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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 이슈] "아! 사카이 노리코"

이종엽 기자 기자  2010.05.31 14: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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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노리삐' 사카이 노리코가 다시 나타났다. 지난 해 전 일본을 마약 복용과 추악한 가족사 그리고 섹스 동영상 파문까지 드라마와 같았던 그녀의 삶이 알려지면서 일본 열도를 넘어 아시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일본 최초이자 최고의 아이돌 스타인 사카이노리코(酒井法子)가 마침내 대중 앞에 나타난 것.

   
<사카이 노리코의 과거 앨범이 최근 품귀현상이 일고 있다>
 
스포츠 닛폰은 지난 30일 "사카이 노리코가 전날 아들이 다니는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회에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자숙의 기간 동안 잠시나마 비친 그녀였기에 수 많은 그녀의 팬들은 그녀의 근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

사실 지난 해 발생한 마약과 가족사에 얽힌 그녀의 사건은 80년대 중반 일본 연예기획 시스템의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공장'의 산물로 최고 인기를 구가했지만 최근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오히려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도 많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인 80~90년대에는 국내에서는 일본 대중문화가 수입이 안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팬클럽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일본은 물론 대만, 중국,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도 일본을 알린 국보급 엔터테이너로 활동을 했다.

사카이 노리코의 활동 영역은 사실상 대중이 관심을 갖는 모든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음악은 물론, 영화, 드라마, CF, 민간 외교, 라디오 등 전방위 활약을 했다.

그녀의 데뷔는 1986년 드라마 봄바람이 제일!(春風一番!)이며, 동시에 잡지 Momoco의 모모코 클럽(モモコクラブ)란 팀의 일원으로 참가한다. 이때 주어진 모모코(복숭아 아가씨) 번호는 1482번으로 당시 동영상을 보면, 그녀의 매력 포인트인 미소가 이때 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사진= 사카이 노리코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미소는 80~90년대 아이돌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 후 4월 29일에 실시된 86 MOMOCO PARTY에서 실시된 제2회 미스 모모코 클럽 오디션에서 미스 VHD상을 수상, 이 계기로 VHD 이미지 걸로 활약, 11월 21일 VHD YUPPIE로 데뷔 한다. 이 VHD의 삽입곡인 부탁해요 달링(お願いダーリン)이 비공식적인 가수로서 음반 취입 데뷔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식적인 음반을 취입한 데뷔는 1987년에서야 이루어진다.

음반 데뷔와 동시에 젊은이 중심에서 인기를 얻어, 그 해 일본 가요 대상 에서 어울리지 않는 청춘(ノ.レ.ナ.イ Teen-age) 로 최우수 방송 음악 신인상을 수상하며, 이후  연말 일본 가요를 정리하는 최고 무대인 NHK '홍백가합전'에도 꾸준히 나오면서 일본 열도를 뒤 흔들었다.

이후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일본 애니메이션 '전영소녀'의 캐릭터가 사카이 노리코를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주제가 역시 그녀가 불러 큰 인기를 모았다. 이외에 수 많은 애니메이션에도 그녀가 주제가를 불렀는데, 국내에서도 KBS에서 방영된 '돌아온 달타냥'의 원곡을 불렀다는 사실은 매니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해, 각종 추문으로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때 기자회견 모습.
 
사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의 국내 아이돌 문화를 형성하던 시기 일본에서는 기획사에 의해 양산되는 수 많은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 대중음악이 수입이 되지 않던 시절이라 서울 청계천 상가, 세운상가, 부산 남포동, 서면, 대구 동성로 일대 상가에서만 불법 음반과 사진집 등이 거래되던 시기 였다.

카시오페아, 안전지대, 윙크, 코코, 시즈카쿠도, X-JAPAN, 치사토모리타카 그리고 사카이 노리코는 일본 대중 음악을 아시아 음반시장에서 일류(日流)를 일으키는 '핫 콘텐츠' 였던 것이다.

그리고 사카이 노리코는 여배우로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일본 최고 시청율을 기록한  '한 지붕 아래(ひとつ屋根の下)'와 '별의 금화(星の金貨)' 등의 TV 드라마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별의 금화의 주제곡인 푸른 토끼(碧いうさぎ)는 그녀의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기에서 그녀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2003년 압구정에서 열린 '주온2' 시사회때 국내에 첫 방한한 그녀를 위해 한 팬카페가 수화로 사카이 노리코의 대표곡인 푸른 토끼(碧いうさぎ)를 직접 그녀 앞에서 시연을 해 잊지 못할 기억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녀의 광적인 팬들 계층이 30대 중반 남성이다 보니 요즘 같은 아이돌 스타와 팬들간의 관계는 아니지만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소비계층이 다시금 사카이 노리코의 예전 음반을 수집하는 기현상이 일고 있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섹스 동영상과 각종 파문이 그녀를 향하자 그녀를 바라보는 심정 또한 그리 편치 않은 것도 사실.

그녀의 이번 깜짝 외출에 벌써 부터 많은 팬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활동 재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나의 사춘기와 20대를 함께 보낸 아름 다운 당시 그녀의 미소를 잊지 못함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