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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준기 동부회장의 ‘반도체’ 악연(?)

박지영 기자 기자  2010.05.03 17: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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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10년 째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반도체사업을 향한 김 회장의 외사랑은 절절하다 못해 눈물겹기까지 하다.

‘밑 빠진 독(동부하이텍)’에 물 붓기도 하루 이틀이지 이건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수천억대 종자돈도 쏟아보고, 은행대출에 잘 나가던 계열사와 합병도 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김 회장의 ‘뚝심’이 발휘됐다지만 성과 없는 뚝심은 아집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 김 회장의 반도체 외사랑은 그룹 전체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 2008년 동부그룹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3년 약정을 맺고,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한동안 잠잠하던 김준기 회장의 ‘고질병’이 또 다시 도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부하이텍이 문제였다. 최근엔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동부하이텍 곳간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일로 자칫 동부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선 김준기 회장은 사재출연을 결정짓기 전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어야 옳았다.

이번 동부하이텍 구하기 작전에 애초 사재출연이란 무기는 없었다. 상대진영(산업은행)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자 부랴부랴 내놓은 게 사재출연이란 카드였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5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준기 회장은 주거래 은행인 산업은행(채권단)과 동부하이텍 재무구조개선 문제를 논의하다 ‘동부메탈 매각’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동부메탈은 동부하이텍이 합금철 사업을 떼어내 만든 100% 자회사다.  

‘동부메탈’을 두고 가격을 흥정하던 중 문제가 생겼다. ‘동부메탈’을 바라보는 채권단 측과 김준기 회장 간 시각차가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당시 채권단은 이 회사 가치를 3500억~4000억원 내외로 본 반면 김준기 회장은 ‘어림도 없는 소리, 못해도 8000억원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양측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했고, 한발 물러선 채권단 측이 먼저 조건부 재협상을 요구했다. 동부 측으로선 ‘승리’를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채권단 쪽 ‘조건’을 전해들은 동부 측은 어이가 없었다. 채권단 조건이 다름 아닌 김준기 회장의 장남 남호 씨 지분을 담보로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회장 측은 “죽어도 그 조건과 가격엔 동부메탈 못 내준다. 차라리 사재를 털어서라도 동부하이텍 살리겠다. 동부메탈 지분 50%를 사면되는 거 아니냐”며 언짢아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번 발언으로 그해 말까지 3500억원이란 생각지도 못한 돈을 꼼짝없이 마련하게 됐다.
 
3500억원을 준비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김준기 회장 사재가 맞느냐’는 논란에서부터 ‘직원에 주식강매’ 논란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가십에 휩싸였다.

먼저 김 회장은 금융권에서 개인 신용대출로 1500억원을 융자받아 특수목적회사인 동부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여기에 동부화재 지분 300만주를 내다팔아 924억원을, 제2 금융권서 개인대출을 받아 420억원을 조달했다. 그래서 모인 돈이 모두 2844억원.

우선 김 회장은 이 돈으로 동부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동부메탈 주식 39.5% 1185만주를 주당 2만4000원에 사들였다.
 
이후 김 회장은 자신과 특수관계자 지분이 73%인 동부정밀화학을 이용해 약속했던 나머지 동부메탈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해 12월 30일 동부정밀화학은 동부메탈 지분 10%(300만주)를 720억원에 매입했다. 이번 3500억원 사재출연을 두고 ‘김준기 회장 사재여부 논란’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제1·2 금융권에 대출도 받고, 계열사를 동원해 주식도 샀지만 그래도 약속한 동부메탈 50% 주식매입엔 조금 못 미쳤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우리주 사기’였다. 동부그룹은 임원들을 상대로 주식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동부, 임직원에 메탈 주식 강매’ 논란이 인 것도 이러한 탓이다.

지난해 11월 중순 동부그룹은 ‘그룹 계열사 직원들을 위한 동부메탈 주식 판매안내’란 제목의 공문을 통해 동부하이텍 9개 계열사 임직원 총 1만2122명에게 동부메탈 주식을 사도록 권유했다. 실제 동부메탈 지분 4.22%(126만4960주)는 이 회사 임원과 감사 4명이 갖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재출연이었지만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따로 있다. 동부그룹 주력회사들이 ‘빚만 1조9000억원인 동부하이텍 밀어주기’에 손해가 이만 저만 아니란 얘기다.

실제 동부건설은 자금부담 증가를 이유로 과거 신용등급이 한차례 하향조정 된 적 있으며, 금융계열인 동부화재는 리스크가 큰 동부하이텍에 투자했단 이유로 투자의견을 ‘단기매수’에서 ‘시장수익률 수준’으로 낮춰진 바 있다.
 
여기에 그룹을 지탱해줄 총수일가 주식은 이미 은행담보로 넘어간 지 오래다. 김준기 회장을 비롯해 맏아들 남호 씨와 딸 주원 씨는 제1·2금융권에 동부화재 보유주식 전량을 담보로 잡혀있다.

말 좋아하는 재계 호사가들이 동부그룹을 시시탐탐 눈여겨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윤대근 부회장의 동부건설 컴백 때도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윤대근 부회장과 김준기 회장은 동서지간이다.

   
<산업부= 박지영 기자>
한 재계 호사가는 이를 두고 “주요계열사를 두루 섭렵했던 윤 부회장이 1년 만에 다시 컴백한 건 그를 내세워 자본잠식에 빠진 그룹 전반을 손보자는 김준기 회장의 방침 아니겠냐”며 “과거 윤 부회장이 반도체와 제철에 매우 회의적이었던 만큼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호사가들 말을 귀담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칠’ 준비만 하면 된다. 과거처럼 ‘밑 빠진 독’이 되거나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