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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5.18구속부상자회 문제 제기…입장 분명하게 밝혀

김성태 기자 기자  2010.02.17 16: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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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위대한 광주 건설’을 내걸고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용섭 국회의원(광주 광산 을)은 17일 “5․18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해 결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사)5․18구속부상자회가 제기한 청와대 사정비서실 행정관으로서 사정의 칼날을 휘둘렀지 않느냐는 의혹과 관련, “재무부-청와대간 인사교류 방침에 따라 재무부장관의 발령을 받고 1985년 1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1년6개월여 동안 청와대 ‘사정비서실(제2부)’에 파견되어 행정관으로 근무했다”면서 “당시 ‘사정비서관실 제2부’는 ‘공무원 청렴도 제고 등 공직윤리와 기강확립’ 관련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 “공직자 사정업무의 경우 검찰과 경찰에서 파견된 ‘사정비서실 제3부’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공직자 사정업무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반민주적 시국사건 관련설에 대해 “정치사회적 사건이나 시국사건들은 ‘민정비서실’ 업무였고, 당시 직책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청와대에서 가장 낮은 행정관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건에 관여할 입장도 위치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지난 참여정부에서 국세청장, 행정자치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임명을 위한 세 번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도 단 한번도 문제된 적이 없었다”며 “일반직 직업공무원으로서 정부가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왔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5․18 30주년을 맞아 5․18광주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5․18 유공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소통하고 통합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5.18 민중항쟁’과 관련하여 저 이용섭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 5․18구속부상자회의 문제 제기에 대한 입장-

2010. 2. 17 국회의원 이용섭

5.18구속부상자회에서 1980년 당시 저의 공직생활과 서기관 시절 청와대 행정관 근무경력을 5.18광주민중항쟁과 연관시켜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이에 대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당사자인 제가 명백하게 진실을 밝혀 의혹과 오해의 소지를 해소하는 것이 역사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5․18 유공자들이나 광주시민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고 정치인이 가져야 할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진실 밝힘을 통해 더 이상 이 문제와 관련된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저는 5.18 당시 재무부 국제조세과 사무관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저는 1973년 10월, 전남대 4학년 재학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1975년부터 청운의 뜻을 품고 공직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직업공무원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저 자신뿐 아니라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80년 5․18을 맞은 것은 재무부에 재직하고 있을 때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호남출신이라는 이유로 재무부 내에서 가장 힘없는 ‘세제국 국제조세과’에서 외국인 과세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29세의 젊은이었습니다.

어머니, 형제, 친구들, 지인 모두를 고향에 두고 온 저로서는 방송과 신문의 뉴스 차단은 물론이고 전화마저 불통되는 언론 통제 속에서 구전으로 들려오는 고향의 참혹한 소식을 접하면서 심한 분노와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호남이 힘을 키워 5․18의 진상을 파헤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결의를 다졌던 안타까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5.18 당시 광주가 아닌 서울에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비판받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당시 광주에 있지 못한 수많은 호남인들이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고 슬퍼했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노와 슬픔의 힘들이 모아져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킬 수 있었고, 마침내는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2. 1985.12, 청와대 근무는 재무부장관의 파견명령에 따른 것으로서 직업공무원인 저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습니다.

저는 재무부에서 광주전남 출신이고 지방대 졸업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들이 기피하던 ‘국제조세과’ 한곳에서 냉대 받고 있다가 사무관이 된 지 10년이 넘어 1985년에 서기관으로 승진했습니다.

당시 재무부는 서기관으로 승진하면 반드시 재무부 밖으로 전출되고, 기존에 외부에 있던 서기관들이 본부 과장으로 전입하는 것이 인사원칙이었습니다.

이런 재무부-청와대간 인사교류 방침에 따라 재무부장관이 청와대로 파견발령을 내어 1985년 1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약 1년 6개월간 청와대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직업공무원인 저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때는 5.18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난 후였고, 어떻게든 광주의 억울함과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광주전남출신이 한사람이라도 더 힘을 키워 미래를 기약해야 할 때였습니다.

제가 발령받은 청와대 ‘사정비서실’은 당시 3부로 나뉘어져 있었고, 저는 공무원 청렴도 제고 등 공직윤리와 기강확립을 위한 제도개선을 담당하던 제2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공직자 사정은 제3부에서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그 지위에 따라 ‘비서실장-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 으로 구성돼 있고, 당시 서기관 초임이었던 저는 주요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가장 낮은 보직인 행정관 신분이었습니다. 근무 당시 저는 호남 출신 공직자를 보호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직위가 낮아 주로 행정업무를 담당하여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구속부상자회에서 문제 삼고 있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부천 성고문사건, 4․13 호헌조치 등 일련의 사건이 제가 청와대를 떠나 재무부로 복귀하여 미국 유학을 떠나던 1987년 6월까지와 시기적으로는 한 두달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업무들은 제가 근무했던 사정비서실 제2부의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정치사회적 사건이나 시국사건들은 당시 민정비서실 등의 업무였기 때문에 저는 그런 사건에 관여할 입장도 위치도 아니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3. 대통령과 정치적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은 일반직 직업공무원이 아닌 별정직 공무원입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크게 일반직 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계약직 포함)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중 일반직 공무원은 저와 같이 일반 부처에서 파견된 직업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의 임기와 무관하게 1~2년 정도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자기 부처로 복귀하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정직 공무원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을 청와대가 채용하는 공무원으로서, 정권이 끝나면 대통령과 같이 퇴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 이력을 문제 삼는 일부의 주장은 일반직 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음으로서 생겨난 것 같습니다.

직업공무원은 발령이 난 곳에 가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사표를 내야 합니다. 따라서 일반직 직업공무원은 어디에서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거기서 어떠한 일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하다면 호남출신 공직자들은 전두환정권 때 모두 사표를 던져야 옳을 것입니다. 또한 호남을 홀대하고 지금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근무하고 있는 호남 출신 공직자들도 모두 그만둬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처신이 옳은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4. 저는 일반직 직업공무원으로서 평생을 ‘헌신․봉사․절제’하면서 정부가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당당하고 정의롭게 공직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합니다.

저의 이러한 공직생활이 정당하게 평가되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저는 두 대통령에게 중용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국세청장, 행정자치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임명을 위한 세 번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직업공무원으로 일했던 호남출신 공직자들은 차별과 홀대를 견디면서 고향의 아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이를 악물고 더욱 분발했습니다. 그리고 미약한 힘이라도 있으면 고향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5.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광역시의 시장은 5.18 당시 광주를 아프게 했거나 광주시민들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 100% 공감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토론이나 검증을 요구하면 언제 라도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공직자로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정권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직무를 수행한 사실을 두고 이처럼 선거 국면에 비판을 받게 되면 누구라도 특정세력의 정치적 음해와 모함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6. 5․18 30주년을 맞이하여 저는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5.18 유공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소통하고 통합하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지금 광주가 어렵습니다. 광주가 미래로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개방성과 관용성을 높여가야 합니다. 광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광주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뛰어난 리더를 선택해야 하고, 이 선택에 불필요한 제약이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검증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당연히 검증을 해야 합니다. 광주를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저는 언제 어디서라도 검증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다만 그 과정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할 것입니다.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이른바 ‘카더라~’식 말 퍼뜨리기는 민주인권평화도시로서 광주의 품격과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5․18구속부상자회와 광주시민들의 냉철하면서도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