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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상혼에 물든 월드컵…경제 위기는 뒷전

홍석희 기자 기자  2006.06.14 07: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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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망의 2006년, 월드컵의 해가 밝았습니다" 한 언론의 앵커가 2006년 1월1일 자정, 새해 첫 대 국민 방송 내용이다. 한 방송사는 국민들이 황우석 패닉상태에 빠지자, '국민들에 희망을 주자'며 1주일 동안 월드컵을 다뤘다.

참 고마운 일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언론이 자임 한 것. 허나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감기로 아픈 사람에겐 감기약을 줘야한다. 허나 방송은 우리에게 감기약이 아닌 ‘아스피린’만 주려는 모습이었다. 아스피린계 약은 마취 상태를 만든다. 언론은 잠시간의 마취 상태로 국민 패닉을 이겨보자는 감개무량한 대 국민 작전을 펼쳤었다.

6개월 후, 현재 언론의 행태도 6개월전과 똑같다. 언론은 또다시 아스피린을 대량으로 국민들에 뿌리고 있다. 현안은 하나도 해결이 안됐는데 ‘잠시만 잊고 가자’며 국민들을 축제의 한가운데로 민다.

2006년 6월 13일 현재, 한미FTA는 4차 협상까지 결렬됐고, KTX여승무원들의 파업이 100일을 넘기고 있으며,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최악으로 드러나 증시가 폭락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 1500만명 중 비정규직이 850만에 이르고있고, 양극화는 꾸준히 진행중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세계 경기가 위축될 전망이고 이란,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 에너지 자원국들의 좌파 행진도 경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하나 한국 경제에 호재로 보이지 않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 언론들은 열심히 월드컵 축제분위기로 국민들을 마취상태로 밀어 넣는다.

기업은 또 어떤가. 2002년 터키전 거리 응원 인원은 700만명을 헤아렸다. 기업들은 '이게 돈이구나' 무릎을 탁쳤다. 붉은 물결 700만이, 기업인들에게 ‘700만의 소비자’로 바뀌어 보이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XXXX가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는 광고 문구가 차고 넘친다.

이젠 어떤 기업이 월드컵을 응원하는지를 알기 위해선 따로이 과외가 필요할 정도다. 머리 좋은 담당자들은 2006년의 한국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계산을 어렵지 않게 해낸다. 2002년은 국내 경기였고, 히딩크라는 명장이 있었다.

하지만 2006년은 해외 원정이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감독 아드보카트가 사령탑이며 이동국도 부상으로 빠졌다. 한국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기업으로서는 돈만 날린 셈이다. 그럼 대안은? 응원 마케팅을 2~3개월 당기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기업들이 4월부터 월드컵 마케팅에 나섰다.

두달이나 앞당긴 월드컵 마케팅의 시작은 그렇게 계획 된 것이다. 철저히 준비된 세심한 상업주의 브라보.

2002년 '열광'의 처음과 끝에는 순도높은 자발성이 있었다. 깔개 없이도, 생수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한국팀의 승리에 모두가 기뻐했다. 쓰레기들을 자발적으로 치우는 붉은 악마들은 문란한 훌리건들과 비교됐고, '붉은악마'는 개인들의 자발적 후원금만으로 대형태극기를 제작했다.

아무렇게나 찾아들어간 거리응원장에서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며 한국을 응원했다. 그래도 즐거웠던 것이 2002년의 월드컵이었다. 2006년. 월드컵은 매우 편해졌다. 한 기업체에서 후원한 깔개는 시청앞 광장에 제공되고, 생수도 무료로 제공되며, 응원도구마저 공짜다. 허나 편한만큼 자발성은 훼손됐다.

후원 업체에서 고용한 안전요원은 정해진 구획안에 응원자들을 집어 넣는다. 안전을 이유로 고용된 그들은 안전을 유지하는 대신 열광의 원천이었던 자발성을 빼앗아간다. 정해진 선 안에서, 고용된 지휘자의 함성에 동조하며 짜여진 구호들을 외친다. 응원장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붉은 악마들이 아닌 대기업이 고용한 청소부들에 의해 치워진다.

간간이 노출될 기업의 로고 따위가 700만 소비자들에게 이런 편리를 제공한다. 2002년과 2006년. 한때 자발적 참여자였던 거리의 응원물결이 이제는 기업들이 벌여 놓은 잔치에 동원된 ‘구경꾼’신세가 됐다. 2006년 월드컵은 그래서인지 괜히 짜릿함이 줄어든것 같다.

괴로워서 술을 마신다. 하지만 술을 먹는다고 해서 괴로움이 해결되진 않는다. 월드컵이 즐겁다. 하지만 월드컵임에도 한국사회 많은 문제들은 여전히 미해결상태다. 월드컵 기간중 열광의 한복판에 있다가 깨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그자리에 있다.

월드컵은 곧 끝난다. 월드컵이 끝난다면? 대량 물량공세를 퍼부은 기업들은 700만의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소비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이며, 언론들은 월드컵에서 깨어나 아파하는 국민들에게 2010년을 기약한다고 말할 것이다. ‘졌지만 잘했다!’는 식의 보도도 이어질 것이고 ‘훌륭하게 싸운 태극전사’라는 수식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에 매몰된 채로 한미 FTA는 훌륭하게 처리될 것이고, 주가는 꾸준히 폭락할 것이다. 잠시간의 마취, 도취, 황홀경과 약의 효과가 끝이 난 다음 오게 될 공허감. 내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이유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