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보험 계약시 본인이 직접 서명해야 하는 자필서명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지난 2월 대법원이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계약은 이후 계약을 인정하는 절차를 밟았더라도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보험계약자들은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계약은 무효냐”며 우려하고 나섰다. 이에 보험사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자필서명을 이유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바람에 분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논란이 불거지자 29일 금융감독원은 이미 체결한 계약에 대해 보험사의 ‘자필서명 확인서’ 발급을 유도키로 했다.
지난 2003년 ○○아파트 살인 미제 사건과 관련해 사망보험금 문제를 두고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간 법적공방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사건 발생 5년여 전, 남편은 부인 명의로 생명보험을 계약했다. 그러나 남편은 부인을 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해서 생명보험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전에 부인의 서명이나 동의를 받지 않았다.
5년 뒤, 부인이 아파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자 보험사는 살해사건 수사결과가 나오면 보험금 지급청구를 하기로 했다. 수사기관이 남편과 주변인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결과가 ‘장기간 미제’로 남자 보험사는 ‘자필서명 없음’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유족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분쟁소송을 냈고, 1심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계약 당시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으나 계약자(부인)가 보험사 요구에 따라 건강검진을 받은 것과 약 5년 동안 계약자의 통장에서 보험료가 이체된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은 보험계약 당시 자필서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근거로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며 판결을 뒤집었다.
◆‘살해 위험성’ 배제 위한 강제규정
‘상법 제4편(보험법) 제731조(타인의 생명의 보험)’에 따르면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 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즉, 보험계약시 반드시 자필서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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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보험사는 설계사가 보험상품을 충분히 설명을 했는지와 가입자의 고지의무를 정확히 이행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입자의 '자필서명'한 청약서를 계약서로 받고 있다> | ||
판결문은 “보험계약에 있어서 ‘도박보험’의 위험성과 피보험자(보험금을 받는 사람) 살해의 위험성 및 선량한 풍속 침해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강제규정”이라고 덧붙이며 이번 계약이 ‘살해의 위험성’과 관련된 이유를 들어 자필서명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보험사는 가입자가 계약 체결 시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보험가입 사실 인지 △보험료를 직접 납입 △계약자와 피보험자(보험금 수령자) 등 세 가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큰 문제없이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1996년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 계약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보험계약자들이 동요하자 33개 생보사 사장단이 “피해가 없도록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자필서명이 안된 보험계약에 대해서 자필서명 확인서를 추가로 제출하면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제도를 보험사는 시행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는 보험계약을 완전하기 위해 추인하는 과정에서 자필서명 확인서는 제출되지 않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이번 판결로 자필서명 확인서 등 보험계약 이후에 계약을 인정하는 절차를 밟아도 무효가 되는 것 아니냐는 고객의 우려가 커지자 보험사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해 동요할 필요는 없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살해 위험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필서명을 근거로 보험을 무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고객이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고객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 보험금 지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생명 관계자 역시 “자필서명 확인서는 여전히 고객을 안심시키는 수단이자 불완전 계약을 완전계약으로 완성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보험계약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자필서명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보험사가 거절한다면 보험사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라며 “자필서명을 이유로 무조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면 보험계약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보험사의 이미지 역시 훼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IA생명 관계자는 “고객으로부터 자필서명 확인서를 받을 때 보험사는 보관하기는 하지만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설명한다”며 “보험금 받을 때 자필서명을 하지 않은 것은 보험계약이 무효사유가 되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자필서명 확인서를 계약서류에 남겨놓고는 있지만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되면 사안에 따라서 판단해 왔다.
◆금감원, ‘자필서명 확인서’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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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금융감독원은 ‘자필서명’과 관련해 보험사와 대법원의 입장이 엇갈려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이미 체결한 계약에 대해 보험사의 ‘자필서명 확인서’ 발급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보험계약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 이미 체결한 계약 중 자필서명이 미비한 계약은 자필서명 확인서와 보험보장확인서 발급을 통해 보험사가 소비자를 안심시키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필서명 확인서나 보험보장확인서는 법적효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라며 “계약이 약용되지 않았거나 하자가 없는 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보험사는 ‘자필서명’이 없는 계약을 무효로 규정하면 피보험자가 사망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납입한 보험료만 돌려주면 됐었다.
또 금감원은 자필서명란 안내문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계약전 알릴의무 사항’의 자필서명란에 계약자 및 피보험자 본인의 서명이 없으면 계약이 무효가 돼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를 붉은색으로 강조하도록 했다.
현재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AIA생명, 미래에셋 생명 등 생명보험사를 비롯해 삼성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등 손해보험사도 자필서명 확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