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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억의 몰락…‘아바타’ 완패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저예산 영화 ‘허트로커’ 6관왕 기염

한종환 기자 기자  2010.03.09 11: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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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예고 된 이변’이었을까, ‘예상 밖의 몰락’이었을까? 지난 8일(한국시간) 미국 LA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저예산 영화인 ‘허트로커’가 작품상, 감독상 등 6관왕을 차지하며 오스카의 주인공이 된 반면 전세계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9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단 3개만의 트로피를 챙기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미 시상식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의 각종 도박사이트에서는 ‘허트로커’의 작품상 수상을 예상하며 후보들중 가장 배당률을 낮게 잡았는데 정확히 들어맞았다.

또한 감독상부문에서도 도박사들은 캐서린 비글로 감독을 남우주연상엔 ‘크레이지 하트’의 제프 브리지스, 여우주연상은 ‘블라인드 사이드’의 샌드라 블록의 수상을 예상했고 그들의 손에는 오스카 트로피가 들려있었다.

이미 ‘허트로커’의 압도적 승리는 여러 시상식에서 감지됐다. 지난 달 21일 영국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각본상, 촬영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2개 부문 수상에 그친 ‘아바타’를 제쳤다. 또한 전미비평가협회와 런던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 등의 시상식에서 ‘허트로커’는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아바타’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만 유일하게 작품상을 챙겼다.

◆도박사들 이미 ‘허트로커’ 손들어줘

아카데미 후보들이 발표되면서부터 ‘아바타’와 ‘허트로커’의 작품상-감독상 대결은 주목을 받았다.

공식 제작비만 2700억원이 들어간 ‘아바타’와 125억원의 저예산(?) 영화인 ‘허트로커’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기도 했으며 한때 부부였던 두 영화의 감독상의 대결은 <장미 전쟁>으로 관심을 끌었다.

97년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 14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11개의 상을 휩쓸며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수상소감을 전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다시 한번 ‘타이타닉’의 영광을 재현하려했지만 아카데미는 철저히 그의 야망을 외면했다.

   
 

<'허트로커'가 8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관왕에 오르며 3개부문 수상에 그친 '아바타'를 침몰 시켰다>

 
 
‘아바타’는 후보에 오른 9개 부문 중 미술, 촬영, 시각효과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전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3D혁명에 대한 공로는 인정받았지만 우려했던대로 취약한 스토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며 주요 부문의 상을 ‘허트로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아바타’의 몰락은 빈약한 스토리 뿐만이 아니라 ‘SF영화는 오스카와 인연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 시켜줬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등 총 3편의 SF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은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고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그러했다.

◆최초의 여성 감독상

‘허트로커’의 6관왕 수상보다 더욱 주목 받는 것은 아카데미 감독상 최초로 여성 감독이 수상한 것이다.

많지 않은 여성 감독들 중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여성은 올해 수상한 캐서린 비글로 감독을 포함해 네 명에 불과했다.

   
 

<아카데미 최초로 여성 감독상을 수상한 '허트로커'의 캐서린 비글로 감독>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 폭탄제거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의 촬영 기법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짜임새 있는 내용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반전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다는 평을 받은 캐서린 비글로 감독.

87년 ‘죽음의 키스’를 시작으로 이후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폭풍속으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95년 SF 스릴러인 ‘스트레인지 데이즈’와 2002년 ‘K-19’로 흥행에 참패했고 이후 8년만에 제작한 ‘허트로커’는 수많은 은퇴 위기와 유행이 지난 전쟁장르의 영화로 82회 아카데미에서 당당히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