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여년 전, 무명 육상선수였던 열일곱 소녀 임춘예 선수는 86아시안게임에서 800m, 1500m, 30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 속에 그녀를 오랜 기간 기억하게 만든 것은 열일곱 소녀가 레이스를 마치며 “라면만 먹고 자란 탓에 우유를 마시며 뛰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고 전한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이후 그녀는 한 업체로부터 그녀의 주식으로 여겨지던 라면을 평생 동안 먹을 분량으로 지원받게 됐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국민들의 애정 어린 후원을 받았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현재, 유통업계의 ‘할인 전쟁’에 라면이 다시 부각됐다. 신세계 이마트가 ‘신 가격인하 정책’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라면업계 1위 제품인 농심 ‘신라면’과 2위 브랜드인 삼양사의 ‘삼양라면’을 포함시킨 것 때문이다.
이 정책에 따라 4일부터 1만1680원에 팔리던 20개들이 신라면 한 상자 가격은 9.0% 내린 1만630원으로, 삼양라면 5개 묶음 상품도 기존 2780원에서 2650원으로 내리고, 1개를 덤으로 주기로 했다. 낱개 가격으로 환산하면 20.5%의 인하 효과가 있는 셈이다.
여기에 주목 할 것은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할 정도로 콧대 높은 농심의 ‘신라면’이 출시 24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제조업체의 출고가격 인하가 아닌 이마트 자체의 유통마진을 줄이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마트는 1인당 구매량을 2상자로 묶어 뒀고 기간도 최소 한달 간이라고 제약 조건을 내걸었다.
삼양식품의 ‘삼양라면’도 상황은 같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이미 예정된 5+1 덤 기획행사(할인폭 20%)에 이마트 측이 자체 유통마진 중 4.9%를 추가 할인했다”며 “이마트 측에 한달간만 이 가격에 공급하기로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론 제조업체와의 원활한 협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종래 이마트 ‘상시 할인’ 품목이던 오리온의 초코파이(24입)의 경우와 같이 한 달만에 가격이 할인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현재 이들 라면의 권장가격은 730원과 700원으로 1986년 시장에 첫 선을 보이던 당시의 권장가보다 (신라면 200원, 안성탕면 120원, 삼양라면 100원) 무려 6~7배 올랐다. 서민식품의 대명사이던 라면은 이제 고급식품(?)의 대열에 자연스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한편, 서울시는 물가안정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1일부터 ‘서울시 물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농·수·축산물부터 라면 등 공산품과 식당 목욕탕 등 서비스업소 요금 등이 총망라된 생활필수품 물가 제공을 시작했다. 정부도 서민들을 위해 고공 행진하는 생필품가격 인하에 고전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앞장서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이때에도 서민들 상대로 부동의 업계 1, 2위의 자리에 오른 농심이나 삼양은 고객감사 차원에서라도 가격을 내리는 배포 큰 플레이를 벌이는 게 분위기 상 맞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가격인하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눈치다.
라면은 생필품이다. 서민 소비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그야말로 ‘생활 필수 제품’이나 다름없다. 농심과 삼양은 어느 누구보다 우리네 과거 배고픈 시절을 잘 안다. 서민들의 배고팠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또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 기업이 괄목할 성장을 했다. 이번 유통업체들의 라면 가격 인하 경쟁을 보면서 ‘농심이나 삼양이 한번쯤이라도 라면 가격을 먼저 자진해서 내리는 훈훈한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농심이나 삼양은 라면 가격을 내릴 계획이 전혀 없다.
농심 관계자는 “지경부에서 ‘오픈 프라이스’를 도입함에 따라, 상품 가격기준은 권장소비자가 보다는 유통업체에 상품을 얼마에 납품하는가 하는 공급가격으로 측정 되는데, 이 공급가는 현재 최저가로 측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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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관계자도 “껌과 아이스크림 빵 가격과 비교한다면 라면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하게 측정돼 오히려 문제”라며 “해외수출을 위해서라도 품질개발 등을 고려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 현재 가격은 적정하게 책정한 바람직한 가격”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유통업체들이 자기들끼리의 경쟁 다툼에 제조사들만 힘들게 된 만든 꼴”이라며 현재의 ‘라면값 유통전쟁’에 대해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