 태광그룹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배구조 및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태광그룹은 여타 재벌그룹과 달리 번듯한 사옥 하나 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를 개조해 40여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겉의 화려함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 사풍을 여실히 보여준다.

태광그룹 창업주인 고 이임용 회장은 1921년 경북 영일군서 중농이던 이우식 옹과 정막랑 여사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실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진주만 기습 등 일본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1942년 귀국했다. 이후 스물두 살 청년이던 그는 부친의 권유로 한동네에 사는 이선애 여사와 혼례를 올리게 된다.

이 여사는 동네유지 이송산 옹의 맏딸로, 이기택 민주당 전 총재와 ‘태광 창업동지’ 이기화 씨가 그의 남동생이다. 향후 이 씨는 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내게 된다.

◆대쪽 같은 창업주 경영철학

   
▲흥국생명 사옥
1954년 부산 문현동에 ‘태광산업사’란 모직공장을 차린 이 창업주는 세를 확장, 주식회사로 거듭나면서 처남 이기화 씨와 손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태광 창업주는 이 창업주의 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여사가 소일거리로 하던 직물공장이 커지면서 태광산업사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던 이 창업주는 부인의 사업이 확장되자 본업을 던지고 기업경영에 합류하게 된다.

섬유를 기반으로 한 태광은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양모 대체품인 ‘아크릴’이 대박나면서 태광은 사상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 창업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판덱스ㆍ나일론 등 품목을 다양화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는 태광이 국내 최대 섬유업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황금기를 누린 1970년대 태광은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ㆍ합병(M&A)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ㆍ석유화학ㆍ금융을 한 데 엮은 그룹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인수한 부실기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는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이 크게 작용했다. 일례로 이 창업주는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서 타계 직전까지 계속 살았다. 지금은 부인 이선애 여사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30~40년 된 가구들도 옛날 그대로다.

이 창업주의 경영철학은 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여실 없이 드러났다. 아무리 욕심나는 기업이 매물로 나왔더라도 이 창업주는 절대 은행 빚만은 지지 않았다. 모기업인 태광산업 부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생전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은행이 쉬는 토ㆍ일요일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강조해 왔다.

◆미디어ㆍ금융기업 잇단 M&A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1996년 11월 75세 일기로 이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태광그룹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이 창업주는 일찍이 3남 호진 씨를 차기 회장으로 점지해 놨었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호진 회장은 태광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종합유선방송과 금융을 꼽았다.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이 회장은 과감한 M&A에 나섰다. 섬유ㆍ화학 중심이던 태광은 미디어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 회장은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투자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시장 가능성을 내다본 이 회장은 케이블TV회사 ‘태광 티브로드’를 설립, 서울대 동창 진헌진 사장과 함께 회사를 키워나갔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영문 ‘T’와 브로드캐스팅, 브로드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서울대 상대 출신인 진 사장은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또 금융부문 확장에 속도를 냈다. 흥국생명ㆍ고려상호저축은행ㆍ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본격적으로 금융부분 덩치 키우기에 나선 건 2006년 즈음. 그해 이 회장은 쌍용화재에 이어 피데스증권,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을 잇달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