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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재벌 어머니 자녀교육법’… 김승연 편

유교적 성품 지닌 현모양처… 자식에겐 강단있는 어머니

박지영 기자 기자  2010.03.24 08: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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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혜로운 어머니’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맹자의 어머니 ‘맹모’다.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오자 짜던 베를 잘라 훈계한 ‘맹모단기(孟母斷機)’ 일화는 이미 전설이 됐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기업인들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결미디어가 펴낸 <어머니의 힘>은 이러한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본지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생을 재구성해 기획 연재한다. 다음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의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이야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어머니 강태영 여사는 1927년 평택 팽성면 200여 호쯤 되는 농촌 마을 객사리에서 강영선 공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와 강태영 여사를 맺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두 집안 어르신들이었다. 강 여사는 수원여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부모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좋은 혼처자리가 있으니 조만간 맞선을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전형적 현모양처 형

혼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창업주가 맞선 날짜보다 하루 앞서 강 여사 집에 불쑥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 얽힌 유명한 일화 한토막이 있다.

   
  ▲ <사진설명=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어머니 강태영 여사는 시조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어르신들의 강요(?)로 내키지 않은 선을 봐야했던 김 창업주는 강 여사 집을 찾기 전 다짐했다. 색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맞선이고 뭐고 곧장 서울로 올라오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날 김 창업주는 강 여사네서 저녁식사까지 얻어먹고 밤늦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강 여사는 유교적 성품을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다. 또한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강단 있는 생활인이기도 했다. 강 여사는 남편에게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에만 신경 썼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이해와 사랑이 넘쳤다. 김 창업주에게 강 여사는 조언자이자 조력자였다. 김 창업주의 고향인 천안에 학교를 세울 때도 강 여사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온양 온천을 다녀오는 길에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학교 설립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 무렵, 김 창업주는 학교부지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때 강 여사가 공장 부지로 사두었던 천안시 신부동 땅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1976년 3월, 신부동 국사봉 밑에 천안북일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김 창업주의 고향사랑은 남달랐다. 고향 천안에 학교를 설립한 것도 애향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0년 중부지방 폭우로 인해 수재가 발생했을 때도 김 창업주는 이름을 숨기고 거액의 재해 복구비를 이곳에 보냈다.

이러한 탓에 김 창업주의 서울 집에는 고향에서 올라온 학생들로 늘 북적거리곤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강 여사였다.

◆예술에 남다른 열정

이 밖에도 강 여사는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그룹 소유의 동숭동 땅에 문학박물관을 짓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문인들에게 강 여사는 애정 어린 후원자였다. 틈틈이 맛있는 요리를 주문해 문인들 집으로 보내줬으며, 동리 선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는 선생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기도 했다. 강 여사 자신도 문단활동을 하는 등 시조에 조예가 깊었다.

그러던 1981년 7월 23일, 남편 김 창업주가 59세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김 창업주의 부음이 전해지자 가회동 자택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국내외 각계각층 유명인들은 물론 시골노인을 비롯해 현지주민, 한국화약 가족들까지 죄다 모였다.

이후 강 여사는 남편의 뜻을 살리기 위한 추모사업에 몰두했다. 사업의 일환으로 1983년 2월, 강화 길상면에 ‘성디도 성전’을 축성 봉헌했다. ‘성디도’는 김 창업주의 천주교 세례명이기도 하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 번도 생일잔치를 하지 않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설명이다.

“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자식에 대한 강 여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2004년 4월의 일이다.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한때 김호연 전 회장은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여론 비난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작은아들의 수상소식을 전해들은 강 여사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으로 단걸음에 달려갔다. 노환으로 거동도 편치 않던 상황이었다.

한편 강 여사는 슬하에 김승연(한화그룹 회장), 호연(빙그레 전 회장), 영혜(제일화재해상보험 이사회 의장) 등 2남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