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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미네르바“2010년 투자할 종목은 원자재주”

이예진 기자 기자  2010.01.20 22: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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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미네르바 박대성(32)씨를 만났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반으로 검찰에 구속된 지 1년만이다. 박씨는 지난해 4월 20일 1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찰이 박씨에게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 결과이다. 그러나 12월 10일로 예정돼 있었던 재판결과는 세번째 보류판정을 받았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다”

감기에 걸린 박씨가 심경을 밝혔다. 박씨는 계속되는 헌법소원 결과 보류로 대내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재판결과가 나오는 대로 해외로 떠날 예정이다”라고 했다. 박씨는 “지금 나는 1년 미만의 여행용 단기비자만 나온다”며 “정부도 날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 나라를 오랫동안 못 떠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2009년 1월 9일 박씨는 구속됐다. 정부는 그가 쓴 글 때문에 22억 달러 손해를 봤다는 문건을 작성했다. 당시 박씨는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 상태였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나 구속이 된 뒤 박씨에게 일어난 일들은 그 스스로 더더욱 예상치 못한 일들이다.

지난 1년간 박씨는 <신동아>와 <일간스포츠>에 연재를 했고, 경제와 관련해 두 권의 책도 냈다. 정확히 말해 4월 이후부터 활동이 가능했으니 9개월 동안 한 일들이다. 글을 쓰면서도 검찰이 출석을 요구하면 그때그때 응했다. 박씨는 “수감생활과 재판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며 “나는 내 의견을 글로 쓴 것뿐인데 그 대가가 너무 큰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글을 아예 쓰지 않을까도 생각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중엔 미네르바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긴 글도 있었다. 그가 <신동아>에 2009년 코스피에 대해 쓴 글로 “500까지 떨어질 것이다”라고 했으나 코스피는 890선에서 하락을 멈췄다. 그의 말을 믿고 투자를 미룬 투자자들은 실제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글에 대해 “500은 2차저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890에서 한 번 더 하락했다면, 500까지 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라고 당시의 논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2009년과 같이 투자하기 좋은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원자재 종목에는 아직 투자할 가치가 높다”라고 귀띔했다.

그가 말하는 투자논리는 간단하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20대는 현금 보유와 투자의 비율을 20 대 80으로 하고, 30대는 그 비율을 30 대 70으로 하라는 것이다. 50대는 현금보유와 투자비율을 50 대 50으로 하면 된다. 그는 “현금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투자기회가 생길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투자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또 세종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기업들에게 땅을 헐값에 넘기는 것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기업들의 자산을 늘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업계 1위를 하고 있는 대형주들도 곧 1위 자리를 중국에 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삼성이 그 대표적인 예”라며 “세종시에 바이오시밀러 부문을 투자하는 것도 중국에 대비해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씨에게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프라이버시다”라며 잠시 대답을 멈췄다. 그러다 “매일 동네에 있는 산에 오른다”며 “산의 정상에서 매일 각오를 단단히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긴 재판 과정을  견뎌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씨가 쓴 글들을 보며 몇몇 네티즌들은 “예전의 글들과 다르다”며 “가짜 미네르바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나 그는 “글을 써서 수감생활을 해보니 더 이상 예전 같은 글을 쓰기 싫다”라고 말했다. 미네르바이기보다 인간 박대성이고 싶은 바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헌법소원에서 부분위헌만 나와도 의미 있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뒤로 대법원이 보였다. 박씨가 “무죄”라고 판정한 그 대법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