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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완성

50대기업 대해부-SK그룹①

이철현 기자 기자  2010.01.15 17: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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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완벽 대해부] 이번 회에는 SK그룹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SK그룹은 지난 1953년 창립한 선경직물(주)를 모태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후 무리를 거듭한 사세확장으로 인해 5000여만원의 악성부채에 시달리는 등 도산위기에 직면했다.

고 최종현 회장은 당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1962년 귀국하자마자 형이 경영하는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자신의 진로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 형을 도와서 회사부터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도산위기 회사 일으켜

최 회장은 직물의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는 미국유학을 떠나기 전 원사를 구입해 오고 직물을 내다 팔고 하는 등의 일을 맡아 형을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SK그룹 서린빌딩 전경.>
이처럼 최 회장의 경영참여로 형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형이 생산해 내는 직물을 동남아지역으로 수출하는 한편,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구상무역으로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후 150대에 불과하던 직물공장을 직기 1000대라는 국내 굴지의 직믈공장으로 발전을 거듭하기에 이르렀다.

직물 메이커였던 선경이 원사 메이커로 도약한 것은 1968년이다. 원사공장을 건설하려면 작은 실험공장 하나를 건설하려고 해도 수십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원사공장 건설은 그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국내 외환대출로 공장설비를 도입했다. 공장건설에 필요한 내자는 합작선인 일본의 제인(주)으로부터 폴리에스텔 원사를 연불조건으로 수입해다가 직물을 짜서 팔아가지고 충당했다.

폴리에스텔 원사 제조업체인 선경합직(주)과 아세테이트 원사 제조업체인 선경화직(주)을 비롯해서 직물을 생산하는 선경직물(주)과 울산직물(주) 및 완제품 생산업체인 해외섬유(주)와 선삼섬유(주)로 이뤄진 선경그룹은 일찍히 국내 기업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수직적 기업결합을 이룩한 국내 유일의 섬유기업 집단이다.

1973년. 최 회장은 형의 갑작스런 죽음과 1차 석유파동이라는 위기 상황으로 번져 혹독한 시련을 맞은 가운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경을 이끌어가게 됐다.

1974년 지난해 대비 71% 증가한 8600여만달러의 원사를 수출하는 한편, 1975년 200여억원을 투입해 울산에 일산 100톤 규모의 폴리에스텔 원사공장을 건설했다. 석유파동 한파에도 불구 국내 전체 화학섬유 생산능력의 34%를 점유 국내 섬유업계 제1인자 자리를 굳게 지켜 나감과 동시에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최 회장은 “선경이 가야 할 길은 석유에서 섬유까지”라고 천명하고 정유공장 건설을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 닥친 석유파동으로 그가 이루고자 하는 정유업계 진출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거듭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1976년 종합상사 (주)선경을 출범시키며 이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1980년 유공(현 SK주식회사)을 인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상 깜짝 놀라게 한 ‘유공 인수’

정부는 2차 석유파동으로 또 한 차례 석유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석유수급 조절명령을 발동했다. 원유를 정유회사가 직접 도입하게 하는 한편 민간 베이스에 의한 국내 종합상사들의 원유도입을 허용하며 이에 소요되는 자금은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 지금까지의 정부 베이스의 원유도입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원유도입창구를 다변화하려는 조치였다.

   
 <SK에너지 울산공장.>

이에 국내 종합상사들은 물론이고 신규 정유공장을 건설하려는 여러 기업이 산유국들과의 원유 도입 교섭을 앞다퉈 전개했다. 하지만 선경을 앞설 회사는 없었다. 선경은 이를 위해 꾸준히 준비했다. 당시에는 정부가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을 때 재계에는 아무도 선경이 유공을 인수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이 선경은 이를 위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선경은 유공 인수 이후 종합 에너지·종합 화학기업으로의 과감한 기업변신을 단행했다. 선경기계(주), 선경금속(주), 선경머린(주), 선경목재(주) 등 중소기업형 계열기업 16개를 매각 또한 해산 정리하고 1조5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 마침내 1991년 6월 9개의 신규 석유화학공장을 준공시킴으로써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대망의 수직계열화를 이룩했다.

198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가 가시화되자 그룹의 다음 단계 진로를 정보통신사업에 두고 이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94년 7월에는 마침내 한국이동통신(주)의 경영주체가 됐고 대망의 종합 통신기업으로의 진출기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