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어릴 적, 엄마는 칭찬을 매우 잘 하는 분이었다. “어이구~ 우리 착한 딸, 엄마는 우리 딸이 큰 소리로 책 읽어 주는 게 제일 재밌어.” 그렇게 매일저녁, 엄마가 던져주는 칭찬을 들으며 목청 높여 책을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초등 4학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착한 딸’ 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나의 고향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중의 시골이다. 학교로 향하는 신작로조차 비포장이었으니 말이다. 초등 1학년 여름장마로 접어들 무렵, 노란 장화를 신고 뽐내듯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하나 둘씩 늘어났다. 이에 뒤질세라 나는 엄마에게 노란 장화를 사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보따리 속에는 그렇게 갈구했던 노란 장화는 매 번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슬리퍼를 신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 물웅덩이를 만났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세차게 첨벙거리며 노란 장화를 사주지 않는 엄마를 원망했다. 몇 차례 흠뻑 젖은 옷차림으로 귀가하자 엄마의 목소리는 자꾸만 커져만 갔고 결국 엄마는 노란 장화를 사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노란 장화를 신지 않았다. 노란 장화를 신으면 결코 만나 볼 수 없는 더 재미난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슬리퍼만 신을 수밖에….
그렇게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재미의 욕구도, 하고 싶은 놀이를 마음대로 하려는 자유의 욕구도 있었던 아이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착한 딸’이라는 말에 왠지 엄마의 말은 무조건 따라야 될 것 같고 속 썩이지 말아야 할 거 같았다. 훗날 어른이 돼서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엄마의 칭찬 속에 읽었던 책은 나에게 크나큰 양식이 되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엄마가 “이것은 안 돼, 저것은 하지 마.”라고 제제 속에 어른들이 생각하는 행동규범 안에서 사랑과 칭찬을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자신의 욕구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주 우울해 질 수 있다. 자신의 욕구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인해 생겨난 우울함은 착한사람으로 행동할 때 생겨난 보상이다. 우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착한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부담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필요로 하는 욕구를 소중히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단이나 평가가 들어가지 않고 순수하게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화내지 마” 이 말은 (평가)하는 말이다. 순수하게 느낌을 표현하는 말을 바로 “당신이 목소리를 높이니 기분이 언짢군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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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영 코칭칼럼니스트(연세대상담코칭지원센터 멘토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