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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얀앵두 무대 올려

박광선 기자 기자  2010.07.02 08: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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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하얀앵두는 두산아트센터 과학연극시리즈 네 번째 작품. 지질학, 원예학을 바탕으로 삶의 원형성과 시간의 순환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창작극으로 “인연의 순환적 시간관이라는 주제를 재미있게 형상화해 낸 연극”(김성희)이라는 평을 받았다.

형체를 가진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래서 더더욱 인간은 영원에 대한 염원을 가지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신을 남기려 노력하지만 ‘소멸’도 우주 순환의 한 부분이며 과정일 뿐이다. <하얀앵두>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탄생과 죽음의 순환 구조를 말하고 있다. 꽃, 나무, 동물, 인간 등 삶의 차원은 다르지만 모두 탄생과 소멸이라는 순환에 따라 살아가며 사라지는 이 모든 존재들의 애틋함과 소소한 기억들을 그리고 있다.

배삼식 작가가 실제 경험을 토대로 일상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맛깔스런 대사들이 돋보인다. 작가 특유의 느린 호흡은 철학적 성찰을 느끼게 하며 지적이고 섬세한 무대를 보여준 김동현 연출은 삶에 대한 작가의 성찰에 깊이 있는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순간과 영원, 존재와 소멸을 드라마틱한 리얼리즘이 아닌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새로운 감수성으로 그린다.

리뷰1 - 연극평론가 이진아
<하얀앵두>에서도 과학적 지식은 인간 존재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를 던져 준다. 작품 안에서 지질학자가 설명해 주는 화석의 긴 여행은, 사람 사이의 인연과 우연처럼만 보이는 사건이라는 것이 태고부터 시작된 우주적 질서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것인가를 성찰하게 한다.
사람이 살고 죽고 사라지면서 흔적을 남기거나 또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일이란, 저 억만 년 전 적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삽엽충이 지금 내 손 안의 작은 ‘코피 루왁’으로 남아 ‘괜찮다, 괜찮다, 조급하지 마라’하며 작은 미소 던져주는 일이기도 하기에, 서러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모두 다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이렇게 <하얀앵두>는 과학적 가치를 정서적 가치로 치환하며 삶의 의미를 관조하게 만든다.

리뷰2 - 연극평론가 김옥란
분명 이 공연은 고생물학과 지질학의 이야기가 나오는‘과학연극’이지만 어렵지 않다. 왜? 배삼식이니까. <주공행장>(2006), <열하일기만보>(2007), <거트루드>(2008)의 배삼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달빛 아래 술에 취해, 혹은 한 마리의 연암-당나귀가 되어 어슬렁거리는가 하면 비극적 죽음의 결말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논쟁과 수다로 날 새는 줄 모르는 한량 기질 다분하고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인물들의 유쾌한 전복(顚覆)의 세계를.
이 공연 또한 그렇다. 5억 년 전 삼엽충 화석이 조급증 약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향나무를 뜻하는 ‘원백(圓柏)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와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이 등장하여 한바탕 해프닝을 벌인다. 그런가 하면 15년을 사는 개의 시간과 100년을 사는 인간의 시간과 덩굴줄기로 혹은 꺾꽂이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식물의 시간이 한데 엉켜 여러 지층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다. 이 공연에서 배삼식은 스스로 섬세한 손을 지닌 지질학자와 무한한 상상력의 고고학자가 되어 개의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고 식물의 전생의 시간의 기원을 들여다보고 화석이 된 인간의 마음의 잔해를 거두어 하나 둘 제자리를 맞춰본다. 소멸하는 것들이 흔적으로 남긴 딱딱한 화석으로부터 살아있었던 순간들의 말랑거림과 “꾸르륵거리는 소리”의 시간들을 복원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