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기자 기자 2010.07.12 16:05:06
[프라임경제]최근 투자자들이 H증권사를 상대로 제기한 ELS(주가연계증권)소송이 집단소송 사태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릴 경우 유사 사건의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삼성전자와 KB금융지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289회차 ELS 상품에 가입한 김 모 씨 등 25명은 “증권사의 헤지운용이 ‘만기상환조건’ 성취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며 H증권과 D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 1일 대우증권의 ELS 종가조작 논란에 대해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때문에 이번 법적 분쟁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우증권 패소 판결이 집단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개별적인 민사소송으로 밖에 제기될 수 없었던 것은 ‘중도상환 성취조건 방해 행위’가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번 사건은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09년 2월 이후 사건이어서 집단소송 규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집단소송 조건 갖춰
‘ELS소송 논란’이 집단소송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H증권의 이번 ELS 관련 소송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소송에 휘말린 H증권의 ELS상품은 KB금융 보통주와 삼성전자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만기평가가격 결정일이 2009년 8월 26일인 비원금보장형 ELS상품이다.
이 상품은 기초자산의 만기평가가격이 만기평가 가격결정일에 최초기준가격의 75%인 경우 총 액면가액의 128.60%를 지급하거나,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시 계산기간 중 기초자산가격이 장중 포함 한번이라도 최초 기준가격의 60% 미만으로 하락하지 않으면 만기일에 역시 총 액면가액의 128.60%를 지급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기초자산이 장중 포함 한번이라도 최초기준가격의 60% 미만으로 하락한 적이 있는 경우 하락한 비율만큼의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이 조건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만기평가가격 결정일인 2009년 8월 26일에 KB금융 보통주가 5만4740원 이상이고, 삼성전자 보통주가 57만2000원의 75%인 42만9000원 이상일 때 투자원금의 128.60% 만기 수익금을 지급 받을 수 있었지만 KB금융의 기준가격 미달로 인해 만기 수익금 지급은 무산되고 말았다.
▲증권사 시세조종행위 여부가 판결 쟁점
이에 소송을 제기한 김 모 씨 등 25명의 투자자들은 “2009년 8월 24일 종가 5만6000원이던 KB금융의 주가가 재조정된 기준가가 발표된 2009년 8월 25일부터 H증권과 D사의 의도적 대량매도로 2009년 8월 26일 5만4700원으로 떨어져 만기수익금 지급이 무산됐다”며 “투자원금의 128.6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H증권은 이번 소송에 대해 “만기평가가격 결정일 전일부터 충분히 분산매도 했고, 만기평가가격 결정일 당일에도 장중 최대한 분산매도 했으며, 시세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시간외 종가로도 일부 수량을 매도했다”며 “만기상환조건 성취를 의도적으로 방해했거나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시장감시위원회)는 “본 사안에 대해 실시한 서면감리 결과, H증권 상품계좌가 KB금융 보통주 시세에 미친 영향이 극히 미미하고 주문 제출 과정에서 회원사의 고의혐의 또는 부주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바, 무혐의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H증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통 비원금보장형 ELS상품의 경우 청산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는데, 소송에 휩싸인 이번 사안 또한 결과적으로 횡단보도에서 차가 선 것과 다름없다”며 “일단 판결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피고 패소로 판결이 날 경우 서면감리에서 무혐의 처리한 한국거래소(시장감시위원회) 또한 책임 분담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업계 “H증권 패소 불가피”
하지만 관련 업계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르다.
H증권의 패소가 불가피해 집단소송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금융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A 자산운용사의 대표는 “통상 주가가 낮을 때 오를 것을 예상하고 가입하는 것이 비원금보장형 ELS으로, 정해 놓은 범위 내 가격조건을 충족시킬 시 약정된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구조로 설계된 상품인데, 증권사에서 인위적으로 만기수익금 또는 조기상환지급을 막기 위해 기초자산을 대량매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며 “이 같은 대량매도는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수급 불균형을 일으켜 주가 하락을 이끄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A 대표는 이어 “H증권의 ELS상품 논란은 주가조작성 대량매매로 중도, 또는 만기상환 조건을 방해해 회사 손실 폭을 줄이려는 선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증권사 측에서는 만기평가 전일부터 충분히 분할매도로 대응했고 시장감리 결과도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꼭 법에 위반되는 주가조작성 대량매매가 아니더라도 특정 시점에 물량을 쏟아낸 것이 주가 하락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판결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지 거래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감리의 무혐의 처리가 내려졌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최근 잇따르는 ELS 관련 소송을 본보기로 투자자를 위한 제도개선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투자자들은 비원금보장형 상품보다 원리금을 확정 보장해주는 원금보장형 상품에 주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B 증권사 간부는 “ELS상품에서 증권사의 주가조작성 대량매도로 조기, 또는 만기상환금 지급이 무산되는 경우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며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각 증권사를 비롯한 시장 참여자들은 우량주가 아무런 이유 없이 급락하는 등의 변동성을 보일 경우 ELS상품의 조기상환, 만기상환 여부를 먼저 확인해 매수 시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이어 “실제로 이상하게 급락하는 종목들을 살펴보면 ELS 만기일이 많았다”며 그 일례로 “최근 급락했던 현대미포조선의 하락이유를 살펴보니 2년 전 조선업종이 시장을 주도했을 때 한 증권사에서 구성했던 ELS 상품의 만기일 이었다”고 설명했다.
C증권사 관계자 또한 익명을 요구하며 “냉정하게 말해 수익을 챙겨야 하는 증권사로서도 기초자산의 변동성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기상환 시점을 방해하거나 만기상환을 무산시키는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파생상품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비원금보장형 ELS상품은 수익률이 큰 만큼 리스크가 뒤따른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소비자보호단체는 ELS와 같은 고위험·첨단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비대칭적 정보 부족에 시달리는 일반 투자자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편,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민시합의31부는 정 모 씨 등 2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정 씨 등에게 2억7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바 있다. 이는 ‘증권사의 만기일 대량매도로 손해를 봤다’는 이유로 제기된 소송 중 처음으로 투자자들이 승소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